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쉐 #같이산지십년 #주말에뭐읽지 #시사인

💌   2021년 11월4일 78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unsplash 
창작과 연애가 닮은 점  
천쉐 지음, 채안나 옮김, 달항아리 펴냄

각자 온전한 삶을 살면서도 서로가 필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은 얼핏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건 어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온전한 삶’을 끝없이 확장시킬 수 있는 과정으로 바라보면 가능하다. 100점이 만점인 관계에서 내가 99점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나머지 1점을 바라는 게 아니라, 만점이 없는 관계에서 나의 100점과 상대의 100점을 함께 더해 쌓아가는 것이다.
타이완 작가 천쉐는 그 과정을 이렇게 적는다. “잔잔한 지금의 사랑은 지옥을 몇 번이나 드나들며 얻은 것이다. 우리가 ‘옳은 사람’을 만나서가 아니라 드디어 ‘옳은 사랑의 방식’을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애와 별개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다. 옳은 방식이란 무엇일까. 먼저 자신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19년 5월24일 천쉐는 자신의 연인 짜오찬런과 혼인신고를 했다. 타이완에서 동성 부부의 결혼이 허용된 역사적인 첫날이었다. 부부가 된 천쉐와 짜오찬런은 함께 산 지 십 년이 되던 해 그동안 써왔던 일상 기록들을 모아 이 책을 냈다. 책의 마지막 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소설가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서서히 얻은 결실.’ 창작이든 연애든 같은 맥락이다. 긴 외길이다. 어느 단계에 있든 필연적으로 그 길을 지나쳐야 한다. 그러나 성실함을 잃지 않고 꿋꿋이 지나간다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온전하면서도 서로 필요한 관계’가 연애나 결혼 생활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쉐와 짜오찬런 부부는 동료든 친구든 가족이든, 모든 타인과 맺는 관계의 바람직한 원형을 보여준다.
- 나경희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후보단일화 게임
황두영 지음, 클 펴냄
“대등한 후보 단일화에서 두 후보는 서로에게 인질범인 동시에 인질이 된다.”
1987년 김대중-김영삼에서 2017년 안철수-홍준표까지, 직선제 개헌 이후 등장한 여섯 번의 ‘후보 단일화 협상’을 분석했다. 후보 단일화는 어떨 때 성공하고, 어떨 때 실패할까.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저자는 후보 개인의 기질이나 명분 등이 아닌 오직 게임의 규칙으로 그 성패를 분석한다. ‘대등한 단일화냐’ ‘양보하는 단일화냐’라는 판의 성격에 맞춰 상대 끌어들이기, 협상하기, 보상책 제시하기 따위 카드를 적절히 구사한 후보가 게임의 승자가 됐다.
이번 대선에서도 협상이 등장할까? 유권자들이 현행 양당체제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 ‘지겹고 소모적’일지라도 게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전망이다.
SF 연대기
셰릴 빈트·마크 볼드 지음, 송경아 옮김
허블 펴
“장르는 고정된 개체가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인 협상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SF란 무엇일까? SF가 탄생한 이래로 반복된 질문이다. 저자들은 SF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SF 역사를 되짚는다. 시대마다 SF를 어떻게 정의했고, 그 정의에 맞춰 범위를 설정했을 때 각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SF란 일종의 흐름, 그러니까 인류 역사의 흐름과 함께 뒤섞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적 흐름이다. 소련과 미국이 군사·우주 분야에서 기술 경쟁하던 1950년대, 냉전은 SF 잡지도 지배했다.
누군가는 현실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술과 기계를 상상하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야말로 SF라는 장르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말한다.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
마강래 지음, 메디치 펴냄
“균형발전은 부동산 대책이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저자가 작정하고 부동산 대책을 파고든다. 수도권의 밀도가 높아지는 문제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서울의 대항마를 비수도권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집값 문제를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은 인구의 자연 증감(출생률)보다 사회적 증감(인구이동)이라고 지적한 대목이 흥미롭다.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아이들을 더욱 낳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출생률 문제는 곧 ‘서울 집중화’ 문제와 맞닿는다. 저자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불문율은 부동산 대책으로 한계가 있으니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책 자세히 보기 >> 

혼자 입원했습니다
다드래기 지음, 창비 펴냄
“아픈데 뭘 어쩌라는 거니.”
조기순. 32세. 콜센터 상담원. 만성변비를 참고 참다가, 연차 쓰기를 참고 참다가 결국 검사를 받는다. 변비와 통증의 원인은 난소에 생긴 8.5㎝ 크기의 혹. 당장 수술을 받으려면 직장을 때려치워야 하고, 비싼 1인실에 입원해야 한다. “열심히 살면서 휴가 한번 못 쓰고 어딜 가든 사치인 것 같고. 내 주제에 뭐. 내가 못나서 못 누리는 줄 알았지.” 병원비 청구서를 들여다보던 조기순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근데 내 첫 휴가가 1인실 38만8000원이야.” 룸메이트 문조미는 이렇게 위로한다. “드디어 스위트룸에 가는 거야.” 가족 없이 홀로 수술을 받는 비혼 여성 조기순은 과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책 만드는 사람들

ⓒunsplash

첫 방송을 녹음하던 날 프로듀서가 물었다. "김성신씨를 뭐하는 분이라고 소개할까요?"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PD가 제안했다. "출판평론가 어때요? 그걸로 하시죠."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출판평론가'가 되었다.
출판평론가! 생각해보면 좀 기이한 직업이다.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이라니 말이다. 말하자면 ‘프로페셔널 백면서생’ 아닌가. 그렇지만 출판평론가라는 '21세기 백면서생'은 더는 무력하기만한 존재는 아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한양대 겸임교수)

나의 글이 '지적질'에 그치지 않도록 기사 전문 보러가기 >>
몇 년 전 독자들과의 만남에 은유 작가를 초청한 일이 있습니다. 그 날 모인 독자중 한 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글을 써 보고 싶은데 막막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자 은유 작가가 비유로 든 것이 ‘수영과 글쓰기의 닮은 점’이었습니다. 자세한 전체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기억납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먼저 물에 몸을 담궈야 하듯 글을 쓰려면 뭐든 일단 끄적여봐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얼핏 들으면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저 같은) 사람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에 몸을 담근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요. 마찬가지로 글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일단 써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겠죠.
오늘의 추천도서를 읽다 보니 문득 사랑도 닮은 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설고 생경한 물의 촉감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면 수영이라는 신세계를 배우기란 불가능하듯 두 사람간에 사랑이 시작되려면 상대가 속해 있던 낯선 세계를 탐색하려는 용기가 필요하겠죠. 때로는 ‘따스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부조화와 격랑의 시기를 견딜 인내심도 필요할테고요.
사실 거기서 또 끝이 아니라는 게 수영과 글쓰기와 사랑의 묘미인 것도 같습니다. 나만의 수영법을 구축하려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듯 연인 또한 그 어떤 온전한 경지에 이르려면 성실함을 잃지 않고 꿋꿋이 ‘옳은 사랑의 방식’을 연마해야 한다고 오늘의 작가 천쉐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글 쓰는 이들도 마찬가지겠죠. 자타가 공인하는 글쟁이 정여울 작가는 얼마 전 펴낸 책에서 이렇게 썼더군요. “저는 아직도 습작생이랍니다. 제가 엄청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뻐합니다.”(<끝까지 쓰는 용기> 중에서)
그 구절을 읽으며 저는 괜히 안심이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빼어난 재능이나 열렬함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딱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올 한 해, 님도 다시 곁을 돌아보며 끝까지, 꿋꿋하게 온전한 마무리를 준비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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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괜찮을 권리 
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 
존엄하게 죽을 권리 

북한산의 늦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한평책빵에서 기자, 호스피스 의사, 의료인류학자가 추천하는 다양한 책들을 만나보세요. 질병․돌봄․죽음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펼쳐집니다. 

-추천서가 운영기간:2021년 11월1일~6일 
-추천서가 운영장소:한평책빵(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 서울혁신파크

※추천서가 마지막날인 11월6일(토)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립니다. 
 ① 12:00~18:00 사람책(김영화×나경희×장일호) 
    *시사IN 기자들과 질병․돌봄․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습니다 
 ② 14:00~16:00 고재열 여행감독의 일일찻집 
    *도서를 구매하신 분에게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무료로 드립니다 
 ③ 15:00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북토크(송병기×장일호) 
    *시사IN북 신간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필자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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