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티랩을 시작한 지도 어언 6개월이 지났군요. 두 계절을 돌아 드디어 ‘세대’라는 주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게임 중간 단계에 최종보스를 미리 만난 느낌이랄까요?🦁

써티랩에는 ‘요즘 애들’ 같은 사람도 있고, ‘라떼’를 자청하며 뒷짐을 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세대에 대한 프레임으로 득을 본 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90년대 생이 온다>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쟤는 좀 특이해, 사회생활을 잘 못하네, 너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냐…”와 같은 말을 종종 들었는데요. ‘MZ’를 분석하는 많은 컨텐츠가 소비되고 있는 요즘엔 저다운 모습이 '요즘 애들'이라는 말로 수용되기도 하고 공감을 얻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바뀐 게 별로 없는데 말이죠. 태초에 ‘MZ’라는 말이 있기 전에, 젊음을 지닌 당신이 있었습니다. ‘꼰대’라는 말이 있기 전에 존경할 어른들이 있었겠지요. 지금 우리는 어떤 세대에 살고 있는 걸까요?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혹시 '몹'을 아시나요? 온라인 게임 '메이플 스토리'의 달팽이나 슬라임, '바람의 나라'의 다람쥐나 토끼를 '몹'이라고 부릅니다. 그 몹들에게는 막연한 이름만 붙어 있을 뿐, 개성있는 이름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써티랩 연구원들의 닉은 각각 무지, 베르, 비버, 아콧, 더기인데, 이들은, 각 고유의 개성과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하게 묶고야 마는 '세대담론', 즉 'MZ세대'라는 네 글자로 우리를 명명한다면, 우리는 '몹'과 다름 없이 상당히 해상도 낮은 이름을 갖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저는 '이름 없는 그 무엇 언저리'가 아닙니다만? 

저는 그들의 논리대로 연령상 MZ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제가 MZ세대인지 (정말) 의문입니다. 매스컴엔 늘, 'MZ세대라서 이러저러하다'라고 분석하지만, 저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고요, 변화에 유연하지도 않습니다. 과감한 레버리지도 멀리하고요. 래퍼이자 방송인이자 유튜버 등등인 이영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MZ세대는 알파벳 계보를 이어가고 싶은 어른들의 욕심이 아닐까". 저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게임 유저는 몹을 '사냥'해서 레벨을 높입니다. 우리를 '몹'으로 만들어서 승진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언필칭, 기회다 싶으면 'OO세대'를 붙여가며 설명하곤 하는데, 저는 그 행동을 비웃을겁니다. 그 설명이 너무 두루뭉술해서요. 제가 글을 쓰며 서서히 발진하다가 흥분을 했습니다만, 그러니까 제 주장은, 우리를 '몹'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각각의 고유한 모습으로 따돌려 보자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우리는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빛과 소리를 가진 존재임을 기억하자구요.

거대한 휴머노이드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에는 십 대의 어린아이들만이 탑승이 가능합니다. 이 아이들은 ‘서드 칠드런’(Third Children)이라 불리며 인류를 위협하는 사도와 맞서 싸우라고 강요받아요. 하지만, 서드 칠드런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사뭇 다릅니다. 네르프의 어른들은 그저 연구해야 할 대상, 에바를 조종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바라보고 있고요. 군조직의 나이 든 간부들은 이따금 "어린아이들이 무슨 세상을 지킨다고... 그 돈 전쟁 경험 많은 나한테 주지"라고 퉁명스레 말합니다. 

에바에 탑승하는 14살 소년 이카리 신지(주인공) 역시 에바를 타는 것이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애니메이션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가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죽여야 하는지 고뇌하며 괴로워합니다. 이 아이들은 세컨드 임팩트 이후의 세대로, 전대미문의 대재앙 이름하여 세컨드 임팩트를 겪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에바에 탑승하는 것은 그저 살기 위해서 해야 한 것뿐입니다.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전쟁에 지금 서드 칠드런의 일상이 있기 때문이죠.

MZ세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네르프의 어른들처럼 그들의 특징을 규정짓고, 정의 내리기 바쁩니다. MZ세대는 변화에 유연하고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쓰는 돈이나 시간을 아끼지 않는 특징 따위 말이죠. 반면, MZ세대에겐 유별나고 특이하다, 오늘만 사는 것 같다는 식의 시선이 불편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무척이나 불안하고 복잡한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n번방 사건과 세월호 참사,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와 1997년 IMF 외환위기 등 세대에 그늘을 드리운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죠. MZ세대들은 이러한 사건들 이후에 태어난 존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정말 좋아서 특이하고 유별난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어른들이 남겨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자연적인 진화는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서드 칠드런의 삶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의 혼란 가운데에서도, 남들이 규정하는 MZ세대 낙인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체성을 찾아 나서야 하죠. 비로소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요. 서드 칠드런 이카리 신지가 에바를 타는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스스로 되뇌던 말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래, 도망치면 안 돼! 할게요. 제가 탈게요."

"우리 조카가 참 착해." 오랜만에 뵌 고모는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저에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불쾌했습니다. 4년 전 할머니께서는 급작스러운 사고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화장실도 식사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마침 저는 이직 준비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제 역할이 되었죠. 하루아침에 벌어진 가족 돌봄을 제 선택으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넋이 빠진 할머니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호전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날들에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세 달을 보냈습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억울하고 이직은 늦어지는데 이 상황과 나의 존재가 그저 착하다는 말로 정의되는 게 불쾌했습니다. 가족 돌봄은 ‘효녀’라는 언어에 가려져 건강한 개인과 자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영케어러(Young carer)는 장애나 질병 등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년을 뜻합니다. 써티님들도 얼마 전 뇌출혈 아버지를 방치해 간병 살인을 한 20대 청년이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는 뉴스를 접하셨을 텐데요. 뉴스 한 줄을 읽어갈 때마다 그 문장에 다 담기지 못한 고민과 분노가 느껴져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습니다. 영케어러는 개인의 진로 탐색 기회가 줄어들고 학업이나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초고령 사회와 핵가족화 그리고 가족주의라는 전 세대에 걸친 현상으로 생겨난 문제이지만 책임은 공동이 아닌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다행히도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영케어러에 대한 국가적 조사가 이뤄지고 관련 제도도 바뀌고 있죠.

우리는 그 누구도 돌봄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돌봄을 받았고 누구든 노인이 되어 돌봄을 받게 되는 동등한 존재이죠. 그렇기에 가족 돌봄은 가정 안에서의 개인적인 일이 될 수 없고 세대를 나누어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모든 세대의 공동체가 함께 안고 가야 할 숙제입니다. 장황하고 분노가 가득 찬 글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부모 세대는 누가 돌봐야 하나요?

요즘 저의 출퇴근 길동무는 대게 유튜브 입니다. 이어폰을 꽂고 한 뼘 짜리 화면에 집중하면 덜컹덜컹 복작복작한 지하철 안은 혼자만의 콘서트장이 되기도 극장이 되기도 합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던 걸 흘끗 보고 넘기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어 눈에 보이는 클립들을 다 챙겨본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좋은 연기로 사람들을 웃고 울리던 배우들이 합창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려낸 뜨거운 싱어즈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매일 같은 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알지 못한 채로 스쳐지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도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흘려보내는 많은 콘텐츠 중에 하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원 지하철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쾌한 순간들처럼 불쑥 눈 앞에 들이밀어진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뜨거운 싱어즈의 마지막 무대 영상을 몇 번 씩 돌려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제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결국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이뤄내는 합창처럼 서로 다른 개개인을 인정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그래서 안전하고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모습이겠다 느낍니다.

젊은이들은 인생의 선배들을 꼰대라 부르며 외면하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저래서 걱정이라며 혀를 차는 시대를 살아가며 어떻게 하면 그 골을 메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대라는 신화에 갇혀 서로를 규정하고 비교하며 심지어는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앉아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일지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만 낼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점차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어우러져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서로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함께 하나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길 바라봅니다.

세대를 구별하는 단어는 어디로부터, 어떤 목적으로 탄생한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도구에 따라 시대를 구분 짓는 단어가 시작할 즈음이었을까요?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더이상 특정한 도구를 시대의 상징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통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공통의 의식이나 풍속을 전개하는 일정 폭의 연령층’을 의미한다는 세대의 단어 정의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군요. 유사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면 공통의 경험이 생겨날 수 있고 그에 따른 영향을 받게 될 확률이 높지만, 알파벳 하나에 모든 생활양식과 존재 정의를 묶어 두기엔 그야말로 무리수입니다.

‘코호트(cohor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특정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의미하지요. 저는 ‘베이비 붐!’하며 태어나 덜컥 빨간 딱지를 맞이했습니다. IMF라는 말이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의 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알아버렸지요. 태극기를 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모르는 사람과도 어깨동무 하는 법을 배웠고, 국가 원수의 죽음을 연달아 목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찬란한 생명들을 삼켜버린 원수 같은 배의 침몰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태어날 땐 없었던 스마트폰이 이제는 분신이 되어버렸죠. 21세기에 전쟁 소식을 듣기도 하고 전쟁 같은 기후 위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겹쳐지지 않을 것 같은 알파벳 한 자의 세대로 가름하기 보다, 어떤 경험 속에 살아왔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삶에 흐르는 희노애락을 발견할테고, 겹쳐지는 기억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니까요. 써티님들은 어떤 기억 속에 살고 있고 그 경험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앞으로는 어떤 시대를 함께 살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