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흐름》은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아카이브와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엮은 전시입니다. 최승희라는 역사적 인물은 이 전시의 입구가 되지만, 전시 안에서는 직물의 짜임을 구성하는 몇 가닥의 실로 존재합니다. 즉 그는 마치 곡 전체에 흐르는 통주저음처럼 전시 전체에 흐르지만 우리가 봐야할 것은 실존 인물로서 최승희가 아닙니다. 전시의 아카이브는 그의 삶과 활동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의 집합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작업이 되기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아카이브가 중심이 되는 3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자와 곡선이 어지럽게 그려진 도면을 잠시 내려놓고 흩어져있는 작품을 하나하나 잇는다는 마음으로 걷다보면 마치 무용실 바닥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따라 움직이면서 춤을 익히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전시 작품 중 하나인 퍼포먼스 〈에헤라 노아라〉는 최승희가 1933년에 창작한 동명의 무용을 재해석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작가는 퍼포머와 긴밀하게 협업하여 최승희의 〈에헤라 노아라〉를 변주합니다. 2020년을 사는 퍼포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승희의 춤을 추고, 최승희의 삶을 이야기하는 내레이터가 됩니다. 저는 이러한 협업과 변주가 남화연의 몇몇 작업에서 일종의 규칙처럼 작동하는 지점을 좋아합니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처럼 협업과 변주를 통해 새로운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 예술적으로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탁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가가 2020년에 재탄생시킨 〈에헤라 노아라〉에는 최승희와 남화연과 퍼포머 정지혜가 겹겹이 쌓여 새로운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보는 순간, 앗 이게 뭐지! 하면서 그저 감각적으로 좋은 전시가 있습니다. 저는 공부를 많이 하면 그런 전시가 좋은 이유도 글로 술술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 공부가 부족했는지 여전히 '너무 좋음 ㅠㅠ' 다음으로 넘어가기 어려운 전시들이 있습니다.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도 그런 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전시작품은 재료적 측면에서 모두 이상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캔버스를 포장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소민경의 회화는 거칠지만 따뜻한 질감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종이 뒤에 동전을 깔고 연필로 긁어서 형상을 만드는 프로타주 기법처럼 숨겨진 대상이 얼핏 도드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이제 막 발굴된 몇 백 년 전 종교 벽화처럼 빛 바래고 갈라졌지만 강렬한 아우라를 같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유성의 나무 부조 또한 보일듯 말듯한 형상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소민경의 회화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소민경의 회화가 표면 아래에 대상을 숨기고 그 흔적을 위에 드러낸다면, 이유성의 부조는 대상을 표면에 아주 가까이 밀착시키면서 그 형태가 잘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손으로 만진다면 너무 분명한 형상이 거기에 존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무라는 재료는 그러한 반(半)가시적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켜줍니다. 그리고 두 작가 협업 작품 〈파크〉는 정말로 벽화가 됩니다. 울퉁불퉁하게 모난 벽을 그대로 품고 있는 이 작품은 자신을 숨기고 벽지처럼 숨어버리다가도, 무대의 장막처럼 전시장의 맨 앞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한편 권세정+권동현의 작업은 이질적인 성질을 가진 재료를 맞부딪혀서 재료의 물성을 극적으로 내세웁니다.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청동과 현대적 재료인 실리콘이 동등한 분량으로 기이하게 엮여 있는 모습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이로써 이 작품들은 그 바탕이 되는 권동현의 조각 작업이 애초에 갖고 있었던 장소적 레퍼런스를 한 차례 더 탈각하고, 그 자체로 자율적인 조각에 가까워집니다. 결국 조각의 대상이 되는 장소(소사본동은 어디일까?)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이질적인 재료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물질적 감각이 전면에 선다는 점에서 이 작품들 또한 다른 두 작가의 작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노력하여 써보았지만, 그래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은, '너무 좋음 ㅠㅠ'의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