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황정은의 소설집을 다시 펼쳐보기 좋은 날입니다. 이 소설을 '세월호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사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디디의 우산』만큼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편의 연작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인물들은 각각 2015년 4월 16일 광화문 광장에 갑니다. 연인 dd를 잃은 뒤 직장을 그만두고 세운상가에서 일하는 d, 20년째 같이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는 김소영과 서수경,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김소리. 모두 다른 상황에서 그 사건과 사건 이후를 마주 합니다. 우리는 다함께 세월호 이후의 광장에 섰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은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이 마주하는 일상과 현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혁명' 이후에도 누군가에게는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소설 문장처럼 우리는 "목격자이며 방관자"였고, 어쩌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기한 '공범'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아직 바꿔야 할 것이 많다고 되뇌어 봅니다. 

2009년에 발매된 박지윤 7집 《꽃, 다시 첫 번째》에 수록된 곡입니다. 박지윤 7집은 오랜 공백기 후에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넣어 낸 앨범입니다. 그중 〈4월 16일〉은 담담하게 헤어지는 연인에 대한 노래로, 박지윤의 차분한 목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그냥 특별한 이유를 붙이지 않고, 1년에 하루 4월 16일에는 이 노래를 듣고는 합니다. 그냥 잠깐, 그렇게 가만히 의식처럼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날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온수공간, 2020. 3. 26. - 4. 16.)

우리는 대한민국에 '이상한 집'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서 이제 웬만한 집에는 놀라지도 않습니다. 부동산 중개 어플에는 늘 예상치 못한 이상한 원룸이 올라오고 〈구해줘 홈즈〉를 보면 저런 집에서 저 돈을 내고 살아야 한다니 하하 하면서 웃음이 납니다. 이시내 개인전 《버블의 때》는 그러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들은 소유하지 못한 공간을 빌려서 살면서 나무 무늬 장판, 꽃무늬 벽지, 두꺼운 몰딩, 민트색 페인트를 참아냅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취향은 "블랙 아니면 화이트", "미니멀한 스타일", "아기자기하게 귀여우면서도 심플한 디자인", "비비드한 색감에 그래픽적인 것", "로맨틱시크 페미닌시크"라고 말합니다. 전시는 이처럼 특정 시기에 유행한 인테리어 양식과 거주자의 취향이 담긴 소지품을 대비시켜 보여주면서 공간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어떤 것이 취향 바깥의 것이고, 어떤 것이 취향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방문의 민트색 페인트가 너무 싫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민트색을 포인트로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집안의 온갖 장식이 싫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좋다고 합니다. 어쩌면 문제는 집에 우리의 취향을 담을 수 없다는 것보다 값싼 재료로, 대충 눈속임 하듯이 꾸며낸 집을 빌려 살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요? 

전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형식을 통해 이 지점을 지적하는 것도 같습니다. 전시장에 표시된 QR코드로 접속하면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서 볼 법한 매물 소개글로 연결됩니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상투적인 표현을 드러냄으로써 부동산 버블과 함께 사는 우리의 현실을 더욱 명료히 드러내는 이 작품은 네이버 블로그라는 집에 세들어 사는 모양을 하고 있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전시장 벽에 붙어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봐야 하는 패널들도 마치 인테리어 매장에서 벽에 걸린 바닥재 샘플을 넘겨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마치 잠시 빌린 자리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