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직장을 잃은 걸까, 버린 걸까?

신지혜
㈜빌라선샤인 커뮤니티 디렉터
이 시대에는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제가 일하는 빌라선샤인은 일하는 2030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서비스 회사로,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각자 어떻게 일하고 어떤 관점으로 자기 일을 구성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도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관한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했고요. 그 경험을 통해 제가 갖게 된 일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이 자리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일자리에 대한 문제는 20대만의 것이 아니고, 현대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상 무언가를 모색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을 테니까요.

왜 일에 관해 이야기할까?
저는 3년 전부터 여성과 청년의 일에 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고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내 역량을 어찌 드러낼지, 또 내 일을 어떻게 구성할지 등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표현을 들어는 봤지만 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아주 먼 이야기라서 오는 불안감도 있고요. 개개인이 스스로 일을 구성하다 보면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이 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시대의 청년들이 자기 일을 꾸리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함께 고민하다 보니, 일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전통적인 일자리를 바라봤던 관점으로 지금의 '일'을 바라본다면 마음속에 불안함과 실패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변화하는 일의 모습
예전에는 커리어를 구성하는 것이 직장 한곳에서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가는 개념이었지만 이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극소수에게만 가능하죠. 그러니 이제는 택지를 늘리고 위험을 줄이면서 내 일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구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일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가장 큰 변화는, 조직보다 개인이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조직이 내 커리어패스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개인의 재능과 역량에 큰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데, 개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불안정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성에 대한 개념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전에는 한 조직에서 오래 일하면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숙련되고, 숙련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개인이 여러 조직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으면 한 가지 일을 오래 숙련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이제는 전문성이라는 개념을 숙련 과정에서 쌓은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각 상황에 맞게 창의적으로 일하는 능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이 경력을 만들어 가는 시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라고 말하죠. 사실 저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라고 말해 왔는데, 그때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면 이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시더라고요.
이런 시대에는 개인의 역량과 판단이 중요하고, 항상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판단에는 선배가 아닌 또래의 경험이 유의미한 근거가 되고요. 선배들이 지나간 길을 막연히 답습하기에는 그때와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또래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구성해 나가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참고하여 자기 일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일례로, 20대인 이슬아 작가는 전통적인 등단을 통하지 않은 채 이메일 구독서비스로 글을 발행하여 생계를 창출하고 있는데요. 이런 방식을 살펴보고 참고하면 좋을 것입니다.

새로운 경력의 관점들
스스로 일을 구성해 나가는 이들을 보면 어디서 보고들은 것을 따르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해나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방식에 대해 이미 학문의 언어로 규정된 바가 있었습니다.
1976년에 미국의 경영학과 교수인 더글러스 홀(Douglas T. Hall)은 '프로티언 경력 태도'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이 용어는, 프로테우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환경에 맞춰 자유자재로 자기 모습을 바꾸듯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 변화하며 경력을 쌓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조직이 아니겠죠. 개인이 쌓은 다양한 경험을 어떻게 일로 구성할지, 개인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일을 어떻게 주도할 것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지금 청년들이 경력을 쌓는 태도가 이미 1970년대에 학자의 언어로 정립된 것이 놀랍습니다.
또 다른 개념은 '포트폴리오로서의 일'입니다. 커리어를 쌓는다고 할 때에 예전처럼 한 직장에 들어가 계속해서 승진한다 의미가 아니라, 여러 직장에서 한 일을 포트폴리오처럼 구성한다는 것이죠. 이 개념을 저서 <시민경제론( L'economia civile)>(2015)에서 소개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스테파노 차마니(Stefano Zamagni), 루이지노 브루니(Luigino Bruni)는 "고정된 일터는 종말했다"라고 합니다. 활동으로서의 일은 계속 하겠지만, 특정한 일터에 예속되지 않고 각각의 일을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보고 관리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면서요. 덕분에 개인의 재능이나 역량은 발굴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고정된 일터가 없어서 오는 불안정성이 필연적으로 따를 것입니다.

평생직장과 무관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
그러니 평생직장이 이미 옛말이 된 시대에는, 나와 일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아야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할 때에 즐거운지, 내 역량엔 어떤 것이 있는지, 이 시대에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등등…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짐으로써 "나는 어떤 일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가"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기만의 가치를 성공의 지침으로 삼아 자기 주도적으로 경력을 관리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으로 변화한 일의 환경을 인지하지 못해서 막연히 느끼던 불안이 더 심했다.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머무르기보다, 나의 경험과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적극적으로 커리어 전략을 세우고 탐구해야 한다."

제가 진행한 워크샵에 참가하신 분의 후기처럼,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면 개인의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많이들 불안하겠지만, 각자의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힘내서 여러분만의 커리어를 구성하면 좋겠습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사회의 이야기
더 이상 직장 한 곳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일을 구성하지 않고 여러 직업을 이어 경력을 만드는 시대인 만큼, 일에 관한 정책을 구성할 때에도 조직이나 기관이 아니라 개인 위주로 접근하면 어떨까. '포트폴리오로서의 일'을 구성하는 개인에게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정부가 함께 조직적·사회적으로 접근해 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SNS에 김지수 기자의 칼럼 <롤모델 없음..청년이 온다, 청년의 언어가 온다>가 화제였어요. 지금 청년을 두고 "'롤모델' 없는 씩씩한 개인자의 얼굴"이라고 명명하던데요. '롤모델 없는 개인주의자'라는 표현에 저도 무척 공감했습니다만, '씩씩한'이라는 표현은 너무 기성세대가 바라는 모습으로 보이더라고요. 마음이 불안정한데 어찌 씩씩할 수 있을까요? 씩씩함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구조와 정책을 만들어 청년 개개인이 '나다운 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실시간 질문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은 삶을 지속할 때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평생직장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더라도, 적은 돈이라도 지속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는 보장이 있어야 미래를 기획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의 안정성,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요?
발제자 답변   제가 만나는 20·30대를 보면,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더라도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견 평생직장으로 보이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라도 말이에요. 나중에 프리랜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N잡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하고요. 개인이 자기 일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구성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일 것입니다. 이처럼 본업 이외에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언젠가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를 추천합니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독립출판을 해서 자기의 가능성을 알린다거나, 주변에 자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알려 놓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일로 발전할 가능성을 많이 열어 놓는 거죠. 
그런데 이런 흐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개인에게 수많은 짐을 지우는 사회라면 역량이 뛰어난 개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요? 개인이 각자 노력하여 역량을 드러내되, 사회적인 안정감을 주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