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단연 데카르트에서부터 앨런 튜링, 스튜어트 브랜드, 레이 커즈와일을 거쳐, 실리콘밸리식 이상주의의 기원을 정리해주는 파트입니다. 포어는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세계관이 통념과는 달리 개인성(개별성), 프라이버시, 지적 재산 등 자유주의적 가치에 반하고, ‘완전한 일체’나 독점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런 문화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사용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죠.
     백인 남성 중심적인 컴퓨터-테크놀로지의 역사를 되짚으며, 현재의 인공지능이 얼마나 인공‘무지능’에 가까운지를 밝히는 책 《페미니즘 인공지능》은, 마빈 민스키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테크놀로지 분야의 기술지상주의, 천재 숭배 문화, 성·인종 차별주의 등을 지적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남성 개척자들이 때로 미성숙할 만큼 이상적이고 도취적인 신념으로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포어에 더해, 브루서드는 별난 아이디어, 창의적 몽상을 과도하게 장려하는 테크 분야에서 “정신 나간 아이디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필요하다고 신랄하게 말합니다.
     여전히 우리 인식에 배어 있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대한 “어리석을 정도의 환호”를 드러내주는 이 책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역사와 개념에 대한 흥미로운 개론서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테크놀로지 분야가 얼마나 오랫동안 뿌리 깊게 백인 남성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더 다양한, 다수의 사람들이 일하도록 해야 할 때 수학자와 엔지니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사람을 대체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엄청난 이득을 봤다.”―《페미니즘 인공지능》, 138쪽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는 인터넷의 통제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구글이 예측할 수 없는 말을 검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장소’를 바꾸는 일, 환경을 바꾸기 위해 ‘이동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행을 떠날 것을, “단, 자기 찾기가 아니라 ‘새로운 검색어’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이때 여행이란 삶에 새로운 활력과 가능성을 가져다주는 ‘약한 유대관계’를 찾아 나서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후쿠시마, 타이완, 체르노빌 등지로 떠난 일종의 여행기를 들려주면서 ‘관광’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탐구합니다. 저자 스스로 말하듯 ‘자기계발서’처럼 쉽고 실천적으로 쓰인 이 책은 《관광객의 철학》 등 이후 그의 저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재미있고 명료한 소품입니다.

“환경을 달리하여 사고, 발상, 욕망이 바뀔 가능성에 거는 것. 자신이 놓인 환경을 자기 의지로 부수고 바꾸어가는 것. 자신과 환경의 일치를 스스로 부수는 것. 구글이 주는 검색어를 의도적으로 배반하는 것. 환경이 요구하는 자신의 모습에 정기적으로 노이즈를 끼워넣는 것.”―《약한 연결》, 12쪽

한국에서도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중소도시가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습니다. 하물며 그와 연동돼 있는 농촌 마을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일본의 한 시골 마을 가미야마는 전국에서 스무 번째로 소멸 가능성이 높은 마을에서 도시로부터 청년들과 기업들이 옮겨 오고, 지역경제가 되살아난 지방재생의 성공 사례로 진화했습니다. 이 책은 현장에 가장 밀착해서 들려주는 “희한한 시골 마을 이야기”이며, 그 중심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있습니다.
     ICT와 미디어는 가미야마 마을에서 IT 기업의 위성사무실과 스타트업이 이주할 수 있는 인프라이자, 이주자와 원주민의 교류, 민관 협력 등을 활성화하는 도구입니다. 규모와 방식 차원에서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협력과 공동체를 이야기하나 독점을 낳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주 4일만 일하는 카페, 졸업생들의 창업 지원, 푸드허브 프로젝트 등 구성원 개인과 공동체의 능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는, 실질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ICT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계의 생리와 문화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호평받는 HBO의 코미디 시리즈입니다. 혁신적인 압축 알고리듬을 개발하게 된 프로그래머 리처드 헨드릭스가 거대 테크 기업의 어마어마한 오퍼를 거절하고 동료들과 Piped Piper(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과정을 메인 플롯으로, 업계 허와 실을 (적당히) 들추는 실리콘밸리 패러디가 펼쳐지는데요. 구글을 연상시키는 극중 기업 훌리,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할 듯한 벤처 투자자, 어떻게 봐도 사회적 감각이 결여돼 보이는 기크·너드들, 과장된 신기술의 가치 등 동시대 테크업계의 면면을 우스꽝스럽고 유쾌하게, 또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리처드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남성) 성장 서사로도 흥미롭게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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