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6월 마지막 주가 아닌데 벌써 도착한 뉴스레터에 놀란 분들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때마침 마지막 주 목요일에 7월이 시작되어 이번 달에는 폭염에 쏟아지기 전에 삼삼한 기운으로 뉴스레터를 날려봅니다. ‘마친배우미’ 소식 열네 번째 주인공은 규찬(이규찬)입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딱 꼬집어 정의하기 힘든 다재다능한 규찬은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동시에 PaTI 재학 때부터 작년까지 ‘효자맥주’를 만들기도 했고요. 이벤트를 기획하는 ‘에마논’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클럽에서 음악을 트는 DJ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격주 금요일마다 합정동 무대륙의 지하 공연장에서 비대면 공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청춘’이란 단어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규찬을 살며시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규찬. 오랜만이에요. 합정동 ‘무대륙’을 인터뷰 장소로 정했는데 혹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여러 기획과 디자인을 돕는 활동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집 바로 앞이라서요. (웃음)
무대륙은 2009년부터 합정동에 자리 잡은 문화복합공간이에요. 카페와 지하 공연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작년 9월 공연장이 문을 닫아버렸어요. 그래서 말 그대로 창고로 변해버렸죠.
지금 저희가 대화하는 장소이기도 해요. 보시다시피 무대륙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적재되어 있죠.
그럼 옛 공연장, 현 창고로 쓰이는 이곳에서 규찬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무대륙은 저에게 각별한 곳이에요. 성인이 되고 홍대 인디밴드 공연을 처음으로 접한 곳이거든요. 그래서 이 공간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공연장이 닫는다는 사실을 무척 아쉬워했죠. 현재 저는 무대륙의 공연을 지속하는 방법의 하나로 비대면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격주로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 시간에 뮤지션을 초대하면 창고가 공연장으로 바뀌죠. 물론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지하 현장에 들어오지는 못하고요. 대신 라이브로 공연을 촬영해 유튜브로 송출하면 위층 지상 카페에 준비된 빔프로젝터 두 대로 쏘아서 방문객이 바로 보고 들을 수 있어요. 프로젝트 이름은 ‘무스MUS’예요. ‘무대륙 사운드’의 준말인데, 간단히 말하면 무대륙에서 일어나는 사운드를 아카이브하는 일입니다.
어떤 계기로 무스를 하게 되었어요?
무대륙의 오랜 손님으로 사장님과 알고 지내면서 무대륙 공연장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됐어요. 조언 삼아 비대면으로 공연을 라이브 스트리밍 하면 어떻겠냐고 말씀을 드려봤는데 실제로 제게 기획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사실 비대면 공연 경험이 전무한 상태라서 제게도 큰 도전이 됐어요. 제가 기술을 잘 알지도 못하니 할 수 있는 선에서 틈틈이 배우며 써먹었고 제가 아는 뮤지션, 무대륙이 아는 뮤지션에게 연락을 하면서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무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무대륙 MUS 포스터, 2020 / 사진: 심재영
작년 10월이면 공연장을 닫은 직후네요.
그게 중요했어요. “쉬면 안 된다.” 사장님은 생각한 걸 실제 행동으로 옮기길 주저하지 않거든요. 구두로 나온 아이디어가 좋다면 즉각적으로 실행해서 운영하는 터라 자칫 일정이 늘어질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됐죠. (웃음) 처음에는 누구를 부를까 고민이 많았어요. ‘까데호’라고 오래 활동한 인디밴드를 초청했고, 그다음에는 전자음악가인 ‘모과’에게 의향을 물어봤어요. 이렇게 조금씩 시도하면서 안정을 찾으니까 이제는 2개월 전에 스케줄을 짜야 하는 상황이 되었네요.
어떤 뮤지션들이 초대되나요?
매달 진행하는 2회 공연 중 한 번은 무대륙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밴드나 인디 뮤지션, 그리고 무대륙과 인연이 깊은 뮤지션들이 참여하고요. 저와 전자음악가 고담(Go Dam)의 기획 아래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 나머지 1회를 마련해요. 비대면 공연은 매번 한 팀이 1시간 이내로 진행합니다. 근데 사실 비대면 공연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혹 복잡한 문제가 있나요?
그냥 제가 비대면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공연에 직접 참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좋은 에너지, 관객과 뮤지션의 소통이 공연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이런 현장감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비대면 공연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뮤지션을 보러온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볼 수 있는 게 감사하다고 말해요. 무대륙이란 카페를 찾은 대다수의 사람 중에서는 우연히 비대면 공연을 접하면서 강제로 음악을 듣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름의 목적에 맞지 않는 분들은 자리를 피하기도해요.

같이 일하는 스태프 분들이 궁금해지네요. 
뮤지션 고담은 제가 처음 무스를 기획할 때 자문했고,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로는 엔지니어로 참여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료예요. 바젤디자인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 있는 클럽을 다니며 음악을 틀고 다닐 때 알게 됐어요. 고담의 음악은 외국에 있을 때 이미 알고 있었고, 이후 서로 같이 음악을 틀기도 했죠. 2019년 PaTI에서 여는 《파주자유음악잔치》에 섭외하기도 했고요. 서로 품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무대륙에서 매니저로 수년째 일하는 유상용은 음악을 좋아하는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홍대 근처에 살며 다양한 공연장에서 일한 터라 공연 기획 및 관리에 능한 친구예요. 틈틈이 자기 음악도 하고요. 무대륙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무스 기획을 돕고 엔지니어분들 어깨너머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어요.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도 넘치는 친구죠. 이 밖에도 무대륙 초창기부터 엔지니어링을 봐주시던 정한길, 이현우 두 분은 스케줄이 가능한 날에 맞춰 일을 하러 오세요. 저희 공연이 펑크나지 않는 원동력이자, 든든한 존재입니다. 
품을 주고받는다는 표현이 흥미로워요. 이런 사람들이 또 누가 있을까요?
주로 어릴 때 같이 공연을 도왔던 친구들이죠. 에마논처럼 함께 이벤트를 만들거나, 시간 날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요. 일이 보통 주변에서 유입이 되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일은 디자인 작업인가요?
공연예술, 문화영역의 디자인 작업도 있고요. 이를 벗어나 제 도움이 필요한 영역의 활동도 속해요. 가령 음악 행사나 전시, 플리마켓을 기획하는 일이요. 행사를 치르다 보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이벤트를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를 정비하고, 찾아온 사람들이 잘 즐기고 머물다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건데 이게 참 중요한 일이거든요. 행사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는 주체가 되는 것, DJ로서 음악을 트는 행위도 일에 포함될 것 같아요. 

무대륙에서 하는 ‘일’은 규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무스는 무대륙이란 공간에서 일어나요. 자영업을 하는 장소에서 개최하기 때문에 업장의 입장을 함께 고려해야 해요. 무대륙에는 카페 운영을 위해 존재하는 기존의 시스템이 있는데요.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금전적으로 손해가 나지 않고, 일하는 직원들이 과도하게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스트레스도 크게 받지 않고, 너무 컨셉츄얼하게 공간을 꾸미지 않아 원래 카페가 목적인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거죠. 이런 요소들을 조정하며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인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라, 개인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드는 작업처럼 느껴져요. 바젤에서 돌아와서 디자이너로서 혼자 작업을 한 게 이제 3년 정도 되었어요. 늘 누군가의 일을 받아서 하는, 클라이언트가 존재하는 생계형 작업이죠. 노트북, 종이, 인쇄물 등 그래픽 디자이너의 일상에서 벗어나 제가 생각하는 걸 다른 매개체로 구현하는 걸 실험해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이라면 PaTI 재학 때부터 시작한 ‘효자맥주’도 있고, ‘에마논’도 있는데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효자맥주는 2015년 시작해서 작년에 마무리했어요. 에마논은 자체 기획이 2019년 이후 없었고 청년청 개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저희끼리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편집해 아티스트로 참여한 게 2020년 10월이었죠. 에마논의 핵심은 이벤트 기획이기 때문에 작년부터 잠정적으로 활동을 멈춘 상태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저희 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획이 떠오르지 않아서 쉬는 중이거든요. 무엇보다 효자맥주와 에마논은 다른 사람과 함께 기획하고 작업한 공동의 결과물이에요. 2020년 이후 저는 디자이너로서 혼자 일하기 때문에 지금 하는 생각이나 작업을 과거와 연결 짓기가 조심스러워요. ‘무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갈매기의 꿈: Jonathan Livingston Seagull》 포스터, 2019

《The Quest》 전시 전경, 스위스 취리히, 2020
자, 그럼 PaTI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처음 PaTI를 알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우연이었어요. 시각 디자인에 전무한 상태에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날개 안상수의 개인 작업실인 ‘날개집’을 방문해 날개와 처음으로 만났던 날이 떠오르네요. 일단 첫날부터 날개에 매료된 부분이 있었어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덤블도어 같은 옷차림과 신사적이고 따뜻한 태도, 동시에 예리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담긴 어투 등에 말이죠. 그때 날개는 PaTI라는 교육기관을 기획 중이라는 말을 했어요. 여기를 졸업해도 학위가 제공되지 않고, 입학할 때에도 학위가 필요 없을 거라며, 관심이 있다면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저는 그다음 날 다니던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들고 갔어요. 훗날 어찌어찌 졸업은 했지만요. 그게 PaTI 예비학교의 모습으로 날개집에서 처음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의 시작이었어요. 함께 과정을 마치진 못했지만 ‘단’이라는 동료도 함께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날개집에는 정말 대단한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드나들던 공간이었어요. 하얀부터 시작해 구홍, 찬신, 리안, 노은유, 노민지, 김병조, 박우혁, 민병걸 김두섭 등...저는 철이 없어서 전혀 몰랐지만요. 상수동 홍대 후문에 위치한 날개집은 무수히 많은 책과 자료, 그리고 한 귀퉁이에 철학가, 사상가, 시인, 예술가, 디자이너를 모시던 재단의 향 내음이 자욱하던 곳으로 기억이 나요. 그리고 PaTI가 정식 개교하면서 입학을 마쳤을 때는 정말 놀랐죠. 긍정도 부정도 없이 말 그대로 놀랐어요. 파주출판도시 어느 빈 공간에는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소수의 사람이 앉아서 그곳을 채우고 있었으니까요. 이들이 만들어갔던 멋진 이야기는 훗날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규찬은 한배곳 1기죠. 좌충우돌의 시기였을 텐데 혹시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사건이 있나요?
저학년 때가 생각나요. 딱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인 제도권 교육 틀에 벗어난 배움이란 게 이런 것일까 생각이 나곤 했는데, 수업에서 주로 작업의 본질에 관해 묻는 걸 중시했거든요. 왜 이런 작업을 했을까, 무엇을 위한 디자인일까 설명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PaTI에서는 작업의 주체인 내가 어떤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이며, 내가 만든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크리틱을 통해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트라우마를 파고들었어요. 개인이 지닌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나아가 사회를 위한 실천적인 활동과 연결되는 작업이 멋있어 보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속적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모순적이라고 느껴서 방황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대표적으로 사진가 노순택 스승의 수업을 들을 때나 ‘일상의실천’에서 인턴을 할 때 말이에요. 멋진 스승들 사이에서 스스로 그런 생각에 지치며 디자인에 흥미가 줄어들고 배움에 있어서도 시큰둥해졌죠. 그러면서 작업의 소재를 제 개인의 즐거움을 되찾고 그것들을 작업이라 부를 수 있는 형태까지 가보는 모험을 시작했어요.

바젤디자인학교에서 작업한 타이포그라피 및 웹 플랫폼 디자인, 2018
지난 2019년에 이어 올해에도 《파주자유음악잔치》 일배움 수업을 이끌고 있어요. 졸업한 후 PaTI에 돌아와 스승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건 규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파주자유음악잔치》 첫 회부터 함께 했어요. 그 당시에는 날개가 디자인을 맡았고, 요기가 갤러리의 이한주, 김윤태 두 스승이 감독을 맡았죠. 동기였던 변산노을처럼 공연에 관심이 많은 배우미의 영향이 컸어요. 제2회에는 제가 메인 디자이너로 참여했고, 졸업 이후에도 《파주자유음악잔치》는 계속 그 횟수를 이어나가고 있죠. 수많은 뮤지션이 다녀갔고 조그마한 동네 학교의 실험 음악 축제에서 이제는 해를 걸러 찾아오는 파주출판도시의 볼거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학교에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PaTI는 배우미와 스승들이 엄청나게 바빠요. 예전에는 정기 커리큘럼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수의 열정 넘치는 배우미와 스승들이 합심해서 꾸려갔어요. 거기서 생기는 아쉬움이나 피로가 있었을 거예요. 재작년부터 커리큘럼에 속하면서 저와 에마논은 목표를 세웠어요. 어렵지만 단순해요. 음악잔치의 취지와 이를 거쳐 간 라인업의 명맥은 이어나가면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행사, 재미있는데 멋있기까지 한 행사, 무엇보다 배우미들의 축제인 행사가 되길 기원했죠. 2019년 진행한 《파주자유음악잔치: 개미호텔》이 성공적이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올해 다시 불러주셨을 때 사실 조금 고민이 들었어요. 행사를 치르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진이 모두 다 빠지거든요. 그래도 새로운 배우미들, 그들의 생각, 디자인을 만나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2년 주기로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걸 느껴요. 저는 늙고, 배우미들의 생각은 새롭죠.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PaTI에 다시 돌아와서 다음 《파주자유음악잔치》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혹시 지금 PaTI에 다니는 배우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해도 될까요?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은 협업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작업도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 생각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픽 디자인 작업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뮤지션 ‘소윤’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9  |  ‘산산 기어’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9  |  ‘SWIM’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8
바젤 나이트클럽 ‘Elysia’를 위한 전단지 디자인, 2018
규찬은 하고 싶은 게 많을 것 같아요.
특별한 머리나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정성스러운 공간을 차리고 싶어요. 아침에 나와서 마당을 쓸고, 마실거를 주문하면 내어주고, 설거지하고, 남는 시간에 작당 모의를 해서 재미난 것을 기획하고… 그것을 디자인하는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죠.
규찬이 꿈꾸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창작 행위가 펼쳐져 그걸 볼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행위가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좋은 갤러리, 좋은 카페, 좋은 클럽, 좋은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소비에 그치지 않고 그 공간만의 큐레이션된 프로그램과 디스플레이를 보며 영감을 얻어 또 다른 양질의 작업물이 생겨나고, 작업자로서 공간과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이요. 예전부터 이런 상호작용이 잘 일어나던 공간을 좋아했는데요. 시간대에 따라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한 공간을 쪼개어 다채롭게 활용하는 경우가 유럽에는 굉장히 많이 존재해요.
그런 공간은 생각보다 일찍 우리 곁을 떠나는 경우가 많더군요.
낮에는 카페, 밤에는 공연장으로 변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종속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해요. 공연장은 뮤지션과 관객이 있어야 존재하는 곳인데 공간에 대해 흥미를 느낀 뮤지션이나 관객의 유입이 없다면 공연장의 생명도 짧을 수밖에 없겠죠. 수많은 공연장이 속수무책으로 명멸하는 이유에 대해 다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열지 못해 그렇다고 말하지만, 실제 쫓겨나는 이유는 결국엔 젠트리피케이션을 버틸 수 있는 자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공연장은 공연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는 자생력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자생력이요. 공연장을 유지하려면 임대료를 포함해 일정 수준의 금전을 감당해야 하고, 이를 위해 주말 공연 매진에 올인을 하곤 하죠. 그런데 관객이 사라지고, 뮤지션과 엔지니어에게 돈을 주지 못하고,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못해서 문을 닫아버렸어요. 이런 문제의 뿌리는 결국 콘텐츠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물론 유흥시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법 제도가 좋지 못한 까닭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스스로 무너지죠.

실리카겔 《HIBERNATION》 앨범 커버, 2021
규찬이 생각하기에 꼭 필요한 콘텐츠는 무엇일까요?
무대륙을 예로 들면, 사장님은 공연장을 열기 위해 카페를 했다고 하시는데, 카페가 잘 될 수 있었던 건 무대륙만의 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가게는 가게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게의 분위기, 메뉴, 모토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무대륙을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되요. 그래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기에 그 노하우를 알고 싶어요. 이 동네에서 유명해져서 공연장까지 운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궈낸 카페의 자생력 말이죠.
현재 규찬에게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디자이너로 풍요롭게 살기에 무척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특히 그래픽 디자인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로고 하나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지금 문래동 작업실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가구를 만드는 터라 앞으로 브랜딩 쪽으로 일을 집중할 것 같아요. 쉽게 말해 클라이언트와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정말 필요한 디자인을 모색하면서 원래 관심 있었던 것들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있죠. 그래서 지금 이 시각에도 무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하는 거고요.

《사운드 필드: HIGA Live》 포스터, 2021
규찬의 평소 스케줄은 어떻게 되죠?
간단해요. 평일에는 집이나 작업실에서 디자인에 모든 시간을 써요. 그리고 격주 금요일에는 무대륙에서 공연을 기획하죠. 나머지 시간, 특히 주말에는 어딘가에서 DJ로서 음악을 틀곤 해요.
규찬의 일상에서 가장 적은 시간을 차지하는 활동이 오늘 인터뷰의 절반 이상이 되어버렸네요.
괜찮아요. 제일 적지만, 저에게는 어쩌면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니까요.
못다 한 말이 있다면 좀 더 부탁해도 될까요?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대부분 나눴는데, 몇 년 뒤에도 같은 생각일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 들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 유지하고 즐기기 위해, 제 삶의 형태를 계속 변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돌며 돌고, 여행하고, 하고 싶은 걸 찾아 공부하고 연습하던 시절의 연장인 셈이죠. 익숙한 삶과 작업 방식이 생기고, 그 삶에 그것에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  인터뷰 영상  

파주자유음악잔치 2021: 퓨-퓨
2021.7.11.일. 16:00
온라인 스트리밍 + 오프라인 파티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 동안 원하는 수업을 듣는 ‘더배곳 진수 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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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4.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멋지음·빛박이: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성하은, 장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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