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박상현의 미디어 인사이트

극우 소셜미디어 서비스 팔러(Parler),
트럼프를 얻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8천 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슈퍼 셀렙으로, 팔로워 숫자로는 세계 9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런 트럼프가 이달 초 트위터와 일전을 치른 것은 그와 소셜미디어 사이에 존재하던 오래된 문제가 드디어 불거져 나온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룰을 트럼프가 어긴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선출된 지도자의 발언은 그 자체로 중요한 기록이기 때문에 기업이 함부로 삭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BLM(Black Lives Matter)운동이 크게 일어나고, 11월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트럼프의 문제 발언이 수위를 높여갔고,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더 이상 방관하기 힘들 만큼 사회적 압력이 거세졌다. 결국 트위터는 트럼프의 발언을 '선거와 관련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폭력을 미화한다'는 이유를 들어 제재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은 트럼프의 발언을 다르게 해석해서 직접 제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포스팅한 내용을 삭제하는 등, 그간의 자유방임적 태도에서 벗어나 규제를 가하고 있다. 

폭스뉴스와 일부 극우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성언론을 “가짜뉴스(fake news)”라고 공격하는 트럼프로서는 소셜미디어, 특히 대통령 후보가 되기 이전부터 애용하던 트위터에서 자신이 원하는 발언을 마음놓고 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는 트위터를 떠나서 다른 소셜미디어를 찾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서둘러 다른 채널을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Gab Social
온라인에는 이미 보수우익들을 환영하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이 갭(Gab)과 팔러(Parler). 이들은 인종주의적인 발언이나 가짜뉴스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대안우파(alt-right), 네오나치, 반페미니즘 세력과 음모론자들을 플랫폼으로 끌어 모아왔다. 갭의 경우 이미 2017년에 증오발언(hate speech)과 관련한 구글의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글 플레이에서 퇴출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갭은 2016년, 팔러는 2018년 부터 트럼프 지지자층과 겹치는 우익 사용자들을 꾸준히 모아왔다. 자신을 비판하는 전통적인 언론사 대신 브라이트바트(Breitbart) 같은 “대안언론”을 통해 지지세력에게 메시지를 전했던 트럼프로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자신의 발언을 규제하기 시작한 이상 비슷한 방식으로 대안 소셜미디어를 선택해야겠다는 결정을 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익의 트위터, 팔러(Parler)
영어로 ‘gab’은 '수다를 떨다, 잡담을 하다(chat)'라는 의미이고, 불어로 parler 역시 ‘말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실상 '대안 트위터'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브랜딩 역시 ‘(새가) 짹짹거리다’라는 의미의 트위터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형태와 기능도 전반적으로 트위터를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다. 이달 초 트럼프의 트위터가 트윗에 팩트 체크 버튼을 달고, 트윗을 가리는 등 제재를 가하자 이들 서비스에 사용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그들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둘은 '트럼프 지지자’라는 같은 사용자 그룹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고, 그들의 목표는 트럼프를 자신의 플랫폼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쟁에서 승자는 팔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트럼프의 선거운동 매니저인 브래드 파스칼이 2018년 12월에 팔러에 가입했고, 트럼프의 둘째 아들인 에릭 트럼프가 지난 5월 27일에, 그리고 바로 이틀 후에 트럼프 본인이 팔러에 가입한 것이다. 갭은 브래드 파스칼이 팔러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셀레브리티들의 소셜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게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트럼프가 팔러에 자리를 잡았으니 게임은 끝난 듯 하다.

Parler l App Store
팔러는 스스로를 “편향되지 않은 소셜미디어(Unbiased Social Media)”라 부르고 있다.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들이 자신들의 증오발언을 제한하는 매스미디어, 소셜미디어들을 "편향적(biased)”이라고 공격하는 주장을 고스란히 받은 우익들의 보금자리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가입과정에서 보여주는 팔로우 추천에서도 이곳이 어떤 사이트인지 한 눈에 보여준다. 사용자가 자신의 성향과 관심사를 밝히는 단계가 없는데도 추천하는 매체 리스트에서는 라이트바트가 최상단에, 파륜궁과 연관되어 있고 백신반대운동과 각종 음모론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진 에포크 타임즈, 역시 보수 매체인 데일리 콜러와 워싱턴타임즈 등이 뒤를 잇는다. 팔로우를 추천하는 사용자 리스트에도 에릭 트럼프를 비롯해, 우익 정치평론가 댄 본지노, 로라 루머 등이 줄지어 상단에 제시된다.

팔로우 추천 페이지 ㅣ Parler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팔러를 향하는 것을 본 트럼프 지지 정치인들 역시 줄지어 팔러로 이동하고 있고, 트럼프는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고, 트럼프 선거운동본부는 이미 브래드 파스칼과 함께 2018년 12월에 계정을 만들어 선거운동을 해오고 있는 중이다. (파스칼은 일년 전 부터 트럼프의 계정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한편, 트럼프를 빼앗긴 경쟁자 갭은 트럼프를 위한 계정(@donaldtrump)을 만들어두고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트럼프 계정 ㅣ Gab
케이티 홉킨스와 같은 극우성향의 소셜미디어 셀렙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영구제명을 당해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팔러로 채널을 옮겼고, 팬들이 그를 따라 팔러로 이동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소셜미디어를 바꾸겠다고 트위터에 요란하게 알리며 새로운 채널을 홍보해준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제명을 당할 수준의 과격한 발언을 해도 팔러에서는 문제삼지 않는 정책으로 극우세력의 자유발언지대가 되고 있는데, 그것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Mollie Hemingway l Twitter
팔러는 현재로서는 트위터의 작은 우익버전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차이점이 없다. 트럼프가 이곳에 올리는 포스트는 자신이 트위터에 올리는 내용의 카피일 뿐, 아직 팔러에만 따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트럼프로서는 8천 만의 팔로워를 구축한 트위터 계정을 버리고 팔로워가 16만에 불과한 팔러로 옮겨 탈 이유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트위터를 사용한 방식은 단순히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한 것만이 아니라, 트위터의 모든 사용자들이 자신의 발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들이 만들어내는 버즈(buzz)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의 도달범위를 크게 넓히는 것이었다. 그가 작성한 트윗은 그 내용에 찬성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반대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까지 리트윗을 했고, 그렇게 큰 버즈가 일어나면 언론매체는 이를 보도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트럼프 진영의 소셜미디어 사용방법을 연구한 시러큐스 대학교의 휘트니 필립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The Oxygen of Amplification)’에서 언론매체가 기존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가 허위정보의 확산을 낳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 외에 다양한 그룹이 속한 소셜미디어가 필요한데, 자신의 지지자들만이 존재하는 플랫폼은 이미 확보한 지지기반을 흥분시키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기 힘들다. 지난 4월 한국의 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드러났듯,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이 일반 유권자들의 표와 직결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연 특정 정파에 특화된 소셜미디어는 의미있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와 전쟁을 선포하고 대안 소셜미디어 계정까지 만든 트럼프가 앞으로 남은 5개월 동안의 선거운동에서 어떤 소셜미디어 플레이를 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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