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3일 (목) 웹에서 보기 | 구독하기
VOL.75 사계절 시리즈: 봄 | 『도시의 동물들』_길 고양이 ②  

🍀 기다리던
최태규 작가님의 연재글이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가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허망함과 그리움을 느낄 뿐이지 고양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도시의 동물들』 2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읽어보세요.

  
길 고양이 ②: 인간은 다 알지 못하는 고양이의 삶
어디에 사는 고양이든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다. 집 안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반 이상을 잠자는 데에 쓰는 고양이의 일상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밥이나 물을 주고, 쓰다듬거나 장난감 놀이를 하는 매우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얼마나 되는지 셈해보면, 우리가 고양이의 일상을 채우는 경험과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아차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물며 길고양이의 일상은 더 알기 어렵다. 열심히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가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허망함과 그리움을 느낄 뿐이지 고양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키우다 실종된 애완동물처럼 방을 붙이고 찾는 일도 적다. 돌보던 길고양이는 ‘이사를 갔나, 어디서 죽었나, 그저 사라진 건가’ 하고 짐작만 하는 느슨한 돌봄의 대상이다. 나는 길고양이가 어떤 경험을 하며 사는지 늘 궁금하다. 언젠가는 연구 주제로 잡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이른바 길고양이 복지 연구다. 지금은 고양이의 관점에서 살펴본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리 가설을 세워보자면, 사람이 기르다 어느 순간 통제를 벗어난 고양이나 일부러 버린 고양이는 처음부터 길에서 삶을 시작한 고양이보다 고난이 많을 것이다. 인간이 쓰다듬는 손길이나 불러주는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던 고양이가 집에서 나오거나 쫓겨나서 길에서 살게 되면, 그래서 사람이 챙겨주던 끼니와 몸을 누일 쿠션이 사라지면, 고양이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이런 고양이들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알기 때문에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보다 다시 사람의 집으로 입양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동물학대 범죄에 노출될 확률도 높다. 만약 누군가에게 입양되지 못한다면 길에서 확보해야 하는 먹이 자원, 영역이 겹치는 다른 길고양이와의 관계, 위험한 사람이나 자동차를 피하는 요령 같은 요소에 따라 생존과 번식 성공률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내 안전 문제에 시달릴 것이다. 다시 인간의 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 험난한 생존 기간은 매우 짧을 것으로 짐작된다.

애초에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은 좀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야생화된(feral)’이라는 말로 불리는 이 고양이들은 자원이 풍부한 민가 근처를 맴돌지만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생존 확률을 높여왔다. 여느 야생동물처럼, 사람이나 개가 안전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달아나거나 숨기 바쁘다. 이런 성향에는 부정적 경험과 그것이 오랜 기간 축적된 유전자가 관여한다. 사람이 싫지만 사람이 만들어내는 먹이 자원은 유용하다. 사냥은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지만, 사냥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는 것이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을 4000~1만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알게 되었다.

이들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경험을 하며 일상을 보낼 것이다. 사냥감을 기다리고 쫓고 물어 죽일 때 엔도르핀이 뿜어져 나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포식자와 자동차 사고를 항상 신경 쓰며 피해야 한다. 잠자리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울 것이다. 이들의 가장 큰 천적은 사람이고, 그 외에 고양이를 포식할 수 있는 개가 확률적으로 가장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고양이가 만만한 먹잇감은 아니지만 담비나 수리부엉이 정도 되는 야생동물도 때때로 고양이를 잡아먹을 것이다. 선의를 가진 사람이 이런 고양이를 ‘구조’한다 해도 이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공포와 공격적 성향 때문에 입양될 가능성은 낮다. 설사 입양된다 하더라도 폐쇄된 공간과 인간에 대한 공포로 인해 복지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영영 침대 아래에 숨어 사는 고양이로 늙어 죽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고양이에게 인간의 ‘구조’는 그 의도와 달리 죽음 혹은 ‘사냥당해’ 평생 감금당하는 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돌봄과 폭력이 반드시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

✍글_최태규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로 일한다. 『일상의 낱말들』(공저), 『관계와 경계』(공저), 『동물의 품 안에서』(공저) 등을 썼다.


📷사진_이지양

순수 미술과 미디어를 전공한 시각 예술가이다. ‘당신의 각도’ 전시를 계기로 『사이보그가 되다』에 사진으로 참여했고, 이후 『일상의 낱말들』, 『아무튼, 메모』, 『1만 1천 권의 조선』 등의 사진을 찍었다.


4월 중순입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다음 북뉴스는 신간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 이소영 작가님 인터뷰입니다.
북뉴스는 독자가 완성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