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경고음 커지는데 국제 공조 대신 파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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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09. 오후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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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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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집권 이후 역주행... EU와 호주도 회의론 득세
환경보호 활동가들이 9월 8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기후변화 대응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 마르세유=로이터 연합뉴스


가속화하는 지구 온난화를 적정 수준으로 제어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8일 인천 송도에서 지구온난화 목표를 기존의 섭씨 2도 상승에서 섭씨 1.5도 상승으로 조정할 필요성과 그 달성 방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같은 날 스웨덴왕립과학원은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에게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안겼다. 그러나 국제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공동전선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고 다른 나라 정부들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 협정 이후 역주행하는 정부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잇달아 폐지하고 있다. 7월에는 자동차 연비 기준을 완화했고 8월에는 화력발전소 배출 규제를 폐지했다. 이어 9월에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메탄가스 배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EPA의 조치가 단순히 규제 완화가 아니라 기후변화를 부정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기후변화 대응 모범생인 유럽연합(EU)도 흔들리고 있다.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는 향후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새로 설정하는 데 진통을 겪고 있다. 독일과 동부 유럽 국가들은 2030년까지 2021년 배출량 대비 30% 감축안을,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서유럽은 40% 감축안을 제시하며 충돌했다. 특히 독일의 태도는 현실론의 탈을 쓰고 있지만 결국 자국 자동차업계의 입장을 반영한 태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 호주에서도 기후변화 회의론이 득세하고 있다. 마이클 매코맥 호주 부총리는 8일 IPCC 보고서 중 ‘석탄 사용을 2050년까지 서서히 중단하자’는 제안을 문제 삼으며 석탄 생산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맬컴 턴불 전 총리의 실각 후 호주에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스콧 모리슨 현 총리는 파리 협정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탄소 배출은 늘어나고 있다.

◇‘선진국 대 개발도상국’ 대립 여전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책이 표류하는 가운데,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리는 제24차 기후변화협정 당사국 총회(COP24)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 회의에서 파리 협정의 실무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합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자국의 이해 관계를 관철하려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진영의 충돌 때문이다.

파리 협정 당사국들은 2020년부터 연간 1,000억달러(약 112조7,100억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해 개발도상국에 지원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나 이행이 지지부진하다.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사전협의에서 미국ㆍ일본ㆍ호주 등 선진국 진영은 금융 지원 규모를 깎기 위해 “기존 지원에 신규 지원을 합산하자”는 느슨한 회계안을 제안하면서 개발도상국의 반발을 불렀다.

물론 선진국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리 협정은 과거 1992년 체결된 기후변화 기본협정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으나 현재는 경제력과 배출량이 늘어난 국가가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중국ㆍ인도ㆍ브라질ㆍ남아프리카공화국ㆍ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은 외려 1992년 선진국 대 개발도상국의 구도로 회귀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선진국 진영의 불만을 샀다.

◇경고 메시지 보내는 과학자들


8일 보고서를 발표한 IPCC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목표 온도 상승치를 섭씨 1.5도로 조정하기 위해 “역사적 전례가 없는” 생활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표현은 상황의 심각성을 환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IPCC가 보고서에서 섭씨 1.5도 시나리오를 반드시 택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아니다. IPCC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당사국에 조언하는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노드하우스 교수는 더 직접적인 어조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8일 예일대 강의를 마친 후 기자들에게 “정책이 과학에 훨씬 뒤떨어져 있다.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형편없는 정책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달 10일 “너무 많은 세계 지도자가 기후 변화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제도와 기술은 있는데 상황 인식과 지도력이 부재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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