누구나 의존 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
👀 오늘의 이엪지 학습 목표 check!

✔️ 탈시설을 반대하는 입장의 근거를 이해할 수 있다.
✔️ 누구나 의존 없는 독립은 불가능함을 이해할 수 있다.
✔️ '취약한' 존재를 위한 세상은 곧 모두를 위한 세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 장애인권과 동물권의 교차점을 이해할 수 있다.

✅ 오늘 뉴스레터는 가을을 두 팔 벌려 반기고 있는 브랜디가 만들었어요🍂

✨ 예민하게 인사해볼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브랜디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뉴스레터를 시작하기 앞서 이엪지의 근황을 전해드릴게요.

이엪지는 현재 모어데즈와 함께, <Love my Sensitivity> 프로젝트(이하 럽마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예민함'이 가진 부정적 프레임을 뒤집어, 누구나 자신의 예민함을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예민함을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캠페인이죠. 이 프로젝트의 내용을 담은 책자 제작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설문을 통해 수집했던 답변 중 일부를 채택해 책자에 실었고요, 채택되신 분들께는 실물 책자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발송 후 남은 책자는 서울 소재의 독립책방 및 비건 식당 등에 비치할 예정이며, PDF는 모두가 열람할 수 있게 배포되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지난 8월 11일에는 럽마센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분들과 함께 <예민러의 수다방>을 열었답니다. 언택트 모임이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예민함의 모양이 제각기 다르면서도 퍼즐처럼 하나로 맞춰지는 게 신기했죠.

<예민러의 수다방> 전날에는 올리브와 모어데즈 무수님과 만나 식사를 함께했어요. 그날이 마침 말복이었는데, 착취 없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지난주에 이어서 탈시설 이야기를 전해드릴 거예요. 지난주에는 시설과 탈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오늘은 '탈시설'의 가장 대표적인 대상이 되는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혹시 지난주 뉴스레터를 읽지 못하셨다면, 여기를 클릭하셔서 먼저 읽고 오시는 걸 권해드려요!😀

입추가 지나고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어요.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EFG ISSUE : 장애인 탈시설
👩‍🦽 장애인에게 시설은 지옥이다

영상 : ⓒ MBN News
지난주 뉴스레터에서 '시설의 구조적 한계'를 정리해보았는데, 기억하시나요?
1.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폭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2. '보호' 시설이지만 사생활은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3.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4. 이질적인 사람들을 지역사회에서 배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5. '열등함'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 특히 중증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 의사 표현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옵니다. 현재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은 약 3만 명, 정신장애인은 약 6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노숙인 시설이나 그룹홈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됨)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7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 거주하는 67.9%는 비자발적으로 입소했다고 해요. 그들의 '무응답'은 사회가 편한 대로 해석되곤 했죠.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폭력과 억압의 정도 또한 매우 심각했으며, 믿기 힘든 사건도 수차례 발생했어요.

영화 혹은 소설 <도가니>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도가니>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청각장애인 교육시설인 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5년에 걸쳐 교직원들에 의해 남녀 장애학생들이 비인간적인 학대와 집단 성폭행 등을 당한 끔찍한 사건인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죠. 영화 개봉 이후 사람들의 분노를 샀고, 관심을 받는 듯했으나 잠시뿐이었어요. 인화학교 피해자들은 결국 패소했으며, 2017년 시설 폐쇄로 임시 보호시설에 수용되었을 때도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17년이면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시점이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듯하죠. 

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화가 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특정 시설에서 일어난 범죄'가 아닌, '시설의 구조적 문제가 불러온 흔한 비극'으로 보아야 해요. 시라큐스대학교 여성 젠더학 및 장애학 부교수인 김은정 님은 책 <시설사회>를 통해 "시설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을 폭로하는 르포나 영화들이 시설 폐쇄를 지향하는 텍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다루는 내용이 특정한 시설에서 일어난 특정한 범죄로 조명되기 때문에, 취약한 집단은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미지를 강화해 시설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작동시킨다."고 말했어요. 이런 이유로 특정 시설의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도, 그 시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 집단 감염은 당연한 결과였다

영상 : ⓒ 씨리얼
장애인 거주시설의 문제는 코로나 이후 더욱 확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있던 정신장애인 103명 중 10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그 중 8명이 사망에 이른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처음 나온 곳이기도 하죠. 인권활동가들은 정신장애인을 폐쇄병동에 가두고 사회와 단절시키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집단감염을 초래했다고 주장했어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 거주시설인 밀알사랑의집, 성보재활원 등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새로운 관점의 문제가 생겨난 거예요.

폐쇄병동 내부의 상황이 격리되지 않은 비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나서야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설의 안과 밖이 마치 다른 세계처럼 나누어져 있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것도 시설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겠죠.   

😞 우려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영상 : ⓒ JTBC News
탈시설 이후 우려되는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탈시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죠. 탈시설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가족들은 탈시설이 두렵다.

위 영상을 보시면, 장애인의 권리를 생각해 누구보다 탈시설 추진을 반길 것 같은 가족들이 오히려 강하게 반대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돌봄노동이 워낙 쉽지 않은 데다가, 가족들이 24시간 붙어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장애인이 자립해서 생활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없어, '장애인의 자립'이라는 것이 더욱 낯설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중증장애인=시설생활'이라는 한 가지 답만 갖고 있는 이들에게 무턱대고 "그냥 일단 해보자!"라고 말하는 것은 불안감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가들은 탈시설 운동이 '모든 시설 자체를 다 없애자'는 운동이 아니라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서 사는 것이 충분히 자연스러운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일단 준비된 사람부터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게 하면서, 10년 정도는 전문가들이 가끔 상태를 체크하러 방문하는 등의 점진적 탈시설을 추친하자는 입장이죠.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탈시설 이후에 제도나 여건을 만드는 방안이 훨씬 효율적이고 확실하니까요. 

2. 가정에서 폭력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탈시설 이후에 더 극심한 폭력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어요. 실제로 <2018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친인척의 학대가 무려 33.4%에 이른다고 해요.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동석 교수는, 현재 인권 교육이 시설이나 사회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문제라고 봤어요. 또 시설과 지역사회를 이분화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죠.

장애인권활동가 김정하 님은 탈시설이 많이 이루어져서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 장애인에 대한 시선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동료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3. 중증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알 수 없다.

"중증발달장애인은 '지역사회에 나와서 시민으로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데, 강제로 탈시설을 시키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시설에서 살고 싶다'는 의견도 내비친 적이 없죠. 위에서도 언급한 '무응답을 사회가 편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어요.

4. 정신장애인은 범죄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끔찍한 사고 혹은 범죄와 정신장애를 연결 지어 보도하는 뉴스를 자주 보셨을 것 같아요. 정신장애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정신장애인에게 '위험하다'는 프레임을 씌워놓았죠.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현병 등의 정신장애와 범죄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어요. 정신장애인이 탈시설을 하고 지역사회에 나오면 범죄가 증가할 거라는 주장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의견입니다.

5. 시설에서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시설이 폐쇄된 이후 시설에서 종사하던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도 깊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예요. 지난 4월 폐쇄된 시설인 향유의집 종사자 29명 중 고용승계 된 사람은 11명(38%)에 불과하다고 하죠. 탈시설이 진행될수록 고용불안 또한 가중되어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탈시설 운동 및 정책이 누군가의 생존권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별도의 고민과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장애인의 자립은 정말 가능한 걸까?

영상 : ⓒ 국가인권위원회
위처럼 장애인의 탈시설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논의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은 데다, 탈시설을 준비하는 당사자들에게도 낯설고 두려운 일일 수 있죠. 하지만 이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거주시설에 가서 자립생활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한다고 해요. 탈시설 이후에도 개인이 원하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느슨한 관리를 지속하고 있고요. 그렇게 탈시설을 경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시설에 있을 때와는 표정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건강 상태가 좋아진 것은 당연하고요. 아래 # EFG RECOMMEND에 시설 밖으로 나와 살아가고 있는 중증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 몇 개를 첨부해 두었으니 꼭 한 번 보시길 권해드려요.🙂  

비장애인은 중증발달장애인이 혼자서 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가족, 친구,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어요. 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의존 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동물권과 연결되는 지점

사진 : ⓒ <짐을 끄는 짐승들>
요즘 저는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장애인권과 비인간동물권의 교차점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책이죠.

수나우라 테일러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일상적인 착취가,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해요. 사람들은 비인간동물의 고유한 능력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이성이나 언어 같은 인간중심적 사고로 그들을 판단하곤 하죠. 테일러는 어떤 능력을 갖거나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 비장애중심주의이며 이것이 다른 종에게로 확대된 것이 종차별주의라고 합니다. 

'착취'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축산동물과 같은 동물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이번 탈시설 이슈를 다루면서, 저와 함께 동거하고 있는 강아지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인간동물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상팔자'인 동물로도 볼 수 있지만, 먹고, 자고, 외출하는 모든 자유가 인간에 손에 쥐어져 있다는 점이 시설 내 장애인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 동거견 중 한 명에게는 장애가 있는데요, 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외출을 자제시키고자 했던 저의 선택들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비장애인인 제가 잘못 이해하거나 헤아리지 못 하는 일들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탈시설은 시설에 수용된 당사자나 그의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것은 '시민'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이며, '동물'의 문제이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존재를 중심으로 조성된 사회는 모든 장벽이 무너진 사회이기에, 이는 곧 누구나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연한 사회를 의미하죠. 그것이 당연한 곳에서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FG RECOMMEND
🔗 이번 주 이엪지가 공유하고 싶은 것

"가끔 보호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장애인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건 비장애인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마찬가지겠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보호가 진정한 보호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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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FG 이엪지
🎤 비주류의 이야기를 전하는 마이너리티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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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월요일 아침, 우리가 놓치고 있던 마이너 이슈를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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