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과 기성품에서 가장 거리가 먼 디자이너 김종범의 작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몇. 1) 작동하지 않는 빈티지 조명 수리를 위해 고장 난 나사 부품을 직접 깎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2) 오토바이에 대한 사랑으로 몇 년 동안 하나의 커스텀 오토바이 제작했다. 3) 여기저기 결이 많이 뜯어진 합판 의자의 틈 몇십 개를 메우기 위해 모두 다른 모양의 구리 조각을 실톱으로 하나하나 잘라 메웠다. 
지면상 여기에선 세 개의 작업을 예로 들었지만,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한다면 한 사람의 작업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하고 또 깊은지에 놀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홈페이지 속 유영이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 떠오르는 작업 대상과 끝없이 대화하고 있을 그의 작업실 속 그가 모습. 오랜만에 찾아온 ‘팩토리와 친구들’ 시리즈에서는 김종범 디자이너의 대화를 레터 위로 끄집어내어 2회에 걸쳐 전한다.
인터뷰. 이경희

레어바이크와 커스터마이즈드
 웹사이트 url, sns 아이디, 이메일 계정, 문래에 위치한 작업실 이름 등 김종범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은 ‘레어바이크(rarebike)’입니다. 오토바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요. 실제로 오토바이를 타고, 월간지 <모터바이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이력도 있고요. 오늘의 인터뷰는 작가님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 ‘보기 힘든 오토바이’를 짚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작업할 때 하고 싶은 게 생각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이름을 상상해보는 것’이었어요. 그게 작업장 이름일 수도, 브랜드일 수도 있겠죠. 어떤 이름이면 좋을까를 상상하는 걸 항상 제일 먼저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커스텀(customized) 바이크 제작에는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를 생각했는데, 제가 가슴 설레는 순간은 보기 힘든(rare) 모델의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을 마주했을 때였어요. ‘저건 어떤 태도로 만들었을까’ 상상하는 순간이요. 그래서 ‘레어’와 ‘바이크’를 같이 써봤는데 붙여 쓰는 게 자연스러워서 쓰기 시작했죠.

ⓕ 오토바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대학생 때 자전거를 주로 타고 다녔어요. 그런데 잠깐 어디 세워둔 사이 없어진 거예요. 자전거가 있다가 없으니 아주 불편했죠. 그땐 제가 조치원에서 대학교에 다녔고, 집에서 학교로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하곤 했거든요. 하루는 그 터미널 책방에서 <모터바이크>라는 중고 잡지를 아주 저렴하게 사서 그걸 보며 통학하는데, 너무나도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도 아니고 관련 지식도 없는데, 거기 나오는 기계 장치와 오토바이를 보며 마냥 즐거웠어요. 그 조형미와 기계적인 아름다움이 제겐 굉장히 신선한 자극이었고, ‘이걸 타보면 어떤 느낌일까’ 했고, 돈을 모아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국산 오토바이 125cc짜리를 타기 시작했죠. 막연한 기호가 구체적인 취미 활동이 된 거예요. 그리고 대학교 시절에 제가 디자인 전공을 했는데 졸업이 임박할 때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언지 다시 질문해보니 막연하게 기계가 좋았어요. 오토바이는 나중에 가고 싶었던 희망의 대상, 막연한 욕구였던 거 같아요.
ⓕ 디자인 전공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지금과 같이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신가요?
꽤 재미있는 지점인데요. 제가 입학할 때는 학교의 전공명이 ‘산업공예과’였어요. 당시에는 산업공예과가 많지 않았죠. 그런데 제가 군대를 다녀오니 ‘가구·제품 디자인’으로 바뀌어 있었고, 제가 졸업한 뒤로는 ‘프로덕트 디자인’으로 바뀌었어요. 다행히도 돌아보면 ‘가구·제품 디자인’이라는 학과명은 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 같아요.

ⓕ 제가 아는 ‘대량생산에서 가장 멀리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효율은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에 놓은 것 같고요. 커스터마이즈드의 모범답안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제가 대량생산품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웃음) 제가 입고 있는 속옷부터 양말, 모자까지 대량생산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삶의 질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저처럼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필요한 것 더하기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 공을 들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짚신 같은 경우도 지푸라기를 꼬아서 만든 신발이지만 똑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공을 들이냐에 따라 공예품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흔한 물건이 되기도 하잖아요. 똑같은 재료라도 공을 들이면 아름다움이 조금씩 조금씩 탄생하는 걸 많이 느꼈고요. 물론 함정이 있긴 해요. 사람이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곧 가격이 높아지거나 양이 적다는 것이니까요.
ⓕ 그렇다면 본인의 작업 중 커스텀의 역량을 가장 높이 끌어올린 작업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떠했나요?
최근 재미있었던 맞춤형 작업은 제가 작업 후 <샤이니 스카스(Shiny Scars)>라고 이름 붙인 것이에요. 지인께서 빈티지 의자 보수를 의뢰하셨는데, 그분이 맡기실 때 리스토어 개념으로 원래의 모습과 똑같은 감쪽같은 걸 원치 않으셨고, ‘새로운 작업으로 탄생했으면 좋겠다’고, 굉장히 막연하지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안을 주셨어요. 근데 그 의자의 상태가 여러 겹의 얇은 합판으로 성형된 구조였는데, 오랫동안 훼손되면서 마치 손톱이 들려 일어나듯이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나간 상태였어요. 그래서 굉장히 불규칙하고 여러 군데가 파손된 상태였죠. 그리고 이걸 리스토어가 아닌 개념으로 작업을 해야 했을 때 가능한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봤어요. 하나는 레진 계열로 파인 부분을 보수하는 것, 다른 하나가 제가 실제로 작업했던 구리를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코로나가 막 발생할 때라 제가 구리에 관심을 가질 때였어요. 구리가 바이러스를 살균하는 효과가 과학적으로 있다고 들었고, 그래서 우리 조상은 구리를 가까이 두고 여러 가지 물건으로 활용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의자의 파손 부분에 구리를 정교하게 오려 하나하나 상감을 하듯이 보완을 하면 이게 복원 개념도 있으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시안 컨펌 후 이어 나갔죠. 
시작이 순탄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구리를 하나하나 불규칙한 형태로 몇십 개를 잘라야 하는데, 처음엔 컴퓨터를 이용해서 레이저 커팅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거래 업체에 알아보니 다른 건 다 자를 수 있는데 구리는 안 잘린다는 거예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자를 수 있는 기계도 있긴 한 것 같은데, 어쨌든 당시 제가 잘라야 했던 것들은 크기는 작고, 형태는 매우 불규칙한 데다, 두께는 또 굉장히 얇아서 기계 커팅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방향을 잃고 고민하다가, 마침 제가 산업공예과 재학 시절에 샀던 도구 중 얇은 실톱이 생각났어요. 그것으로 테스트해보니 잘 잘리더라고요. 시간만 들이면 불규칙한 형태를 하나하나 잘라낼 수 있었어요. 결국은 수작업으로 일일이 다 잘라냈고, 그러는 동안 많은 대화를 가슴 속에서 했어요. 옛날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했을까부터, 이렇게 작업하면 도대체 얼마의 비용을 받아야 하나 등등. 결과적으로는 의뢰인이 최종 작업물을 매우 좋아해 주셔서 저 개인적으로는 많은 생각과 실험을 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작업에도 어떤 실마리가 되었어요.

<Shiny Scars> 작업 기록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1ShdYWf4u0
잠재된 가능성을 마주하는 기쁨
ⓕ 저도 그 작업을 직접 보았고, 기록 영상도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샤이니 스카스>를 본 사람들은 모두 ‘뜨악’했던 것 같아요. 물론 좋은 의미로요. 
웹사이트의 본인 소개가 매우 간단합니다. “커미션 작업과 개인 작업의 순환적인 연결을 통해 작업을 발전시킨다”라고요. <샤이니 스카스>는 클라이언트가 좋은 작업을 끌어낸 경우겠네요.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가장 인상적인 커미셔너나 클라이언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볼까요?
제게 클라이언트는 매우 소중해요. 왜냐하면, 하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잠재된 가능성을 끌어내 주기 때문이에요. 클라이언트는 어떤 걸 보고 똑같은 걸 만들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해주고, 그러면서 저도 몰랐던 가능성과 방향으로 이끌어주죠. 그리고 그런 기회가 있어야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동반되는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에 의미가 커요. 가장 의미 있는 클라이언트를 뽑자면 갤러리 팩토리(지금의 팩토리2)가 아닐까 해요. 제가 몸담았던 노네임노샵의 가장 첫 전시를 했던 공간이기도 한데, 당시 저희에게 잠재된 가능성은 있었지만 여섯 명 모두가 결과물을 확보한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근데 그 잠재력을 보고 전시를 제안해 주셨고, 첫 전시이기도 하면서 저의 모든 기초를 닦은 어떤 ‘사건’이었던 것 같아요. 그 연장선상에서 김종범이라는 이름으로 첫 작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갤러리 팩토리의 <온 모빌리티(On Mobility)> 전이었어요. 그전에는 노네임노샵이라는 팀 작업만 했는데 제 개인의 이름으로 참여하면서 ‘과연 내가 작업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인지’에 관해 처음으로 고민했던 소중한 기회였어요. 그때도 제가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저의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준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클라이언트 없이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디자인하거나 제작한 작업이 있나요?
작업실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했어요. 대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고 경험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기회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자체 프로젝트를 했죠. 지금은 의뢰받은 일 사이사이에 조금씩 제 개인 작업을 늘려나가고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게 레어바이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커스텀 오토바이 제작이에요. 그간 여러 사정으로 미루다가 이곳에서 독립적으로 1층 공간을 쓰며 그간 머릿속으로만 그려온 것을 하게 됐고, 수집했던 기술과 자료를 토대로 독학하며 만들고 있어요. 확실히 클라이언트 일 사이사이에 하기도 하고 기술적인 걸 온전히 갖추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뭐 하나를 만들려 해도 시간이 한참 걸려요. 하지만 클라이언트 없이 만드는 순수한 결과물을 마주하는 기쁨도 있고, 자기 자신하고 마주하는 게 있어요.
 오토바이를 커스텀 한다는 게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가령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오토바이를 언뜻 보기에 바퀴는 기성품인 것 같은데요.
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자 축에도 못 드는 병아리예요. 메인 프레임이나 엔진을 바꾸는 건 아직 엄두 내기 어렵고, 현재로서는 외장을 만드는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제일 핵심 기술은 판금이에요. 철판을 하나하나 두드려 입체로 가공하는 기술인데, 이게 전통적으로는 대장장이의 단조 기법 혹은 중세에 갑옷을 만드는 기법과 유사해요. 알고 보니 철을 다루는 가장 전통적이고 원초적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더라고요. 예상치 못하게 원초적인 기술에 접근하게 된 거예요. 처음 출발은 ‘와! 오토바이를 만들고 싶다’였는데, 알고 보니 초창기에 철을 다루는 성형 기법과 판금 기법을 알아야 했고, 이 자체로도 매우 진지하고 중요한 금속공예였어요. 금속공예 하는 분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하는 기법인데 저는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원초적인 기술, 새로운 제작 세계로 들어가는 문 
 ‘제작하는 디자이너’라고 본인을 소개합니다. 제작과 디자인을 한 사람이 하는 데에는 한계도, 또 장점도 있을 것 같아요. 오토바이를 만드시는 것에서 확장해서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직접 제작하는 것의 장점은 일단 누군가와의 소통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제 머릿속에 나오는 게 있으면 제가 알아볼 정도의 간략한 도식화를 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면 되니까요. 중간에 변경하더라도 우회적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하지만 한계라면, 제가 모르는 건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작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제3의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든지, 제가 모르고 있던 것이 붙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줄어들어요. 또 혼자서 할 수 없는 규모는 사고방식에 제한을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과의 협업도 활발한 것 같아요.
여러 명이 있을 때는 그 안에서 조합이 가능하잖아요. 그 안에서 각 개인의 역할이 있고요. 분자도 원자의 형태로 혼자 있을 땐 다른 것과 붙는 성질이 있다고 해요. 혼자여서 협의 과정 없이 빠르게 일할 수도 있고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일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와 착착 잘 붙기도 해요. 협업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걸 그려볼 기회가 오히려 많이 늘어난 것 같고 한계를 벗어날 방법이 되기도 해요.
 부품도 필요에 따라 직접 깎거나 만드는 것으로 압니다. 요즘은 기술도 다양하고 좋은데, 어떤 순간에 무슨 이유로 나사를 하나하나 깎아 만드는 건가요?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과 약간 겹치는데, 오토바이를 만들려고 다가가보니 판금이라고 하는 얇은 판을 성형하는 아주 원초적인 기술을 배워야 했어요. 이처럼 내가 원하는 형태를 얻기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기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주 오래된 전통 기술에 닿기도 해요. 금속 하나도 롤러에 놓고 형태를 성형한다든지 열을 가해서 구부린다든지 망치로 얇게 펴기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양함은 굉장히 놀라울 정도예요. 요즘 높은 기술을 가진 자동차 리스토어 팩토리에 가도 특정 시대의 정확한 형태를 정확하게 복원하기 위해서 철판 하나를 가지고 수공업으로 형태를 만들어서 정확히 재현하거든요. 높은 수준의 작업을 위해서도 꽤 원초적인 기술을 가지고 이해해야 재현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기술들인 거죠. 그 원초 기술에 들어가서 이해하게 되면 거기서 다시 변형할 수 있는 또 다른 확장의 길로 들어서요.

 ‘왜 안 되지’를 계속 고민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의 차근차근한 연속이 만든 종착점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요. 내가 만족스러운 것? 이야기가 담긴 것? 무언가 깨달은 것? 다음 단계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
성장의 과정에서 무지함을 감추는 방식으로 아는 것을 늘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획득한다고 인식하면 과거에 획득한 것을 ‘안다’고 결정짓고 오감을 닫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성장은 ‘무지를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봐요. 무지를 느끼기 위한 바로 전 단계가 ‘왜 안 되지’인 것 같고요. 누군가 제게 창작활동의 다른 표현이 무어라고 묻는다면 ‘우회적 학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매끈하게 학습된 경로로 다다른 목적지로의 여정이 아닌, 생생하게 경험된 순간들의 여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창작활동의 목적이 아닌가 합니다. (1부 끝.)

사진. Yolanta C. Siu
김종범
디자이너 그룹 ‘노네임노샵’에서 각종 가구 및 장치물을 제작하였고, 2015 독립모형점 ‘서울과학사’ 설립 및 2019년 장치들의 집합체인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위해 ‘레어바이크’를 설립하여 제작을 기반으로 한 여러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rarebike 

“정말이지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어.” 팩토리의 홍보라 대표 (이하 보라보라)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정말’은 진짜 정말인 게, 팩토리가 처음 만들어진 2002년부터 최근까지를 얼추 더듬어보면 주제, 분야, 장르, 프로그램, 표현, 공간, 심지어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작은 예술공간이 앞구르기 옆구르기 하며 만들어낸 촘촘한 시도는 대체 그 안에 무슨 에너지가 일었기에 가능했을까 싶다. 사진과 짧은 글들로 돌아보면 모두가 반짝이는 순간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고, 시행착오를 겪고, 울다 웃으며 밤을 보내고 포옹했는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본 인터뷰 시리즈는 팩토리 안팎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또한 앞으로 만들어나갈 함께 그린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기대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당신과 우리, 지난날과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지금 여기 모두로 열려 있기를 바라며.

팩토리2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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