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의 히스토리가 밀려들어 온다.’
종종 이런 영화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인공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말, 또는 답답한 심경을 노래로 표현하며 끝나는 영화들을요. 그 모습을 볼 때 저는 한 인물의 히스토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NO.007]
아씨오, 히스토리(1)
2022년 4월 16일

존재를 알게 된지 끽해야 12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의 모든 역사가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버리는 것이,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요. 영화 얘기하다보면 가끔 ‘영화가 선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 같은 표현을 쓰곤 하는데, 2시간 만에 온 역사를 설득시키는 이 주문이야말로 영화가 거는 다양한 마법 중 가장 위대한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던 <타미 페이의 눈>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타미 페이의 눈>은 1970~80년대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기독교 전도사 부부 타미 페이 베이커(제시카 채스테인)와 짐 베이커(앤드류 가필드)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입니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딱 두 가지로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1. 종교 방송국을 설립했구요. 2. 테마파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체 몇 명의 구독자 분들께 커피를 받아야 가능한 일인지,, 정말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영화는 이들이 결혼을 하게 된 사연부터 시작하여 성공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며 몰락하게 되는 결말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데요. 이 영화를 여러 군데에서 소개하면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종교계 버전이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 영화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조단 벨포트가 엄청난 성공을 이뤄낸 뒤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모습을 다이나믹하게 엮어낸 영화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영화가 나왔을 당시 디카프리오가 유력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언급될 정도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것 또한 절묘한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참고로 그 해의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가 수상하였습니다.

 

<타미 페이의 눈>의 시작은 조금은 뻔하게도 타미 페이의 클로즈업된 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진한 속눈썹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화면이 줌아웃이 되면 타미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화장을 지우고 있습니다. 정확히 파악은 잘 되지 않지만, 어떤 행사의 제작진이 타미의 화장을 조금 연하게 한 뒤 사진을 찍으려는 상황 같습니다. 타미가 속눈썹과 눈썹 등이 영구 화장이라 지울 수 없다는 말을 하자, 스탭이 그렇다면 한 번도 그 속눈썹 없이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는지 묻습니다. 타미는 한 번도 그런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왜냐면 이건 내 트레이드마크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건 내 트레이드마크고, 이게 없으면 곧 내가 아니다. ‘타미 페이 – 속눈썹 = 0이다’ 라는 말을 하는 타미 페이를 보면서 든 생각은 먼저 이 사람, 여러 의미에서 보통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자신의 확실한 트레이드마크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그것을 지킬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멋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TV, 특히 쇼미더머니를 볼 때 많이 볼 수 있는 이상한 소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많은 출연자들의 팔이나 목 부위를 덮고 있는 파스(?) 같은 밴드들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그건 타투를 가리기 위해 붙이는 건데요. 모두가 그거 타투인거 알고 있는데도 반드시 붙여야만 하는 방송법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 얘기는 대충 넘어가구요. 아무튼 타투나 화장타투나 모두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말 누군가는 트레이드마크로 여길 만큼, 이게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미를 담아 내 신체에 새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타투를 많은 사람들이 방송에 출연하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출연진의 요구에 따라 가리게 되는 것이 현실인데, 타미는 당당히 그러지 않겠다고 자신의 신념을 밝힌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좀 멋져보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첫 등장하는 타미의 모습이 어쩐지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젠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한 한 인물이, 자신의 최후의 보루인 눈 화장이라도 지키기 위해, 이것만은 잃지 않기 위해, 조금은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 인물의 두 가지 상반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데요. 저는 이것이 이 영화의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타미 페이의 두 가지 모습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앞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보고 결정을 내리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직 이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기에, 영화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이 영화는 타미 페이의 노래로 마무리됩니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왜냐면 마지막 타미 페이의 노래는 사실상 영화의 오프닝에 영화가 던졌던 질문을 반복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26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영화를 통해 타미 페이라는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목격한 모든 일들, 그 과정에서 타미 페이가 한 선택들, 타미 페이는 위인인지 악인인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약점을 가진 나약한 인간인지, 아니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영리하게 이용한 장사꾼인지, 그의 신을 향한 사랑은 정말로 진심인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마침내 타미 페이가 무대에서 홀로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에 다다른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직접 지켜본 당신에게 타미 페이의 눈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 묻습니다.

 

저의 대답, 그리고 제가 목격한 또 다른 ‘마법 같은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드리는 말씀

1. 제목의 아씨오(Accio)는 해리포터 세계관에 등장하는 소환 마법 주문입니다.


2. 이번주엔 해리포터의 스핀오프 시리즈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개봉했는데요. 이번 제목에 구태여 마법 주문 이름을 사용한 까닭은, 다음주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3. <타미 페이의 눈>의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영화보시고 답장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보내주신다면, 다음주 뉴스레터 내용에 포함해보려고 합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시청 가능하십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의 답장을 싣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4. 이번주 시작한 오프라인 영화모임, 여러 분의 성원(?) 덕분에 1회차 잘 진행하였습니다. 평일이라 참석 못해서 아쉽다는 의견 보내주신 분들이 계신데, 이번 모임 잘 마무리해서 다음에 더 다양한 요일, 더 다양한 주제로 해보고 싶습니다. 기대해주세요!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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