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아 변호사  인터뷰
인생의 용기낼 마지막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셨다는(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신)
 동행의 신입 구성원 김수아 변호사님을 소개합니다.

소화: 자신을 세 가지 형용사로 표현한다면?

 

수(김수아 변호사님을 동행에서는 '수'라고 부르기로 하였어요. 이하 '수'라고 줄여 부름)  : 좋은 말로 하면 추진력 있는! 나쁜 말로 하면 성격이 급한!

일적인 부분에 있어서 결정을 하면 굉장히 결단력 있게 빠르게 열정적으로 집요하게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어려운 상황이 있어도 쭉 가려고 하는 편이고요. 그 과정에서 같이 가야 하는데,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는 것. 그래서 추진력은 있되 급하진 말자!’ 라는 것을 항상 동시에 생각해요.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니까

두 번째로는 한없이 게으른’.

일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말 게을러요. 제 개인적인 생활이라든지 취미라든지 어떤 거에 있어서 많이 나 자신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20대 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 보람 있는 것 위주로 하다보니까 나머지에 대해서는 좀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에 지칠 때는 주말에 집에서 재충전하게 되고 밖에서 일할 때는 활기차다고 이야기 듣는데.. 주말에 집에서 퍼져요. 그 때 충전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때는 한없이 게으른.

 

세 번째는 다소 반항적인’.

항상 반항적인 것은 아니구요.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나 표현이 제 맘에 안 들거나 그럴 때, 바로 말을 잘 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특히 윗사람이 제 가치관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무조건 말을 하게 돼요. 솔직하다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완전히 찍혀서 극대노하시는 분들이 있고, 그래서 생각하는 건 반항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쳐야 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이야기 한다던지 그런 방안들을 고민해 봐야 겠다고 생각해요.

 

 

소화: 어쩌다가 동행과 연결되었나요? 외부에서 본 동행은?

 

: 광주에서 일을 할 때부터 정회원으로 후원을 계속 해 왔고, 말씀하신 것처럼 수도권 제외하고 유일한 공익변호사활동을 하는 단체이니까 외부에서 보시는 분들도 소중하게 생각할 거에요. 오늘 오전에 말씀하신 것을 보고(오전에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음) 역시나 7년의 세월동안 많이 힘드시고 지치셨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얼마나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함께해서 보탬이 되어 드리고 싶다 그런 생각 했어요. (어흑. 감동)

 Photo by 소화,
place by 동행의 단골 카페 '그리고 커피'
Photo by 소화

소화: 어쩌다가 이 길에 접어들게 되셨나요? 왜 하필 활동가?

 

: 저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학생 동기 친구들의 동조자 그 정도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보다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하루는 뭘 하고 싶냐고 하셔서 저는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라고 말씀드리니까 광주에 있는 한 단체랑 지금은 돌아가신 윤영규 선생님,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신 멘토라고 생각하는 서유진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광주에 있는 시민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서유진 선생님이 캄보디아 태국 스리랑카 인권 단체를 방문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시는 거에요. 그때 하시는 말씀이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서는 인권이 뭔지 몰라. 나가서 한번 봐. 그래도 네 길이 아니면 빨리 접으면 되고 네가 가고 싶은 길이면 좀 더 해봐.” 그러시더라구요. 그때 거기에서 많은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국제인권쪽에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캄보디아에 1년 정도 인턴쉽을 통해 가게 되었고, 그 때도 해주신 말씀이 현장에서 경험해보고 아니면 중간에라도 돌아와라.’ 다만 첫 6개월은 해보라고 하셔서 있어 보았어요.

캄보디아에서의 경험이 운동이나 삶을 바라보는 것들을 단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아무런 판이 안 깔린 곳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느낌. 그때 미국 등으로 안 간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거기는 모든 게 다 세팅이 되어 있고 따라가면 되는 곳이니까.  만일 그랬다면 누군가 정해 놓은 판에서 못 벗어났을 것 같아요.

 

 

소화 : 지금 하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었던 일은?

 

: 여행가나 여행작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계속 안주를 못하고 뛰쳐 나오고 뛰쳐 나오는 걸 보니까. 친구들이 너는 생래적으로 어디에 얽히고 메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해요.

그래도 점점 겁이 나는 거 보니까 나이를 먹긴 하는 거 같아요.

(기림: 되게 어울리는 거 같아요./ 소화: 여행을 주로 어디로 많이 다녀보셨어요?)

전 여행보다 출장을 많이 다어요. 미얀마 태국 네팔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많이 다녔어요. (소화: 출장 아니고 여행으로 가서 책을 쓰고 싶은 나라는?)

저는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보다, 시장통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 그곳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거나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해요.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걸 먹고 하는지 보는 것들이 재밌어요. 관광지의 풍경은 지나가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소화 : 내가 싫어하는 것 세 가지

 

: 2월 중순에 내려 와서 부모님이랑 오랜만에 같이 살다보니까 요즘은 조금엄마 아빠 잔소리 하하하하하. 저를 생각하고 걱정해주시는 마음은 고마운데.

 

두 번째는,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해요. 자기 주장만 옳다고 말하는 것도 정말 싫지만,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거나 현상을 보고 그건 그런거야이렇게 너무나 쉽게 딱 단정짓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해요. 왜냐하면 소통이든 교감이든 사람을 모를 수도 있는데, 단정적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소통이나 대화를 끊는 다는 것을 의미여서 되게 강압적으로 느껴져서 싫어요.

 

- 또 뭐가 있을 까? (미냐: 모 생각했을 때 우아악 싫어 이런 거 없으세요?) 사실 저는 좀 무덤덤해요. 사람이 재미없어. 그냥 조용히 술 한잔 하고 자는 거죠. 호불호를 강하게 가져가지 않으려고 해요. 사람에 대해서도 단정하는 것은 나에 대해서도 적용돼요. 어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같이 보려고 하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거든요. 예를 들면 식당에 갔을 때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이런걸 보거든요.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어떻구나라는 것을 짐작은 하거든요. 그렇다고 그 사람과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에요. 세상에서 일을 하는 거는 다 좋은 사람들하고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 어떤 성향이 있지만, 나와 일을 할 때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건 가는 거에요. 다만 가다가 그 성향이 너무 드러나서 같이 일을 못 하겠다 그러면 그럼 빠이빠이 찢어지는 거죠. 가급적이면 좋은 면을 보고 단정적이지 않으려고 해요 그건 나한테도 적용이 되는 거고(기림: 저는 여기 미투 라고)

 

소화: 내가 좋아하는 것 세 가지

 

: 좋아하는 거는 . 술과 함께하는 수다 이런 걸 좋아해요. 편하게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할 수 있고, 예를 들면 오늘 하루 힘들었으면 힘든 이야기, 아니면 힘든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실 없이 이야기 해도 편한 분위기 이런 걸 좋아해요.

광주로 내려오면서 가장 아쉬운 거는 서울집 근처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동네 술집이 있는데, 거기가 혼술이 가능한 곳이었어요. 사장 언니랑도 친해지고 동네다 보니까 평상시에 직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냥 동네 사람들,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술 한잔 하고(소화: 일본드라마 중에 심야식당같은 곳이군요/ 일동: 아 맞아요.) 거기서 친해져서 주말에 같이 놀러다니기도 하고 또 가서 술 마시고 하하하 이런거.

- 을 사랑해요. 어떤 사람들이 3분의 1을 잠자는 데에 허비하는 것이 아깝다고 하는데, 저는 일도 아깝지 않아요. 내가 깨어서 열심히 산 만큼 잠 자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보상받는 느낌이고 일단 침대 안이 너무 푸근해요. 스트레스 푸는 것 중에 하나가 잠 자는 거에요. 그 다음날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많이 얻어서 잠이 제 인생에서 진짜 소중해요. 중요한 포인트에요!

소화 : 앞으로 5년간 본인의 계획은?(그 속에 동행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면 함께요)

 

저는 장기계획은 세우지 않아요. 저는 향후 2-3년 계획을 세워요. 장기계획은 그대로 가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2-3년의 계획을 큰 거 위주로 세우고 가다보면, 거기에 맞춰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지금도 딱히 내가 무엇을 해야지 보다는 전 직장을 마무리 하고 나왔으니, 이제 지역에서 공부도 하고 공부하면서 제가 또 느끼는 것들이 생길 테고, 최소한 2년 정도는 이걸 하다보면 내가 또 하고 싶거나 하는 방향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무얼 결정할 때 길게 고민하지는 않아요. 인권단체에서 의미있게 일을 했지만, 어느 순간 문제제기를 하고 후의 변화 이런 것들에 한계를 느끼는, 그래서  제도나 법 개혁 쪽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법 공부를 하게 된 거고, 그리고 국선전담하다가 광주시에서 인권정책을 담당하게 된 것은 원래 제가 했던 활동을 정책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고, 법무부 갔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인권정책 업무 자체는 저랑 맞는 부분도 있고 했지만 오래 하다보니 형식화 되고 속이 비어가는 느낌이 있어서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왔어요.

특히 저는 국외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국내에서 제가 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국내 이슈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라요. 현장의 고충이나 문제점들은 모르니까 지금 타이밍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못 하겠다 싶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용기 낼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닐까 했던 거 같아요. 여기서 1-2년 더 하면 안락함에 빠져서 익숙해지면 겁이 나서 못 나오겠다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용기낼 수 있는 타이밍 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수 님에게는 마지막으로 용기낼 수 있는 때
동행은 고비를 넘어 10주년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때
그렇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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