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 #천관율기자 #20대남자

[주말에 뭐 읽지]  2021-04-08 #51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책 
커트 캠벨 지음, 이재현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펴냄

이 책, 재미없다. 저자인 커트 캠벨이 얼마나 훌륭한 외교관인지는 모르지만, 읽는 사람을 홀리는 작가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캠벨은 오바마 정부 시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일하며 아시아 전역을 누볐다. 그러니 독자는 외교의 막후 현장과, 세계 패권국가 미국 정부의 놀라운 비사를 기대하게 마련이다. 〈피벗〉에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이지 하나도 안 나온다. 책은 오로지 21세기 미국 외교에서 아시아로의 ‘피벗(무게중심 옮기기)’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500쪽짜리 공무원 보고서를 읽는 기분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이 책, 재미있다. 읽고 나면 우리 시대의 작동 원리가 달리 보인다. 미국과 중국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으르렁거리는지,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을 어떻게 다루겠다는 속내인지, 틀어막고 봉쇄하겠다는 건지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하겠다는 건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뿌옇고 어렴풋한 이미지만 갖고 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해상도가 낮다. 그러니 국제 뉴스를 봐도 무슨 의미인지 감이 안 온다. 〈피벗〉은 우리가 국제 질서를 보는 해상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미국과 중국이 놓는 수의 맥락이 새롭게 보이는데, 외교 비사나 권력의 내부투쟁과는 또 다른 놀라운 재미를 준다. 읽을 때 지루한데 읽고 나면 두근거리는 묘한 책이다.

캠벨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미국 언론이 ‘아시아 차르’라고 부르는, 아시아정책 총괄역이다. 바이든 정부 미·중 관계와 한반도 정책이 그의 손에서 다듬어질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아시아 차르’가 어떤 구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한동안 필독서로 꼽힐 것이다. 번역하기 까다로울 책인데 전문 연구자가 깔끔한 한국어로 옮겼다.

천관율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자본주의 대전환
리베카 헨더슨 지음, 임상훈 옮김, 
어크로스 펴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중학교 사회 시험에서 ‘기업의 목적’을 묻는 문제를 틀린 적이 있다. ‘사회 공헌’을 골랐는데, 오답이었다. 정답은 ‘이윤 추구’였다. 우리 시대가 기업에 돈벌이 말고는 어떤 다른 목적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불평등부터 기후위기까지 결정적인 문제들은 점점 더 나빠져갔다.
리베카 헨더슨도 우리 시대의 결정적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 연구자다. 그는 현재의 기업이 이런 문제에 꽤 책임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결정적 문제를 풀기 위해 기업의 힘을 쓰자고 주장한다. 기업의 목적, 소유 구조, 그리고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면 가능하다. 기업은 강력한 문제해결 기구다.
이 기구가 정말로 중요한 문제를 풀도록 규칙을 바꿀 때다. 우아하면서 위력적인 아이디어다.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카스 무데 지음, 권은하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극우는 지역적·국가적 조건의 산물이기 때문에, 대처하는 방법은 항상 이러한 조건에 맞춰 개발되어야 한다.”

극우 포퓰리즘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서유럽과 미국에서 횡행하고 있다. 저자는 9·11 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 2015년 난민위기라는 세 가지 현상이 서구 극우 세력의 자양분이라고 쓴다. 이렇게 몰려온 ‘제4의 물결’은 극우파를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서구 정치의 주류로 부상시켰다. 이후 대부분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21세기 들어 급격히 상승했다. 책은 극우 정당이 그동안 겪은 변화뿐만 아니라,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의 성향도 다룬다. 특히 무겁게 다루는 키워드는 이민 문제다. 이민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감이 극우 정당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것이다.

생존자 카페
엘리자베스 로즈너 지음, 서정아 옮김, 글항아리 펴냄

“지나온 과거는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다.”

작가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부의 딸이다. 태어날 무렵, 전쟁은 15년 넘게 지난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이었다. 작가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2세, 베트남 난민의 자손들, 캄보디아 킬링필드 생존자 자녀, 아르메니아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 사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유전성 트라우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자손들에게 유전된 사례에 관한 연구도 있다. 양육 방식 때문일까, 모종의 다른 경로를 거쳐 대물림된 걸까. 작가는 한 세대를 온통 뒤흔든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줄 사람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 그 사건을 기억할 방법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졌다. 생존자 2세가 ‘평화를 위해 바치는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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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산책
나가미네 마사키 지음, 야쿠 가오리 그림, 
송경원 옮김, 지금이책 펴냄

“이 손으로 엄마를 돌보고, 이 손으로 엄마를 죽였다.”

10년간 돌보던 치매 노모를 죽인 아들의 이야기다. 일본 사회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실화가 바탕이다.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는 아들의 하루, ‘간병 살인’이라는 결말에 한 걸음씩 다가가던 지난날, ‘온정 판결’이라는 이름이 붙은 재판 장면이 곱고도 처연한 그림과 함께 종이 위에 펼쳐졌다. 일본뿐 아니라 이미 우리나라에도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간병 살인’ 문제를 머리와 함께 가슴으로 같이 읽을 수 있게끔 해주는 책이다. 가족 돌봄의 굴레 속에서 홀로 고통받는 개인의 이야기는 이제 사회 전체가 마주해야만 하는 공통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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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방에서 만난 사람

2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이름은 영자씨. 
청춘 시절 그녀를 맞선 상대로 소개받기로 한 뒤, 남자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쓴 소설가의 신작을 찾아 읽었다. 책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그 책을 완독하지 못했고, 지금은 떠나 버린 아내를 그리며 그가 그토록 다시 찾아 읽고 싶어했던 책의 구절은...

'아내를 보내고서야 책을 완독한 사연' 전체 글 보기 >>

선거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20대 남자’가 화제네요. 아마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오세훈 당선자의 주력 지지층이 20대 남자라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와서인 모양입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자의 72.5%가 오 당선자, 22.2%가 박영선 후보를 선택했다죠?
 
<20대 남자>는 3년 전인 2019년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시사IN> 연재기사 제목이기도 합니다. 워낙 사회적 반향이 컸던지라 나중에 동명의 단행본으로도 묶여 나왔죠. 이 기사를 썼던 천관율 기자가 이른바 ‘20대 남자 현상’에 관심을 가진 계기도 문재인정부 초반 20대 남녀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지율 격차 때문이었습니다. 세대간 정치 성향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죠. 나이든 층은 보수, 젊은 층은 진보를 선호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같은 세대 내에서 성별에 따라 지지율이 뚜렷하게 갈린다? 이건 사실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었기에 그 원인을 파고들었던 것이죠.

20대 내에서의 성별 엇박자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압도적으로 오 당선자를 지지한 20대 남자와 달리 20대 여자는 소폭이나마 박영선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높았으니까요(오세훈 40.9% 대 박영선 44.2%).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떠돈다는 게시글(‘20대 남자들이 오세훈에게 몰표 준 결정적 이유’)을 보니 20대 남자 표심에 영향을 준 결정적 사건으로 조국 딸 사태, 집값 폭등, 남녀 차별, 성추행 사건 등을 꼽았더군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건 20대 여자들도 똑같이 분노할 사건들입니다. 남녀 차별이나 성추행 사건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 이 문제로 20대 남자들이 왜 더 강하게 반발하는 걸까요? 이들이 쓴 분석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남녀 차별:정부나 서울시의 대부분 청년지원 정책이 여성만을 위한 정책들이 많았음. 남자로서 참아야 한다고 말 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기 시작함” “성추행:페미를 지지한 정당과 사람들이 많이 성추행 파문으로 날아감. 그런데 범죄를 저지른 건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인사들인데 정작 욕은 평범한 남자들에게 함.”

이쯤에서 다시 3년 전 나온 책의 부제를 돌아보게 됩니다. <20대 남성-‘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 독특한 자의식으로 무장한 이 세대 남성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정치적 선택은 앞으로의 한국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게 될까요? 20대 남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공동체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음을 다시금 예감하는 오늘입니다.

 
"매주 <주말에 뭐 읽지>를 기다립니다"
"책을 잘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책은 읽고 싶은 저에게 좋은 책 추천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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