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각기 다른 나라가 된 구소련의 광대한 영토를 돌아다니면서 그 시절 지어진 낡은 버스정류장을 찾아다니는 사진가가 있다. 일명하여 ‘버스정류장 사냥꾼’. 그가 찾아내는 버스정류장들은 각각의 마을 환경이나 지역 정서, 개개인 등의 개성이 담긴 자기만의 건축양식architecture을 보여준다. 연방의 정치가 닿지 않는 곳에서, 편하고 보기 좋은 것을 상상하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 버스정류장은 온갖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자들은 그것을 시에 빗댄다. 그 버스정류장들은 아무런 허세도 모르는 실용적인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미를 산출하는 시적 생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획일성을 꼬집는다. 구소련 시절의 이데올로기적인 것과는 또 다른 규율인 상업적인 압박에 의해 상상력과 삶의 다양한 양식이 죽는 사회. 공산주의의 획일화 대신 대중문화의 획일화. 사냥꾼이 모으는 버스정류장은 자본주의를 모르고, 전체주의를 회피한, 역사의 일부다. 또 사냥꾼의 기록은 매일 매일의 삶에 깃든 시적인 것의 기록이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 지닌 창의적인 역량의 필연성에 대한 역사적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원래 '소비에트'는 독재국가의 이름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ㆍ농민ㆍ병사로 구성된 평의회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의회와 대비되어 인민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조직 및 운영되는 기관이었다. 남아있는 옛 버스정류장은 옛 국가 '소련'이 아니라 혁명을 만들어낸 '소비에트'의 전통을 증거하는 유물이다.
- DMZ Docs 프로그래머 채희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