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독자 님께 변진경 기자가 드립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그간 평안하게 잘 지내셨나요?
시사IN을 늘 지켜보고 응원해주시는 후원독자께 근황 보고 겸 안부 인사 전합니다.
 
시사IN 편집국은 대선 시기를 맞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상반기에는 경력기자 두 명(김다은․문상현 기자)과 신입기자 두 명(이은기․주하은 기자)을 새 식구로 맞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시사IN 같은 작은 독립언론 입장에서 기자를 뽑고 키우는 일은 가장 돈이 많이 드는 투자(?)라 할 수 있을 듯한데요.
 
물론 시간과 공이 드는 탐사보도를 하는 일 또한 그 못지않은 투자입니다. 최근 <시사IN> 733호를 받아보신 독자는 이종태 편집국장이 3~4개월 걸리는 장기 취재에 기자 한 명을 투입하느라 애 먹은 사연을 접하셨을텐데요(‘그 기자’는 4개월 동안 어디 있었을까). 이런 중요한 투자가 가능하게끔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시는 독자들께 뉴스레터를 빌어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스쿨존 너머’ 탐사보도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며 변진경 기자가 후원독자들께 드리는 편지를 동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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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랑하는 독자님. 시사IN의 변진경 기자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시사IN을 향한 독자님의 따뜻한 마음은 느껴지기에 독자님을 친근하게 호명해보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9월의 마지막 날, <시사IN> 제734호 마감을 마쳤습니다. 지난 5월부터 붙잡아오던 ‘목숨 건 등굣길’ 기획이 실린 마지막 호입니다. 엄청나게 마음이 개운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네요. 온라인 기사 수정이나 웹페이지, 영상 검토 등의 뒷일이 남아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못다 한 말, 못다 한 취재가 남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독자님들께서는 주로 어떨 때 일이나 행동의 의욕이 솟으시는지요? 저는 주로 많은 일의 동기가 ‘열 받아서’입니다. 열 받아서 취재를 시작하고 열 받아서 인터뷰를 하고 열 받아서 기사를 쓰고 열 받아서 계속 관심을 놓지 않습니다. 이번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취재의 계기 역시 열 받아서입니다.
 
언제 어디에 열 받았냐고요? 사실 오래 됐습니다. 2019년 민식이법 제정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포털 등을 중심으로 길 위의 어린이들에 대한 엄청난 비난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와 유족에 대한 동정과 눈물은 아주 잠깐이었고, 혐오와 증오는 아주 오랫동안 농도 짙게 이어졌습니다.
 
기사에도 서술했지만, 저는 유튜브나 포털 기사들 댓글을 읽으면서 정말 ‘어린이 혐오의 지옥도’를 목격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교통사고를 게임의 소재로 사용한 모바일 게임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사고날 뻔한 어린이 모습을 블랙박스 영상으로 전하면서 조롱하고 킬킬대는 유튜버들을 보며 뒷목을 잡았고요. “민식이법, 강간범보다 더한 형량?!” 식의 포털 기사 제목을 보고 한참을 혼자 식식대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그 분노의 감정을 잊지 않고 간직해두다가 2021년 올해 기획 기사 패키지로 만들어냈어요.
 
다만 기사는 분노의 덩어리가 되면 안 되겠지요. 너무너무 열 받았기에 더욱더 데이터와 현장 취재에 매달렸습니다. 객관적 데이터와 팩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나 어른 중심, 운전자 중심, 차도 중심인지를요. 세상은 너무나 매몰차져서 이제 피해자나 유족의 서사는 금세 질려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팩트, 데이터, 판례, 논리, 사례,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 위에서 어린이와 같은 보행 약자를 보호하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메시지를 왜 이런 치밀한 전략과 구성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가끔 울컥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김동인, 이명익 기자와 최한솔 PD를 꾀어 올해 봄부터 기획을 준비했어요. 여름에 한창 현장 취재를 다녔는데…. 정말 더웠습니다. 도로 위를 걸어다녔을 뿐인데 팔에 껍질이 벗겨지더라고요😅 지난해부터 시사인에 합류해 영상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는 최한솔 PD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8월 장마철 내내 현장 취재를 다녔습니다. 이명익 사진 기자는 사진뿐 아니라 드론 영상 촬영 전문가입니다. 제가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데도 온 전국의 사고 다발 지역을 드론으로 항공 촬영하겠다며 부득부득 우기며 지방 출장을 다녔습니다. 김동인 기자는 <대림> <빈집> 등 시사인의 디지털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선구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는 멋진 후배입니다. 제 후배지만 선배처럼 모셨지요. 덕분에 이번 기획물을 지면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들을 저희 시사IN 지면유튜브 채널, 또 특별 웹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360도 VR 콘텐츠(사고 현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인데, 특별하고도 슬픈 장치가 하나 더 있답니다)도 담겨있습니다. 증강현실 AR 콘텐츠도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기사를 읽고 공감하는 독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편지를 읽어보시면 아셨겠지만, 저희 시사IN과 시사IN 기자들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저는 특히나 잘 열 받고, 잘 부들부들(;;)거리고, 그런가하면 잘 까먹기도 하고, 욕심이 많고, 욕심을 채우고 싶어서 아득바득하는 편인...다소 애처로운 인간형입니다. 왜 이런 안물안궁 TMI를 말씀드리냐면….
 
독자님들이 저나 시사IN의 이런 욕심과 분노(?)와 화력(?)을 만들어내고 키워주시고 채워주시는 그 모든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 분노, 화력이 좋은 보도물로 승화되는 모습을 이제까지 종종 보여드려 왔고, 아마도 독자님도 그 노력을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저희 시사IN이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더 자주, 더 땡실하게 보여드려야죠. 시사IN의 욕심을요. 저희가 더 욕심 부릴 수 있게, 욕심 부려도 되게, 욕심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기까지 지금까지처럼 계속 응원 부탁드립니다. 뜨거운 마음을 승화시켜 날카롭고 단단한 기사로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기자 한 명이 하나의 주제로 1주일 이상 품을 들여 취재하고 기사쓸 수 있는 여유를 지닌 매체가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시사IN에서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처럼 정말 반년 가까이 기획 하나에 매진하는 경우는 제 기자 생활 중에서도 아주 드뭅니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 좋은 점도 있지만 사실 그 부담감이 엄청납니다. 기획 진행 내내 부드러운 걸 먹고 있어도 목이 막히고 시원한 걸 마셔도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밤에 누워 눈 감을 때마다 빌기도 했어요. 마치 수능 앞둔 고3때처럼요. ‘아, 눈 뜨고 일어나면 수능 끝나 있었으면 좋겠다’처럼, ‘아 눈 뜨고 일어나면 기획 다 마감해놨으면 좋겠다’라고요. 그리고 다짐했죠. ‘다시는 이렇게 힘든 거 안 해야지’.
 
그런데요, 독자님들께 이렇게 편지를 쓰며 시사IN과 저의 욕심에 대해 내밀한 마음을 고백하고 나니까 허허, 다시 또 욕심을 부려보고 싶네요. 다시 또 시사IN의 굵직한 탐사보도, 심층보도를 기대해주세요. 또 욕심 부려볼게요. 

2021년 10월

변진경 드림

  •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는 자료와 데이터, 다각도에서 이뤄지는 분석을 통해 문제제기와 인식 전환의 필요성까지 역설해내는 멋진 기획 기사." 
  • "아이들이 '민식이법 놀이'를 한다는둥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애들 탓하는 '어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 "시사IN 기획기사 눌렀다. 돈부리 혼자 먹다가 별안간 우는 사람 됨." 
  • "민식이법 놀이가 유행해서 운전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뉴스가 나올 때, 시사인에서는 전국의 스쿨존을 다니면서 도로사정과 어린이들의 동선을 파악했다. 둘 다 뉴스가 하는 일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기꺼이 돈을 내고 보고 싶은 뉴스, 세상의 변화에 좀 더 기여하는 뉴스는 아무래도 후자다." 

<시사IN>이 4개월간 준비한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에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위해 더 욕심 부릴 수 있게,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응원해주세요. 독자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저널리즘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쿨존 너머' 기획에 합류한 기자들이 진행했던 탐사보도를 만나보세요. 
변진경 기자의 말마따나 이 모든 기사가 늘 지켜봐주시는 독자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통계와 법률로는 포착되지 않는, '경계'에 선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다. -김동인 기자
한국형 빈집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협의 경고다.  - 김동인 기자
이들이 겪은 질병과 소외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명익 기자(사진) 
K-방역이라는 수레를 직접 굴려야 했던 보건소 사람들과 함께한 기록. -최한솔 PD(영상)
시사IN 편집국 또는 변진경 기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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