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인문잡지 《한편》의 첫 번째 주제 ‘세대’에 관해 지금까지 열두 통의 편지를 보내드렸는데요. 1월부터 시작한 세대 탐구가 끝을 바라보는 4월의 오늘은 《한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져왔습니다. 1호의 마지막 글인 「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의 초고에서 분량상 생략되었던 부분을 공개하니, 《한편》 1호를 가지고 계신 독자님은 종이잡지와 비교해서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으슬으슬한 공기를 뚫고 과학자들의 천막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막 가운을 벗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 백발의 할아버지를 붙잡고 나는 다짜고짜 호소하기 시작했다.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세요.”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을 만날 때면 한없이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들겠고, 삶에 찌든 무기력한 어른들을 보아도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저는 언제나 멀리서 바라보며 동경했던 영국의 멸종저항이 ‘파리 협정은 우리를 구해 주지 못하며 1.5도(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으면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없게 된다는 유엔의 보고서가 있었다.)를 지키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한다는 걸 알아 버렸어요. 저는 어떻게 해요? 네? 한국에 돌아가서 어디까지 말해야 하죠?”

백발의 과학자는 어둠속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건 오직 너만이 알 수 있단다. 네 마음만이 말이야. 네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너희 나라 사람들만이 알 수 있지. 영국 사람인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럼 영국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너무 늦은 건지도 모른다는 말을 과학자들이 할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너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니?”

“충격을 받아서 며칠을 울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이런 상황까지 몰고 온 시스템에 분노하고 있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야. 이전의 안정적인 기후를 회복하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 당장 행동해야 해. 그래서 우리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주장하는 거야.”

이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티핑 포인트(어떤 일이 처음에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에 균형이 깨지면서 거대한 변화로 바뀌는 순간)는 여러 개가 있어. 하나의 티핑 포인트를 막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티핑 포인트도 막을 수 없는 건 아니야. 우리가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 완전한 붕괴는 막을 수 있어.”

과학자가 덧붙였다.

“그래.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가족들이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물어본 지 두 시간이 지났어. 나는 이제 가야 하는데 말이야. 오늘 하루 종일 이 텐트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거든. 그런데 그중에 네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구나.” 

이 말에 나는 그만 울음이 터졌다.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너무 무겁고 심각해 외면하고 싶었던 기후위기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한국에서 해 온 노력을 먼 이국의 과학자에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나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한 그의 다음 말을 직감할 수 있었다. 

“미안하구나. 울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너는 한국에 돌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몰라.” 

“싫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 무거운 짐을 내 두 어깨에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강연을 다닐 때마다 놀라거나 충격을 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기후위기를 몰랐던 때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전환마을 운동(전환마을이란 기후위기와 경제적 불안정에 대비해 자체적인 회복력을 갖춘 마을을 뜻한다.)의 창시자이자 위대한 상상가 롭 홉킨스(Rob Hopkins)가 한국에서  온 방문단과 함께 전환마을 토트네스 모임방에 앉아 있다. 그는 어렵게 딱 한 시간을 내준 거라고 했다. 급한 마음에 나는 바로 이렇게 물어보았다.

“요 근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걸 들었어요. ‘기후재앙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10년쯤 남아 있다고 유엔이 발표했다. 나는 이 10년이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경이로운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서서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멸종저항 덕분이기도 하고, 그레타 툰베리 덕분이기도 하고, 오늘이 있기까지 노력해 온 수많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이제 때가 오고 있다. 상상해 보라. 우리가 꿈꿔온 모든 전환을 이루어 낸 10년을. 10년이 흐른 후의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놀라운 시대를 살아냈다는 가슴 벅찬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당신이 어떻게 여전히 이렇게 낙관적일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특히 지난 1년 전부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지구적 변화를 과학적으로 검토해 볼 때 이제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적 붕괴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생애 내에 인류문명의 기본적인 토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로 인한 고통에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영국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여전히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요?”

롭 홉킨스는 둥글게 모여 앉은 열다섯 명의 한국 방문단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네. 나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가 유튜브에서 수없이 보아서 익숙한 그 자주색 셔츠를 입고, 우리와 마주 보는 위치에서 창문을 등지고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마 수십 번도 넘게 받았을 이 질문에 정성을 다해 찬찬히 대답해 주었다.

“그들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붕괴가 멀지 않았고, 이제는 피할 수 없다는. 아마도 그럴 확률이 훨씬 높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멸종저항운동이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레타 툰베리와 결석시위를 하고 있는 청소년 동료들이 성공한다면요? 우리는 그런 상상 또한 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을 생각해 보세요. 모두가 이런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나요? 20년 전을 돌아보세요. 인터넷을 이렇게 빠르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나요?

인간은 놀라운 존재예요. 위대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역사를 돌아보세요.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큰 변화가, 도저히 일어날 거라 꿈도 꿀 수 없었던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저는 멸종저항운동을 정말 좋아해요. 제 아내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지금 마을 사람들과 함께 런던에 가서 시위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어떨 때는 좀 걱정되는 게, 멸종저항의 심장부에는 두 개의 충돌하는 서사가 공존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필요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커다란 에너지와, 동시에 ‘이미 너무 늦었다’는 정서가 함께 있는 거죠. 저에게는 이게 마치 1963년에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마틴 루터 킹이 ‘그런데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요. 저는 그런 장면을 상상할 수 없거든요.

누군가는 여전히 변화가 가능하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꿈꾸어 왔고 준비해 온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부여되지 않은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사치와 특권이라는 말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어떤 맥락에서 쓰신 말인지요.”

“음, 저에게는 아이들이 있어요.”

다시 멸종저항운동의 현장인 런던 트라팔가 광장으로 돌아왔다. 과학자들의 텐트에서 내가 울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커다란 가발이라도 쓴 듯 뽀글뽀글한 금발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들고 불쑥 뛰어 들어와 경쾌하게 말했다.

“이거 비건 아이스크림인데 같이 먹을래요?”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자 이번에는 웃음이 터졌다. 나는 눈물을 닦고 비건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백발의 과학자가 물었다.

“내 이름은 도미닉이야. 네 이름은 뭐니?”

“저는 선(Sun)이에요. 하늘에 떠 있는 노랗고 반짝이는 거요.”

“문(Moon)이라는 한국 이름은 들어 보았는데, 선은 처음이니 기억할 수 있겠구나.”

“저는 오늘 밤을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그가 내게 물었다.

“네가 기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니?”

“충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실감하지 못해요. 받아들이기 어려워해요. 그런데 청소년들은 달라요. 바로 행동에 나서요.”

“바로 그거다.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야 해. 이 친구들이 훨씬 빨리 움직일 거야. 나를 움직인 것도 청소년이었어. 그레타 말이야.”

우리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었다. 경쾌한 여인은 다시 우리에게 춤추듯 다가와 아이스크림을 싸고 있던 포장을 쓰레기봉투에 수거해 갔다. 나와 친구는 도미닉과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백발의 노신사가 다리를 절뚝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빗속에서 트라팔가 광장 앞 거리를 점령한 시위대는 신나게 북을 치며 ‘멸종(extinction)! 저항(rebellion)!’을 외치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그 속에 섞여 춤을 추었다. 내리는 비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것은 저항의 춤, 슬픔의 춤, 애도의 춤이었다. 

그래, 어쩌면 과학자의 말대로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살았던 안정적인 기후를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혼을 구하기에 늦은 시기란 없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서로가 더 깊이 연결된 공동체를 꾸려 나갈 수 있다. 서로를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믿을 수 있다면, 순수한 영혼들이 사라져 가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면. 지금 위기에 처한 인간의 문명은 그 한켠에 사랑하는 법에 대한 수많은 지혜를 품고 있는 보고이기도 하다. 그 지혜를 두 팔 크게 벌려 선물처럼 끌어안고 노래하고 춤추며 저항할 수 있다면!

정혜선은 스스로의 기후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기후행동을 시작했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마주할 때 일어나는 무기력과 절망감을 행동하는 에너지로 전환해 내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지리산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고, 2016년 덴마크 세계 시민 학교를 수료했다. 현재는 기후위기, 세계 시민 교육, 퍼머컬처 등을 주제로 다양한 곳에서 미래세대와 소통하고 있는 프리랜서 활동가이다. 2019년부터 그레타 툰베리 페이스북 한국 팬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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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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