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그라치아 델레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여성 작가로는 셀마 라겔뢰프 이후 두 번째 수상이었다. 그는 당시에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1913년부터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문인들뿐만 아니라 스웨덴 학술원 관계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주목받는 작가였던 것이다.
그라치아 델레다의 작품은 무엇보다 그가 나고 자란 사르데냐의 풍습과 전통, 그리고 사르데냐인들의 정서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열아홉 살이던 1890년 한 출판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사르데냐의 예술가”라고 소개하고, “이 알려지지 않은 땅,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곳, 나의 사르데냐를 묘사하는 것만이 나의 큰 꿈”이라고 썼다.
델레다의 초기 대표작인 《악의 길》(1896)은 이런 꿈이 붉은 혈관의 맥박처럼 생동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사르데냐섬의 풍광을 배경으로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의 드라마를 펼쳐내는데, 델레다의 문장들을 곧바로 영화적 이미지로 옮겨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세련되고 생생하다.
가난하고 잘생긴 청년인 피에트로 베누는 먹고살 만은 하지만 부유하달 것까지는 없는 노이나가(家)의 하인이 된다. 그는 운명의 장난처럼 주인집 딸인 마리아 노이나와 사랑에 빠진다. 주변 사람들의 눈을 속이면서 이어지던 짜릿한 밀회의 순간도 잠깐, 이내 비극이 시작된다. 마리아와의 결혼을 꿈꾸는 피에트로와 달리, 마리아는 하인과 결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내적 갈등 끝에 동네의 명망가이자 소문난 부자인 프란체스코와 결혼한다. 버림받은 피에트로는 분노의 정념에 사로잡히고, 순순히 물러설 수 없는 그는 복수를 계획한다.
델레다는 피에트로와 마리아뿐만 아니라 피에트로를 짝사랑하는 사비나에 이르기까지 서술자의 시점을 옮겨가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밀도 높게 그려낸다. 그리하여 무심한 농담이 사랑의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사르데냐 들판에 스며들어 있는 외로움을 자양분으로 싹을 틔우며, 그 싹이 혈기 왕성한 청년의 뜨거운 욕망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결국은 질투심이 새겨진 부목을 따라 ‘피의 복수’라는 악의 길로 접어들기까지의 과정이 뜨거운 심리 드라마로 완성된다.
이 복수의 끝은 어떻게 될까? 12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찾아온 사르데냐섬 문학은 독자의 예상을 조금씩 비껴가면서 자신만의 결말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모든 것이 타버리고 재와 잔열만이 남은 폐허와도 같은 허망함이 스며드는 결말은 지금 읽기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돈과 계급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르데냐의 근대인들 모두가 부도덕의 공범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라치아 델레다가 학교교육을 4년밖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는 통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새로운 이탈리아인’을 양성하기 위한 근대 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한 때에 성장했다. 하지만 그런 교육이란 오로지 남성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델레다는 “어린 시절 고향 집을 방문한 수많은 손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흡수”하면서 상상력을 키웠고, 학교 밖에서 꾸준히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문학을 공부하면서 위대한 문호로 성장했다.
델레다는 50여 편의 소설을 비롯해서 사르데냐의 풍속을 다룬 에세이와 시까지 다양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어머니》와 《코시마》를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을 접하기가 어렵다. 《악의 길》 출판을 계기로 한국 독자들이 델레다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진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