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호 vol. 7
‘건강 한달’은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일리치약국의 뉴스레터입니다. 공간은 작지만, 이야기는 넘치는 일리치약국의 ‘우당탕탕’ 성장스토리를 전해드립니다. ‘건강 한달’을 당신의 상비약으로 체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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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코로나  |  “우리 엄마 아미래”  | 친구의 취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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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코로나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코로나에 걸렸지만, 신기하게 일리치약국 3인에겐 별일이 없었다. 내심 활동반경이 넓지 않고 생활이 심플해서일 거라 생각했다. 여름이 되면서 다시 유행하는 코로나는 감염력이 아주 높아서 그동안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감염되기 시작했다. 7월 말 결국 나도 이번 유행을 비껴가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밤새 켜져 있던 선풍기 바람이 싫어지더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순간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자기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봤더니 양성이었다. 

  순식간에 심한 오한과 발열이 시작됐다. 긴팔 티셔츠와 긴바지로 갈아입고 이불을 두 겹 덮고, 뜨거운 물을 담은 통을 껴안고 있어도 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정식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꼼짝 못 할 정도로 아팠다. 오후가 돼서 겨우겨우 집 근처 내과에 가서 진단받고 5일분 약을 받아왔다. 해열진통제 두 가지, 기침약, 가래약, 위장약 해서 5알이 들어있었다. 

  발열 증상은 바이러스에 대항한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몸살과 두통 때문에 힘들었지만, 해열제는 안 먹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기침가래약은 증상이 없었으니 당연히 먹지 않았다. 대신 발한을 시키는 한방제제를 먹었다. 약을 먹고 이불 속에서 머물고 있자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한이 조금씩 사라짐을 느꼈다. 또 면역력을 올리기 위해 종합비타민과 고용량의 비타민C를 복용했다. 첫날은 입맛이 없기도 했고 온전히 면역 반응에 에너지를 쓰기 위해 한끼도 먹지 않았다. 둘째 날부터 죽으로 식사를 조금씩 했다. 오한은 빨리 사라졌지만, 발열과 두통, 몸살은 서서히 좋아졌다. 5일 후 정상 체온이 되었고 몸살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없어졌다.

  5일간 앓으면서 한방이론 중 상한론(傷寒論)에 나온 태양병(太陽病)의 경과를 고스란히 밟았다. 상한론은 한나라 사람 장중겸이 집대성한 한방이론이다. 찬 기운에 몸이 상했을 때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논한다. 지금의 감기나 독감같은 바이러스 감염질환이 태양병에 해당된다. 코로나도 태양병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병은 병증이 인체의 가장 바깥 부위(表)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치료는 표(表)를 열어 바이러스 등의 외사(外邪)를 밖으로 밀어내는 약인 해표제(解表劑)를 쓴다. 나처럼 오한과 발열이 있는데 땀이 나지 않는 경우에는 마황탕이나 갈근탕을 써서 땀을 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를 앓은 중딩 조카는 나보다 증상이 심했다. 오한과 발열, 두통과 몸살의 증상은 같았고 거기에 심한 인후통까지 있었다. 또 열도 40도에 육박하여 증상이 무거웠다. 결국 조카는 한방제제와 해열제를 병행했다. 

  나의 투병 기간은 5일. 감기에 걸려서 낫는 기간과 별다르지 않았다. 더 아팠다는 거 말고는 별 후유증도 없었다. 물론 그간 사람들이 겪은 코로나의 양상은 다양하다. 롱코비드로 후유증이 길게 간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죽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난 코로나가 감기나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기나 독감으로도 약한 사람들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노약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자신의 면역력과 적당한 치료로 코로나 감염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양약과 한약을 모두 공부한 약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방식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나의 코로나 투병기를 글로 쓴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너무 걱정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유행 중인 오미크론형은 치명률이 낮다. 앞으로의 변이도 점점 치명률이 낮은 쪽을 향할 것이다. 무엇보다 병을 치유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치유는 이런 감염의 경험들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우리의 면역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당장 아프지만 이 감염을 경험한 우리 면역 체계는 이전보다 더 건강해질 것이다.

“우리 엄마 아미래”

 

 정말? 엄마가 암이라는데 저 친구는 왜 웃지? 알고 보니 ‘아미’란 방탄소년단 팬클럽 ‘ARMY’를 말하는 것이란다. 그 이야기에 애들과 같이 웃던 내가 어느 날 암환자가 되었다. 아. 나도 이제 아미다! 암 선고에 밤새워 고민했다. 온갖 인터넷 정보를 찾고 카페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난 위안과 불안을 얻었다. 치료가 끝난 지금도 매일 습관처럼 카페커뮤니티에 들른다. 오늘도 수많은 환자들이 생겼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한다. “힘내세요! 시간은 금방 흐릅니다.” 내 주변에도 이전에 비해 유방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먼저 투병했기에 그들의 연락을 직접 받기도 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나는 이참에 암 선고를 받은 이후의 과정들을 글로 쓰면서 내가 알고 있는 팁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작년 1월 나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간 건강검진을 잘 받지 않았던 나는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했다. 솔직히 유방암은 내가 걱정하던 병은 아니었다. 난 아이들에게 모유수유도 짧게나마 하였고, 하루 8시간 이상 브레지어를 하면 유방암에 걸린다고 하길래 브레지어를 즐겨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갱년기에 필수라고 하는 호르몬약도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유방암 가족력이 없었다. 왜 걸렸을까? 언제 걸렸을까? 그러나 책자 곳곳에서 암의 원인이라고 하는 음주, 비만, 운동부족,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다 해당되었다! 내가 왜 걸렸냐고 울고불고, 원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렇게 순전히 ‘내 탓이다’ 하는 자책도 문제다. 암에 걸리는 것은 그냥 교통사고 같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원망과 자책하는 시간은 짧게! 책과 자료를 찾으며 치유 방법을 찾는 게 낫다.

 

 유방엑스레이를 찍는 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힘든 경험이다. 가슴의 살을 집어 짜내서 두 철판 사이에 집어넣고 누르면 비명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 유방암 검사의 최대 적이 아닐까? 난 여의사가 있는 믿음직한 유방외과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갑자기 가슴에서 커다란 몽우리가 잡혔어요’ 의사는 어쩜 저렇게 둔할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럴 리가 없다고, 적어도 2년은 넘었을 거라고 했다. 전조증상이 있었나 생각해봤다. 축제에서 신나게 팔을 흔들어 댄 후에 쇄골뼈가 몇 달 동안 아팠고, 주기적으로 심한 이석증이 왔으며, 모임에서 술을 먹고 뻗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으로 돌아오면 잠시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온 몸이 피곤했다. 그러나 내가 암이 아닐 거라고 은근 믿고 있었던 것은 몸무게가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환자라면 모름지기 살이 쪽 빠져야 하지 않는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들은 주변에 유방암 걸리고도 완치되어 30년간 잘 살고 있는 지인들을 얘기하며 나를 위로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나의 사주를 얘기하며 ‘너처럼 센 사주는 쉽게 죽지 않는다’ 라고 했다. 그런 말들이 내게는 다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는 밤이 되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다. 남겨지게 될 가족들이 제일 걱정이었다. 세 딸들은 결혼을 안 한다고 했으니 특별히 친정엄마 노릇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철딱서니 없는 남편은 어쩌나, 늙으신 부모님은 어쩌나. 밤새 눈물이 났다. 항암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정리하고 싶었다. 먼저, 쌓아놨던 짐을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없을 때 이 짐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온갖 책을 읽어도 변하지 않던 나의 생활이 암 선고에 지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버리자! 소박해지자! (그 때 다 버리고, 난 지금 다시 사고 있다 ㅠㅠ)

 

 남편은 처음엔 암일지도 모르겠다는 내 말을 안 믿었다. 그러다 진단받고 큰 병원으로 옮기자 실감하기 시작했다. 밤새 등 돌리고 누워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던 그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논문이건 기사건 몽땅 찾아 읽었다. 코로나로 바쁘지 않게 된 회사 사정이 그를 늘 병원에 동행하게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남편과 함께 겪을 것이기에 좀 든든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이 엄청난 사실을 어찌 알리나 고민이었다. 난 입시를 막 마친 막내 아이에게 이 소식을 전해 아이의 해방감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검사의 검사를 거듭하고 있을 즈음 둘째 아이가 수술은 언제 하냐고 물었다. 갑자기 훅 들어 온 질문에 얼떨결에 “6월에”라고 얘기했다. 간호사 친구를 둔 둘째는 수술을 하면 위험한 상황은 아닌 거라 나를 위로했다. 그 때부터 아이들은 서로 당번을 짜서 집안 살림을 맡았다. 거실 청소와 빨래, 자기들 음식을 아이들이, 나의 음식과 빨래는 남편이 맡았다. 다 키웠다!

 

 여기까지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나의 이야기이다. 다음 달에는 가장 힘들다는 항암산을 넘는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몇 년 전에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리스본에 있는 오래된 성당에 붙어 있는 클래식 기타 연주 포스터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는 토요일에 성당 안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수요일에 떠나야 해서 난감했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스케줄을 바꿔서 다시 돌아와 기어이 맨 앞자리에서 성당 메인 홀 전체에 울리 퍼지는 클래식 기타 소리를 들었다. 꼭 보고 싶었던 이유는 John Williams 가 연주하는 ‘전설’이라는 클래식 기타 곡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오래된, 사방이 큰 돌들로 만들어진 왕궁 실내같은 곳에서 연주하는 그의 동영상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기타 소리의 울림이 달랐다. 이 곡은 ISSAC Albeniz가 피아노 곡으로 작곡한 Asturias를 기타 작곡가인 Francisco Tarrega 가 편곡하여 Leyenda(Legend, 전설)라는 부제목을 붙였다.

 많은 연주가들이 그들만의 기교로써 다양하게 연주하지만, 난 John Williams가 무심한 듯 그러나 정확한 박자감과 운지로 연주하는 영상을 즐겨 본다. 이 곡은 전주없이 바로 주제(Theme)가 나오고,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변주되고, 여섯 줄을 동시에 ‘쾅’내리치면서도 주제가 계속 변주되며, 때로는 Harmonics 기법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 간다.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마지막에는 처음 강렬하게 시작했던 주제를 조용히 느리게 그 일부만을 반복한다. 마치 처음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듯이......

By 가마솥 (문탁 공부방 회원)
 나는 간절히 바랬는데 내 것이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원망과 원한을 동력으로 혼신을 다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욕망한 것들이 반짝 내 것이 되는 날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것을 뺀만큼 삐까번쩍한 것들이 늘 다시 차고 넘쳤다.욕망을 이정표 삼아 사는 내게 존재 자체가 길이 되게하라는 고미숙 쌤의 말이 어렵다. 

 쉬운 삶이란 없다.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질문을 지고 가는 구도자는 아닐지. 존재를 향한 나의 길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내 질문의 시작일 것 같다.

By 도라지 
한방 감기약
 
 약국에서 살 수 있는 감기약 종류가 참 많다. 종합감기약, 기침 가래약, 콧물감기약 등 다양하다. 양약 말고도 한방 감기약이 있는데 다들 잘 모르는 것 같다. 찬 기운이나 감기바이러스에 의한 질환 중 한방 제제로 잘 치료되는 경우를 소개한다. 기온 떨어지는 환절기에 잘 발병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에는 소청룡탕이 좋다. 비염과 함께 동반되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에도 효과를 낸다. 오한, 몸살에는 갈근탕을 복용한다. 땀이 나면서 열이 떨어지고 다른 증상도 사라진다. 목이 아픈 감기 즉 인후염에는 은교산이 좋다. 일반적인 감기약으로는 패독산 종류가 적당하다. 패독산은 감기 예방에도 복용할 수 있다. 이상 여기 소개한 한방 감기약은 제약회사에서 나온 제품으로 집 근처 약국에서 판매한다. 이외에도 증상에 따른 한방 감기약은 더 있으니 약사와 상의하길 바란다. 

By 감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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