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일곱 번째 흄세레터
이번 한 주도 잘 보내셨나요? 흄세레터 7호에서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작가 버넌 리를 소개하려고 해요. 버넌 리의 《사악한 목소리》는 인문학적 지식과 파괴적 매력을 두루 갖춘 남다른 캐릭터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요, 표제작인 단편 〈사악한 목소리〉는 바그너만을 추종하며 인간의 육성이 만들어낸 음악을 음란하고 불순한 것으로 치부했던 한 작곡가의 광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다른 수록작들에서도 공통된 키워드를 뽑자면 집착’, ‘광기’, ‘파멸’ 같은 것일 데요, 버넌 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요?
서평가이자 여성학자인 정희진 님이 버넌 리를 읽고 남긴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갑갑한 현실에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기분이 들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사이다 같은 글이랍니다.) 그 전에, “그녀의 작품과 삶의 전략은 같았다”라는 리뷰 말미의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키워드로 알아보는 버넌 리의 삶’을 먼저 보고 가시죠.
키워드로 알아보는 버넌 리의 삶

#필명

본명은 ‘바이얼릿 패짓’. 스무 살 이전부터 ‘버넌 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필명을 쓴 이유는?

🗣️ “여자가 예술이나 역사, 미학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면

노골적인 경멸심을 드러내지 않고는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페미니스트

공공연히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던 버넌 리는 젊은 남자처럼 차려입고 유럽 전역을 누볐다.

#규정은거부한다

영국 작가 에이미 레비를 비롯한 몇몇 여성과 오랜 세월 내밀한 관계로 지냈지만,

레즈비언으로 고정되고 규정되기를 거부했다.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소속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에 사는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버넌 리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했는데, 대부분의 글은 영어로 썼으며 대부분의 생애는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남성’ 주체의 혼란과 파멸

자기 시대를 내려다본 버넌 리, 미학이 정치가 되다

정희진(서평가·여성학자)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이 말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말로 알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근대 자아의 핵심적 모순이다.

 

근대에 이르러 유럽의 일부 인간들은 자신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휴머니즘을 제창하며 ‘인간다움’을 즐겼다. 유사 이래 최초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예술과 여행을 즐기는 인간이 탄생했다.

 

근대는 인구와 지식이 폭발한 시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물적 조건은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게 세계를 규정하는 자(definer)의 지위를 부여했다. 나머지 인류는 규정당하는 자(defined)가 되었다. 규정당하는 자들은 비록 지배자의 일방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이 누군지 ‘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대지에 버려진 자들이다. 진짜 골칫거리는 남을 정의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모를 수밖에 없다.

 

권력이 언어를 창조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언젠가는 이 권력을 빼앗기지는 않을지, 무엇보다 자신이 틀린 것은 아닌지 등 저 깊은 무의식으로부터 의문이 출몰한다. 때문에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남성 문화가 만들어낸 규범은 누군가의 시선과 인증이 절실하다. 자기 눈앞에서 바로 인정해주는 노예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비현실적임을 그들도 안다.

 

자기 조작적 존재는 자신에 의해서만 실재한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의 인정, 사회적 합의가 아닌 오로지 자신감에 달린 것만큼 불안한 현실이 어디 있겠는가. 허구적인 자신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자아는 어느 술 이름처럼 ‘섬싱 스페셜’이 아니라 ‘낫싱’, ‘노네임’이 될 판이다. 당대 인정받지 못한 걸작(언어)은 나중에라도 읽히겠지만, ‘무관중 경기’가 무슨 소용인가. 먹고살기 바쁜 노동자 계급은 중노동에 하루가 버겁다.

 

그러니 노동도, 재생산 노동도 하지 않는 할 일 없는 중산층 지식인 남성들은 자기 옆의 여성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혹은 술주정과 폭력으로 질문을 대신한다.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이 누군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사랑하는 이여, 나는 누구인가요?’ 《사악한 목소리》에 등장하는 이들은 점잖게(?) 물어보다가 죽어간다. 이 작품의 남자들은 짜증과 신경쇠약으로 폭발 직전이다. ‘나는 누구야? 당신은 나를 사랑해? 당신은 나를 인정해?’ 여자는 답하지 않는다. ‘남자’는 울고불고 애원하고 각종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자기 목에 총을 댄다.

 

프로이트는 〈여성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겸손하게 말했다. “여성은 제게 검은 대륙입니다. 제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성 여러분, 여성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세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젠더와 인종을 ‘검은 대륙’으로 대상화하는 세 번의 자책골이다. 실수(?)를 만회하려고 할수록 게임은 엉망이 될 것이다.

 

절대로, 영원히 알 수 없음이 주는 두려움. ‘진실(나는 누구인가)’을 알기 위해 남성 문화는 여성을 고문하기도 하고, 열쇠를 쥔 여성이 남자의 실수(?)로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모두 페미사이드(여성 살해)다.

 

남성은 여성이라는 타자에, 서구는 동양이라는 타자에 의지한다. 《사악한 목소리》에 실린 작품에 대한 나의 독후감은 1980년대 이후의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의 인식에 빚지고 있다. 그런데, 버넌 리는 그의 시대에 이 모든 것을 알았다! 그녀의 작품과 삶의 전략은 같았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게 하겠어. 누구도 나를 규정하지 못하게 하겠어!’ 그는 천재였고 그 자신이 장르가 된다. 버넌 리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자들의 고통을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고문한다.

 

당대 한국 사회는 공부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남성 문화는 역차별을 운운한다.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지금, 우리는 버넌 리부터 읽어야 한다. 어떤 인간관계도 권력 관계도 대칭적이지 않다. 그런데 ‘젠더 갈등’이라니? ‘한국 남성’은 주체(one)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당연히, 여성이 타자(the others)라는 사실도 모른다. 주체와 타자는 동등한 갈등 관계가 될 수 없다. 소거와 재구성, 전복의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대 우리의 임무는 버넌 리를 읽고 자신의 위치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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