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겨우 마감을 마치고 달리는 택시 안에서 독자님께 드리는 편지를 씁니다. 독자님은 어디서 이 편지를 읽고 계실까요? 부쩍 추워진 날이 이어지고 있는데 밖에 나가실 때는 늘 따뜻한 장갑과 목도리 (그리고 시사인 잡지^^)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올 한 해를 돌아보니 유난히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습니다. 711호 기사 <모텔에서 태어난 아기>입니다. 이 기사를 쓸 때 머리 가득했던 고민이 떠오르네요.
여기 첫째 아이를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다 결국 둘째 아이도 모텔에서 낳은 한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아이 엄마는 지적장애가 있고 아이 아빠는 물류센터 알바를 하며 하루하루 모텔 숙박비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와 안면이 있는 모텔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살림이 없어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 엄마가 구속됩니다. 지인에게 빌린 생활비를 갚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엄마가 체포된 이후 모텔에서 혼자 아이들을 돌보던 아이 아빠는 결국 둘째 아이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아이는 중환자실로 이송됐고, 아이 아빠도 경찰에 체포됩니다.
여기서 악마는 누구일까요?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물론 아이 아빠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겠지요. 그는 아동학대 가해자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이 아빠에게만 손가락질 하고 비난해서 무거운 벌을 받게 하면 그만일까요?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건을 취재하던 제 머릿속에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기사는 명료한 문제 원인과 해결책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그리 간단해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맞춤으로 말해줄 인터뷰이를 찾는 것도 어려워보였습니다. 유명한 변호사와 대학교수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결국 문자는 보내지 못했습니다. 사건에 대해 이런 저런 해석이나 분석을 덧붙이기보다 사건 자체만 담백하게 전달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겠다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기사를 쓰는 동안 판단은 기자가 아니라 독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했습니다. 원인도, 해결책도, 인터뷰이의 말도 담기지 않은 기사를 쓴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이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이래도 되나' '기사가 너무 밋밋한 거 아닌가' '결국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사실 기사를 쓰면서도 몇 번 휴대전화를 집었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인터뷰이로부터 '멘트'를 따서 적당히 형식을 갖춘 기사를 쓰면 안 될까, 좀 쉬운 길로 가면 안 될까 하는 유혹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만약 제가 현장에 가서 모텔 사장님들을 모두 만나보지 못했다면 혹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 기사를 써야했다면 마음이 급한 나머지 '쉬운 길'을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독자님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이 가족을 도울 수 있느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관련 문의는 해당 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관할 구청으로 연계해드렸습니다. 독자님들로부터 전화 한 통, 메일 한 통을 받을 때마다 기사를 쓰면서 불안했던 그 마음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충분히 취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사IN은 주간지입니다. 매분 매초 기사가 쏟아져나오는 요즘 한 주에 한 건 기사를 작성하는, 어떻게 보면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언론사입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사 하나를 쓰는데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동안 공을 들일 수 있다는 게 기자로서 얼마나 큰 기회이고 행운인지요.
새해에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꽉꽉 채워서 좋은 기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시사IN 기자들에게 시간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주시는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