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공현의 투덜리즘
- 청소년들한테 맡겨놓지 마세요

인권운동을 하다 보면 정말 여러 연령대, 여러 직업의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회의를 하곤 합니다. 비슷한 문제의식과 주장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 한데 모여 수평적으로 회의를 하는 일은 인권운동의 매력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자리에 전혀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청소년들(때론 청년들도)이 자주 듣게 되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좀 내봐라” 하는 소리도 편견이 담긴 말 중 하나입니다. 작게는 홍보물을 기획하거나 퍼포먼스를 짜는 일부터, 크게는 운동의 표어나 큰 계획을 정하는 일까지 갑자기 “이런 건 청소년들이 잘하니까” 의견을 내라고 하곤 하죠. 신선한 아이디어, 재기발랄한 기획, 창의적인 발상, 신세대 감성 뭐 그런 걸 기대한다면서 말이지요.

창의성에 대해 고민해보고 기획을 시도해본 분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청소년들이 창의적이고 새로울 거라는 기대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나이가 적고 젊다는 이유만으로 창조적일 수 있다면 브레인스토밍이니, 여섯 모자 기법이니 하는 방법론이 왜 있겠어요? 아, 회의 안건이 청소년 집단에 어필할 길을 찾는 거라면 문화나 생활패턴에 공통점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유용한 아이디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창조성은 없을 가능성이 크고, 식상한 발상이 나올 가능성도 비슷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서두에 말했듯, 이런 요구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다들 제각각인데, 단지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창의적이거나 재기발랄할 거라는 고정관념과 이미지를 밀어붙이니까요. 또한 그런 말은 곧 청소년들이 기존 활동에 관한 경험이 적으니까 무언가 다르고 새로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운동 사회 안에서 타자화하고 서로 간의 동질감과 소통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태도는 운동 주체들이 다같이 고민해야 할 일을 일부 집단에게만 내맡겨버린다는 점에서 무책임하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이 잘하니까”라는 말은 일견 청소년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겸허함 같죠? 하지만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들끼리 함께 머리를 맞대고 끙끙대고 합의하는 것을 회피하고, 너희들이 알아서 좋은 결과물을 도출해서 가져오라고 외주를 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비슷한 또 다른 예로 “청소년들이 앞장서 달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교육 문제나 청소년인권 문제로 모인 연대 회의에서 은근히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달라, 청소년들끼리 해라, 청소년들에게 맡기겠다…’ 물론 사회적 권력관계나 관습이 작용하여 비청소년들만 목소리를 높이고 청소년들은 수동적이게 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아예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키를 떠넘기듯이 굴거나, 발언이나 주요 역할을 청소년들에게만 해달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양보하거나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좋은 일을 한다고 믿는 것도 같아요.

함께 활동하려고 모인 모든 단체와 활동가들은, 그 문제가 공공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연대하고 협력하여 활동하고자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이 앞장서라거나 청소년들끼리 결정하라는 등의 태도를 취하는 건 둘 중 하나이겠지요. 속으론 해당 문제가 공동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든지, 아니면 청소년들이 나서는 게 그림도 좋고 그 참에 비청소년들은 부담을 덜려는 것이든지. 청소년들이 나서라고 떠받드는 것은 다른 방향으로 청소년인권 의제의 중요도를 낮추고, 청소년들을 평등한 동료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그런 회의 자리에서는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첫째,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무슨 새롭거나 놀라운 사람들이 아니고, 비청소년들과 비슷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둘째, 정말 그 문제가 모두에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남들에게(특히 청소년들에게) 맡겨놓지 말고 자기 운동부터 나서야 합니다. 다들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서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 힘을 합치는 게 가장 이상적일 테니까요.

🔸 ‘공현의 투덜리즘’은 예전에 공현이 함께 만들었던 〈오답 승리의 희망〉의 간판 코너명이었는데요. 오승희를 기리는 마음으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후기] "지켜라 학생인권!"

오프라인 캠페인을 했어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지난 2월 6일부터, 각 지역 학생인권조례 폐지/후퇴 움직임과 학생인권의 전반적 후퇴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더 나아가 모든 지역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2월 10일에는 목동 학원가에서, 2월 25일에는 홍대입구역 번화가에서 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온라인 기반 서명에 알맞게 홍보물은 컴팩트한 명함사이즈에 살포시 사탕을 곁들여 나눠드리고,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캠페인을 했어요.

10일 목동 학원가에서는 방학 시즌에도 여전히 학원에 다니시는 분들을 25일에는 방학 막바지에 놀러나온 분들을 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행이 11년차인데도, 학생인권조례가 무엇인지 들어보지 못하셨다는 분들이 제법 계셔서… 학교나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제대로 홍보하고 안내하고 있지 않다는 지음의 문제제기가 정확했다고 기뻐해야 할지, 실제로 학생인권조례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현실에 씁쓸해야 할지…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드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음과 아수나로에서는 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주로 학교 앞으로 찾아갈 예정입니다. <지켜라, 학생인권 2006+인 서명운동>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학교, 폭언·차별 없는 학교 생활

학생이 인간답게 사는 학교, 안 될까요?

- 학생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초·중·고등학교를 요구합니다📢


학생인권법이 처음으로 국회에 발의되었던 2006년을 떠올리며, 2006명+의 서명을 모아요. 물론 2006명 이상,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수록 큰 힘이 됩니다. 


주변에도 많이 알려주세요🙌


🔥 2006년부터 기다렸다! 조례 폐지 말고, 법률 제정! 

🔥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2006인+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극한 직업' 청소년, 방학은 남들을 따라잡는 시기? - 학생들에게 방학은 없다


언제부터 방학이 '배움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날'이 아니라 '특강'과 '승부'의 시간이 되었을까요? 한국 학생들의 공부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번 [청소년인권을 말하다]에서는 방학에도 쉼 없는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청소년들의 시간을 살피며, 청소년들이 겪는 '번아웃'은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 경쟁을 조장하는 위험한 교육 환경의 문제점을 짚어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방학 때의 공부/생활 계획을 세워서 제출하도록 한다. 초등학교에서 그리는 동그란 시계 모양의 방학 계획표를 시작으로, 학생들은 삶의 모든 순간이, 학교 밖에서도 계획되어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계획표는 놀이나 쉼, '멍때림'으로 가득 채울 수 없다. 보호자나 교사는 그런 솔직한 방학계획표는 아무리 학생이 주도적으로 작성했다고 해도 계획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놀이도 '체험'이나 '학습', '캠프' 등의 이름이 붙은, 어른들의 지도·감독하에 이뤄지는 생산적인 것이 아니면 눈치를 주기 일쑤이다. 때문에 차라리 학교에서 교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집에서 일거수일투족이 눈치보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하기도 한다."


[기자회견문]

학생인권이, 청소년인권이 민주주의다

- 학생인권의 후퇴를 막고 청소년인권 실현을 위해 청소년-시민 행동에 나서며

 

민주주의의 원리는,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고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 모두 함께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리는 부당한 권력과 차별에 의해 왜곡돼왔고 언제나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이들이 있었다. 청소년들 역시 나이가 어리단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시민이 아닌 ‘예비의 존재’, ‘덜 된 인간’의 자리에 내몰렸다. 폭력과 모욕을 당해도 어쩔 수 없었고, 항변해봐도 “어린 게 감히”, “몇 년만 참아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도 인간이며 초·중·고 안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게끔 하는 제도적 첫발이었다. 비록 모든 지역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진 못했고, 조례에 명시된 권리조차 온전히 보장되지 못했다. 그래도 분명 학생인권조례 이후 한국 사회의 상식과 풍경은 바뀌었다. 학교에서 너무나 흔했던 체벌, 두발복장단속, 야간자율학습강요 등은 크게 줄어들었다. 민주주의의 발전이었고 삶 속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려 드는, 청소년을 민주주의 밖으로 추방시키려는 이들이 있다. 서울, 충남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민발안이 진행 중이고 동조하는 의원들이 있다. 전북, 경기 교육감도 조례를 개악하겠다고 시사하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이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존중받는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소수자들을 침묵시키고 지우려 든다. 사실 그다지 신선한 모습은 아니다. 약 10년 전 교육부(장관 이주호·서남수)는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을 내고 법령을 바꾸는 등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 했다. 충북, 부산, 경남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노력이 있었으나 의회에서 조례안 통과가 무산되었다. 변화를 가로막던 정치세력이 이제는 존재하는 학생인권조례까지 폐지, 축소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학생인권의 후퇴는 민주주의의 퇴보이고 용인되어선 안 된다.

촛불 이후, 우리는 사회 전반과 생활이 더 민주적으로, 더 인간적으로 변화하길 기대했다. 광장에서의 민주주의를 청소년의 삶에서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를 결성했고, 여러 시민의 참여와 행동에 힘입어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일구어냈다. 충남·제주에서 학생인권조례도 새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청소년 정치 참여 역시 활발해지지 못했고, 외려 윤석열 정부는 청소년의 정치적 목소리를 위축시키지 못해 안달인 듯 보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학생인권 후퇴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려면 일상에서부터 반인권적·비민주적인 강압 없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학생인권 보장과 어린이·청소년 존중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촛불과 촛불을 계승한다고 했던 정부는 기대 만큼의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학생인권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백래시에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청소년의 삶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당위가, 청소년이 인간이자 시민이라는 진실이 꺾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학생인권의 후퇴를 막으며, 청소년인권의 진전과 실현을 위해 다시 한 번 뜻과 힘을 모은다. 청소년도 시민임을 선언하며, 청소년과 비청소년 시민이 함께하는 행동에 나설 것이다. 지금도 이 외침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학생도 인간이다!” “청소년도 시민이다!”

 

2023년 2월 20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준)


청소년인권 바로 지금, 지음!
지음은 여러분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정기 후원으로 지음을 같이 지어주세요🌿 
후원 계좌 🤝기업은행 141-081609-04-011 (예금주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카카오톡 채널을 추가해주세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을 검색하거나 아래 버튼을 클릭하면 바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인권 바로 지금, 지음!" 우리는 좋은 어른이 많은 세상이 아니라 나쁜 어른을 만나더라도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청소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단체입니다. http://yhrjieum.kr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yhr.jieum@gmail.com
서울 영등포구 07041101908
수신거부 Unsubscribe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