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신유물론이 유물론을 혁신하려는 시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론투쟁의 측면에서 보면 구유물론의 혁신보다 사회구성주의를 포함하는 포스트주의적 담론적 선회에 대한 비판적 대응이라는 성격이 더 크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ㅈ)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물론과 거리를 두면서 언어적 선회를 주도했고 담론의 구성능력을 강조했습니다.
ㄱ) 이 글이 말씀하신 부분과 관련이 되는 것 같아서 올립니다.
[대학지성] 물질적 전회, 또는 물질로의 도피?↗
“돌이켜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넓은 의미의 인문학계에 하나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작동한 것은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이다. "이제 바로 그 ‘언어적 전회’를 표적으로 삼아 새로운 전환을 꾀하는 움직임이 뚜렷한 세력과 정체성을 갖추고 등장한다. 언어적 전회의 결과로 인식론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고 비판하며 그와 같은 ‘언어의 감옥’이 닫아버린 존재론을 향해 곧장 나아가자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전회는 ‘존재론적 전회’로 지칭되기도 하는데, 이때의 ‘존재론’은 인간 너머로 향하는 강한 극성을 갖는다. 동물을 필두로 한 비인간(non-human) 존재의 역량이 속속 발견되고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포괄하는 물질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전면에 나선다. ‘언어적 전회’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물질적 전회’가 물질 속에서 물질에 의존하며 물질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놀라울 뿐’이라는 듯 자명한 사실로 스스로를 정립하고 있다.”
ㅈ) 전통적 유물론은 "물질이 의식을 구속한다"는 명제 위에 서 있었는데 언어적 선회론은 "담론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명제를 이에 대치시킴으로써 유물론에 반대하거나 유물론을 형해화시켜 나갔습니다.
ㅂ) 과거의 유물론이 종국에는 오히려 물질을 버리려고 했다 (물질을 벗어버리려 했다?)는 식의 표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젝'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었던 것 같은데요, 사회구성주의 비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였을까요? (『신유물론 입문-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 60쪽 이하 쪽수만 표기) "유물론의 탈물질화 경향"(69쪽), "물질 없는 유물론"(70)등으로 표현되고 있네요.
ㅈ)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구성력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유물론자라고 자칭하지만 실제로는 관념론자에 가까웠다고 비판하는 대목으로 이해합니다.
ㅂ) 네,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사회구성주의로 인해 비롯된 탈물질화 경향이 급기야는 유물론의 탈물질화에 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ㅈ) 지젝은 과거의 유물론이라기보다 현대의 탈물질화된 유물론, 물질 없는 유물론에 해당될 것입니다.
ㄱ) 해당 대목에서 조정환 선생님의 『개념무기들』(갈무리 2020)을 참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젝의 이론적 욕망은 사실은 들뢰즈의 잠재적인 것에 대한 개념을 상징적인 것의 개념으로 전치시키고 평면화하는 것이다 ... 이러한 전치를 통해서 지젝은 유물론을 “의미-사건 층위의 자율성에 대한 단언”으로 정의한다.”
ㅂ) 과거의 유물론은 에피쿠로스부터 맑스 정도까지로 볼 수 있을까요? 맑시즘의 경우는 유물론이긴 하지만 정치경제학적 관점에 치우쳐 있는 등 유물론이 인간 중심적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방식으로 그 한계를 지적했던 것 같습니다.
ㅈ) 지젝은 라깡주의자로서 그의 철학에서는 상징계=이데올로기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그의 비판철학은 이데올로기 비판의 철학으로서 힘을 발휘합니다.
ㅈㄱ) 그런데 의문이 하나 듭니다. 어떤 개인이 유물론의 한계를 안다고 다른 사유가 가능할 수 있을까요?
ㄱ) 질문의 의미를 조금만 더 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ㅈ) 만약 어떤 사람이 유물론의 한계를 인식한다면(안다면), 그 인식은 이미 유물론의 경계나 혹은 그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유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ㅈ) 근대 이전에도 유물론적 사유가 있었지만 관념론과의 대척 속에서 명백하게 자기정립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기계적 유물론부터라고 생각합니다.
ㅂ) 근대의 기계적 유물론이라고 하면 저는 홉스, 데카르트 등이 떠오르는데요, 책에서 특별히 다루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혹시 책에서도 참조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ㅈ) 한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맑스주의 영향 하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기계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포함하는 유물론이 전통적 유물론의 주류였다고 생각합니다.
ㅈ) 책에 기계적 유물론을 다룬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계적 유물론의 주요 주의주장과 인물은 편의상 위키항목을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키백과] 유물론↗
ㅂ) 기계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니 정리가 잘 되었습니다. 지젝의 경우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따른다고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유물'은 사라지고 '변증법'에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책에서는 "지젝은 ... 독일 관념론의 계승에는 강박적일 정도로 매달리면서도..."(75)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ㅈ) 필자가 전통적 유물론에서 주목하는 문제점은 물질과 의식의 분리, 즉 데카르트적 이원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 대신에 신유물론이라고 바꿔도 무방합니다. 물질이 의식을 구속한다(혹은 의식이 대상을 재현한다)는 명제는 양자의 분리를 사유의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ㅂ) 네. (심신)이원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는 '횡단성' 논의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ㅈ) 네 그 극복의 방법이 '횡단' 개념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분리된 두 항"을 가로지른다는 뜻이겠지요. 책 맨 뒤의 카렌 배러드에게서는 "분리된 두 항" 자체가 선재(先在)하지 않고 행위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ㅈ) 의식이 세계를 구성한다(칸트)거나 담론이 세계를 구성한다(사회구성주의)는 주장은 이 분리를 뒤집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물질과 의식, 객체와 주체,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다면 실제로는 지금까지의 철학 전체를 극복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ㅂ) 관련해서 일원론과 신유물론의 관계를 논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책 81쪽 푸른글자) 이원론 아니면 일원론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신유물론의 대답 같습니다. "신유물론의 핵심이 횡단성이고 횡단성이 일자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일자 없이 이루어지는 통일과 구성의 운동이라면, ..."
ㅈ) 전통적으로 관념론은 관념 일원론이고 유물론은 물질 일원론인데 그 일원 세계 속에 관념 대 물질의 분리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일원론들이 이원성을 가동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겠지요.
ㄱ) 문규민 저자가 쓴 책 소개글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대학지성] 물질의 지도를 읽기 위한 가이드↗
ㅈ) 신유물론이 물질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유+물, 즉 오로지(유), 물질(물)뿐이다라고 한다면 어떤 형태로건 일원론으로의 강한 지향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자가 아니라는 점이 일원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ㅂ) "일자의 일원론"과 "다자의 일원론"이 어떻게 다를까요? 일단 책의 표현을 따르자면 "일자의 일원론"은 일원론적 일원론이고, "다자의 일원론"은 횡단적 일원론이라고 합니다. 신유물론은 다자의 일원론, 횡단적 일원론이라고 하고요.
ㅈ) 횡단적 일원론 속에서는 의식, 물질처럼 분리되어 있었던 항들이 자율성을 잃고 횡단적 흐름 속으로 용해되어 갈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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