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365일 중 300일을 훌쩍 넘기고서 이제 스산한 계절 속에 있습니다. 저마다 시에 가깝다고 여기는 날씨가 있을 텐데, 제게는 이맘때가 그래요. 제 몸을 떨구는 가을 안에서 조용히 빈속을 들여다봅니다. “강도를 높여가는 겨울의 질문”을 만났을 때 “태울 것이”, “재가 될 때까지 들여다볼 것이” 아주 많기를 바라며 ‘겨울의 재료들’을 미리 수집해요.(안희연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그곳엔 두고 온 것이 많다. ... 유년이라는 단어가 거느린 숱한 문들 가운데 겨우 몇 개를 열어보았을 뿐인데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마음이 쓰려온다. 왜냐하면, 그 문을 열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 풍경으로부터 비롯된 문장을 적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짐승의 피를 받아먹고 자랐다.’ ‘나는 누군가 오려진 자리를 보고 있다.’ ‘나는 여름 해변에서 고아가 된다.’ 저 문장들은 사실이기도 사실이 아니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삶과 연결된 손으로 쓴 것이며 시간에 빚진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유년이라는 단어 하나가 거느린 세계가 이토록 거대하다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 한 단어가 거느린 숱한 고리와 고리와 고리, 그 끝을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면 갈고리에 걸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 자신을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한 단어의 문을 연다는 것은 지금껏 발 들여놓은 적 없는 세계로 건너가는 일, 마음을 더는 안전한 곳에 둘 수 없는 일, 추락하기 좋은 자세를 배우는 일과도 같다. 
-‘빚진 마음의 문장—성남 은행동’에서

조그만 시집 속에 한 시인이 단어의 문을 열고 걸어가본 거대한 세계가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놀랍니다. 안희연 시인의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에는 유년을 비롯해 할머니, 여름, 딛다, 밤, 헤아리다, 비롯, 사람, 목숨, 시간, 책 같은 단어들이 문장과 이미지의 몸을 입고 있어요. 그 몸은 자주 ‘물속’에 잠기고 ‘빗속’에 서 있고 ‘산속’에서 길을 잃습니다.

어쩌면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잇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했고 참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했지만 “큰비가 내렸다”라는 문장을 만났을 땐 이미 발이 물속에 잠긴 뒤였다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에서

잠겨 있는 것이 비단 문장뿐일까요. 시라는 바닥에서는 물이 빠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우리는 바닥을 모른 채 하릴없이 단어들 속을 허우적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요. “계속 휘청이고”, “간신히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히기를 반복”하고, “산사태를” 겪는 삶 혹은 나 자신 속에서 “나무 자세를 연습”해요.(‘나의 겨자씨’) 나무가 되기 좋은 계절에, 시의 손바닥 위에서.

자꾸만 그 앞에 서고 싶은 그림이 있습니다. 벌판 같은 바다, 바다 같은 언덕, 버려진 듯한 집, 덩그러니 놓인 배, 아무렇게나 자란 풀. 사람 하나 없고 경치랄 것도 없고 소리도 없이 허허로운 풍광이 왜 이토록 마음을 잡아끌까요. 
여느 때보다 혼자인 시간이 많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안팎의 잡음에 속은 늘 시끄럽죠. 그럴 때 김혜영 작가가 마련해놓은 빈터로, 빈집으로 갑니다. 그곳도 나와 조우하기 위해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일상성은 지워지고 타인의 흔적도 없는 어딘가 조금씩 기이하고 기묘하게 배치된 조각들의 화폭 속에서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어떤 작품을 만나고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거예요. 시간이 멈추거나 느리게 가는 듯한 감각, 전생을 겪은 기분, 유년의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 모두의 시간에서 잠시 탈주해 새 시간을 가질 때, 그제야 오롯이 혼자가 됩니다. 
김혜영 작가의 그림 속에는 집이 자주 등장해요. 집이 놓인 장소, 집의 양식, 문, 집 안팎의 풍경 모두 익숙한 듯 생경합니다. 그 집은 마냥 편히 쉴 수 있는 곳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오히려 고독과 고요를 대면할 용기를 내게 요구하는 듯하죠. 그림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섰다가 그 속에 저를 두고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집들은 저마다의 용기와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거기 빈자리로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 고민거리들을 하나씩 나열하면 여러 가지의 이미지가 연상되곤 하는데, 그걸 헤쳐나가는 과정은 먼지 많은 다락방에 숨은 작은 벌레를 찾는 것처럼 나를 꽤 지치게 했다. 마침내 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터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나는 나의 빈터에 집을 짓고 바다를 채우고 식물을 그려 넣는다. 그곳엔 오롯이 혼자가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있다. 쓸쓸하고 외로움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만들어진 풍경이다. 그곳엔 언제나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이 공간에는 사실 이곳을 바라보는 나, 혹은 당신이 항상 존재한다. 그 빈터에 세운 집은 주인도 없다. 내가 주인이 될 수 있고 당연히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설정하는 모든 공간들이 가지는 목적이다. 바쁘느라 아프고 슬프느라 피곤한 누군가의 공간이길 바란다. 이곳에서 혼자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혹시 결론이 안 나더라도 그냥 여기서 쉬었다 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작가의 글 ‘빈터, 빈집’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광목에 채색하는 작업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김혜영 작가는 지난 10월 29일에 올해 두 번째 개인전을 마쳤습니다. 시월의 편지에서 소개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아쉬움 너머로 이렇게나마 함께 만나요. 앞으로 발표할 신작 그림들은 월간소묘 레터 구독자 분들께 가장 먼저 소개할 예정이에요. :)

위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 왼쪽 <빈터, 빈집>, 오른쪽 <밤의 바다는 많은 것을 삼키고 II>, 김혜영 2020년 작.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시월 산책에 이어 이달에도 온라인 산책 이야기를 전합니다. 외출에 부쩍 소극적인 인간이 되었네요. 11월에 둘러볼 곳은 지난여름 오픈한 이래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용인의 큐레이션 책방 리브레리아 Q예요. 


다정한 애독자 모야 님이 그간 레터에서 소개한 장소들을 따라 작은 여행 다녀오셨네요. 온기 가득한 어느 하루를 전해요. 답장 고마와요.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1주년 기념 굿즈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기린 네 컷 만화. 오후의 소묘 그림책들을 옮긴 정원정 번역가가 그의 정원생활과 일상을 귀엽고 유쾌한 그림과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기린 작가님은 제게 가을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분이에요.(봄을 좋아하는 편.) 색색의 단풍, 높은 하늘 같은 관용구적 가을이 아닌 메마른 풍경의 속살 같은 것을요. 어느 해 그의 정원에서 채종을 함께하며 마른 꽃 속 결실을 보고, 두엄을 만들며 쓸모없다 여겼던 것들의 결합과 마법을 기대하고 있었죠. 모두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어요. 그 ‘이상하고 자유롭던’ 시간이 이번 일상백서에 촘촘히 담겨 있네요. 물론 생활인에게는 노동이겠으나 그 하늘하늘한 양귀비꽃 속에 그토록 단단한 씨방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는 일, 미래에 틔우기 위해 잠시 담아두는 일은 언제나 아름다울 테고요.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할걸요. 


“제가 삼삼이, 모카, 치코, 미노, 오즈와 함께하며 느끼는 기쁨의 총량이란 게 분명히 존재할 테지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건 기쁨의 사건이 발생하는 개별적 순간들뿐이에요. (...) 기쁨은 오직 순간일 때 그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미분방정식을 거쳐야만 존재를 드러내는 곡선의 기울기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슬픔은, 슬픔은 말이에요.” 

지난 글에서는 음악과 박자 이야길 하더니 이번에는 기쁨과 슬픔의 미적분방정식 이야길 하네요. 제목이 ‘길어질 게 뻔한 변명’이어서 대체 무엇에 대한 ‘변명’인가 싶었지만 1편에 이어 2편도 아직은 ‘길어질 게 뻔한’ 쪽에 충실해 보입니다. 미로인 듯 퍼즐인 듯 따라가고 맞춰가는 재미가 있는 이치코의 글, 변명 3부작 마지막 편을 남겨놓고 있으니 12월의 편지도 기다려주세요. ;) 

오후의 소묘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쓰기살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달에는 두 편을 소개합니다. 각각 ‘이롭다’와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써내려간 글이에요. 아련 님은 ‘이롭다’는 말을 대학 시절 품게 된 문학 교수의 말 “문학은 동그라미의 가장자리를 넓혀요”에 포갭니다. 서우 님은 화실의 오전 풍경을 문장으로 소묘하듯 그려냈어요. 퇴고 전의 글이지만 매력적인 스케치여서 함께 전합니다.

연재는 종료됐지만 작가 후기와 독자 후기가 남아 마음을 데웁니다. 짧게 전해요.  

/
작가 후기 중에서 
“이 글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가볍길 바랍니다. 제가 덧붙인 건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맑고 뜨거운 차가 속을 훑으며 내려가는 동안 맴돌다 사라지는 향으로 남는다면 좋겠습니다.” 

/
독자 후기 중에서 
오늘 아침에는 ‘겨울이구나’ 하면서 출근했는데 이전 계절에 한껏 취한 글을 읽고 있자니 가을에게 되려 미안해지네요. ‘가을이구나’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냥 올여름 다 갔구나, 곧 겨울이겠구나. 송이 밤의 안부도 궁금해요. 깊어지는 다음 계절에 대해서도 글로 만나뵐 수 있음 좋겠지만 아쉬운 게 더 좋을지도요! -경이 

월간소묘 레터를 구독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글을 순서대로 읽진 못했지만 오늘 작가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니까 어쩐지 뭉클해져서 댓글을 씁니다. ‘불안한 가운데 용기가 되었다’고 전하시는 말씀에 제가 왜 따뜻해지지요. -한나 

작가님의 글을 조용히 읽고 있었던 구독자입니다. 실수로 산 밤 덕에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되어 밤송이가 고맙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해치지 않은 이야기 부분은 유독 두 번 세 번 곱씹어 보게 만드네요. 저도 오늘 퇴근길에 실수를 한 번 해 봐야겠어요. 그 실수가 다음 해 가을이 기다려질 멋진 이야기가 되면 더 좋겠네요. -HD 

소중한 감상 남겨주신 경이, 한나, HD 님 감사합니다. 본 메일로 작은 선물 받아보실 주소/연락처/성함 보내주세요. :)

👏  휘리 그림책 <허락 없는 외출> 알라딘 독자 북펀드 ~11.20(금)
유년, 불안, 안도, 그 속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휘리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나보세요. 

👏  <아홉 번째 여행> 숨은 고양이 찾기 이벤트. 특별 제작한 “나는 어디에나 있어” 고양이우주 북백 선물로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에서. ~11.8(일)


*레터 리뷰 남겨주신 분들 중 매달 한 분을 선정해 작은 선물 보내드립니다. 기다릴게요.

오후의 소묘 | sewmew.co.kr
letter@sewmew.co.kr | 뉴스레터 구독하기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