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감독 신수원)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11 〈오마주
6월 15일 오늘의 큐 💡   
Q. 오마주...가 그래서 뭔데? 🕰️
님, 다소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해하게 되는 말들이 있지 않나요? 저는 사실 그냥 느낌으로 익힌 단어들이 쫌 있는데요. 영화에 관한 용어들 중엔 미쟝센, 클리셰, 오마주... 얼추 알지만 설명하려면 '음, 기다려봐🤔' 상태가 되곤 합니다.
오마주는 특히 오해를 많이 사는 용어인데요. "표절이야, 오마주야?" 이런 식으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단어의 원형은 hommage, 프랑스어입니다. 단어 자체가 '존경, 경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오마주'했다고 할 때엔 다른 작품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한 부분을 가져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해요. (88년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오토바이 장면은 그 구도와 액션이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오마주되었어요🛵 한번 보실래요?)
그렇다면 오늘 소개할 <오마주>는 영화를 오마주하는 영화?! 꼭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스케일 큰 상업영화라기보단 독립/예술영화에 가까운 작품들을 만들어온 40대 여성 감독 지완(이정은). 세 번째 작품을 극장에 걸게 되었지만 마치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는 듯 세상은 흘러갑니다(feat. 갑자기 울게되는 독립영화관😭) 생계유지가 시급한 지완 앞에 60년대에 활동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를 복원하는 아르바이트가 들어옵니다🎞️
실제로 <여판사>는 유실된 채 존재만 알려져 있다가 2015년 극적으로 발굴, 복원되었습니다. <오마주> 속 지완에게 이 영화를 만든 신수원 감독의 존재가 겹쳐지기도 하고, 영화의 줄거리에 실제 홍은원 감독의 삶을 비추어보게 됩니다. 60여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오묘한 오마주. 영화의 제목은 어떤 기술적 용어라기보단, 본래의 의미인 존경과 헌사로서 다가옵니다💌

오늘은 <오마주>를 통해 1세대 여성감독인 박남옥, 홍은원 감독의 이야기와 함께 <동주>를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지나간 시간을 따라 남기는 것. 단순히 좋은 것을 따라한다기 보단, 그 작품이 남긴 상징을 가져가고픈 마음이 느껴집니다. 모든 사람은 과거의 것을 양분으로 받아 자라나잖아요. 그 중 몇 개는 우리의 줄기에 자리잡을 테고요. 앞으로 우린 어떤 것들을 오마주하게 될까요?🧩

나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오마주


엄마 영화는 재미가 너무 없어.”, “영화를 그 정도 했는데 안 되면 이제 그만 해.”

영화 감독 ‘지완(이정은)’에게는 두 명의 팬이 있다. 영화를 끝까지 관람하지도 않은 채 혹평을 하는 이들은 다름아닌 아들과 남편이다. 내 엄마, 내 아내의 작품과 꿈은 무용하다는 말에 지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지완은 세 번째 연출작의 종영을 앞둔 중년 여성 감독이다. 20만 관객이 목표라던 포부와 달리 극장에서는 5명의 관객도 채 찾아볼 수 없다. 저조한 관객수, 바닥난 수익금. 늘 함께 영화를 할 것만 같았던 PD마저 영화계를 떠난다. 텅 빈 사무실 구석에서 짐을 정리하던 차, 우연히 걸려온 전화로 지완은 새로운 일을 맡는다.

한국 영화 사상 두 번째 여성 감독인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 작품의 필름 복원을 하는 아르바이트. 의미있지만 보수가 적은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영화의 대본을 구하지만 필름에 사라진 장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지완의 시네마 여행이 시작된다. 왠지 모르게 지완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 홍은원 감독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하이힐 소리가 들린다거나 챙모자를 쓴 여자의 그림자가 보이면서 지완과 〈여판사〉의 관계는 점차 필연이 된다.

잃어버렸던 필름을 되찾은 장소는 폐관을 한 달 앞둔 오래된 극장이었다. 전기가 끊긴 탓에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쏟아지는 빛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 극장을 찾는 손님들이라곤 야사를 보는 중년층이 전부인 곳. 영화의 쓸모를 한정짓는 곳. 빛과 어둠이 현실과 영화에 점철되어 한 곳으로 나타난다. 지완은 극장 한가운데 서서 천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햇빛에 투영된 필름은 수십년이 지난 후 상영되는 또다른 영화였다. (...) 한 줄씩 조각난 채 모자에 둘러진 필름은 지완의 손으로 세상에 공개된다. 

가려졌던 〈여판사〉가 수면 위로 올라오듯, 복원 작업을 하던 지완에게도 큰 일이 닥친다. (...) 〈여판사〉라는 세 번째 작품을 내고 자취를 감춘 감독과 지완의 상황은 닮아 있었다.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는 남편, 응원해주지 않는 아들, 게다가 자궁을 적출해야 되는 수술까지. 지완에게 영화는 그리고 꿈은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야 되는 문제로 전락한다. 의미 있고 돈도 많이 주는 일은 없냐며 묻던 지완의 머쓱한 웃음이 생각난다. 그에게 해답을 준 건 당시 영화의 꿈을 펼쳤던 여성 영화인들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편집 기사 ‘옥희(이주실)’와 필름을 복원하면서 둘은 연대감을 나눈다. 굳이 대사로 표현하지 않아도 와닿는 응원, 연대, 지지 사이 그 무언가였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적이 있다. 찾고 보니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들을. 사라진 필름을 찾아 과거를 거슬러 가는 여행은 지완을,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의 쓸모와 나의 꿈을. 그제서야 영화의 제목이 다시 생각났다.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오마주. 영화 〈오마주〉는 과거 국내 최초 여성 영화인들과 현재 영화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영화인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의 뒤를 이을 영화인들에게 헌사를 보낸다.



인디즈 이현지

<오마주> 감독 신수원|드라마|108분|12세이상관람가

"끝까지 살아남아"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는 아들과 늘상 밥타령인 남편, 잇따른 흥행 실패로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영화감독 지완. 
아르바이트 삼아 60년대에 활동한 한국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 감독의 작품 <여판사>의 필름을 복원하게 된다. 
사라진 필름을 찾아 홍감독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던 지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 쓴 여성의 그림자와 함께 그 시간 속을 여행하게 되는데... 
어쩐지, 희미해진 꿈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여판사> 감독 홍은원|드라마|1962년

진숙은 여판사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열등감을 느끼는 남편과도 점점 멀어지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역시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진숙은 한 가정의 아내와 며느리로서 의무를 다하는 한편 판사라는 직책에도 충실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시할머니의 죽음이 살인이라 밝혀지고 시어머니가 범인 혐의를 받게 되자 진숙은 그녀의 무죄판결을 위해 변론을 맡는다. <여판사>는 당시 세상의 관심을 받았던 여판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착안하여 제작된 영화이다.
당신으로부터 나에게 🕰️

과거를 헤매는 사람과 태도

〈동주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은 지금에 어떤 의미를 줄까. 영화 <오마주>는 과거를 짚어내고 탐험하면서 오늘의 것을 다시 본다. “과거가 없는 듯”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계승과 창조를 반대로 두고 지금의 좌절이 최초인 듯 생각한다. <오마주>는 이러한 가쁜 마음에, 정체하는 듯 버거운 마음에 ‘나’와 특정 시간들을 연결해낸다. 영화 <동주>도 시대 정신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에 집중하게 하며 의미를 전달한다. 강하늘(‘동주’ 역)의 내면적인 치열함은, 지금의 고민과 고집 그리고 각자만의 신념에 와 닿는다.

 

인디즈 염정인

<동주> 감독 이준익|드라마|110분|12세이상관람가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 시대.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암흑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오마주의 조각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어릴 적부터 미술과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영화의 근처에서 살면서 편집기사, 스크립터 생활을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잠시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했는지 기록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등 영화의 곁으로 돌아왔고, 영화 <미망인>을 발표하면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기록됩니다. 당시 갓난아이를 업고 촬영장을 종횡무진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한데요. 예상하는대로 당시 박남옥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고초가 정말 많았다고 해요. <미망인>은 박남옥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여판사>의 감독, 홍은원
최인규 감독의 스크립터로 영화 연출에 발을 들였어요. 이후 대여섯 작품에 스크립터, 조감독으로 일하며 영화 현장에서의 작업을 이어갔고 곧 각본가로도 활약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당시 세간을 들썩이게 한 사건을 만났고, 감독까지 맡아 영화를 만들게 되었어요. 이 작품이 바로 <여판사>랍니다. 이후 <홀어머니>와 <오해가 남긴 것>까지 총 세 작품을 연출했어요. 그 뒤로는 오늘의 영화 <오마주>에서도 언뜻 알 수 있듯 연출의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음악단에서 가수 생활도 하고 작사가로도 활동하는 등 음악계에서도 활약했다고 해요. 
이런 기사들도 추천해요!  
올해의 전주영화제에서는 신수원 감독의 전작인 <여자만세>와 복원된 <여판사>를 함께 보는 아름다운 자리가 마련되었어요🥺🥺 상영을 마친 뒤엔 신수원 감독과 부지영, 윤가은 감독과 이다혜 기자의 대담을 진행했는데요. 그날의 기록을 소개해드릴게요.
"홍 감독님은 세 번째 작품을 내놓은 이후 영화를 찍지 못했다. <여판사>는 당시 20만 명의 관객이 들 정도로 흥행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홍 감독님의 활동은 단절되고 필름도 사라졌다. 이러한 사례는 어떤 두려움을 갖게 했다. 그때 막연히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심적으로 지쳤을 때 홍은원 감독이 떠올랐다. <여판사> 필름이 발견됐다는 것 역시 힘이 됐다."  

2018년, 한국영상자료원 내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아름다운 생존'은 박남옥, 홍은원을 비롯한 여섯 명의 한국 여성감독의 역사를 다루었어요. 전시와 함께 기획된 씨네21의 여덟 편의 연속 기사입니다.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여판사', 1962X2016'이라는 특별 섹션이 마련됐답니다. <여판사>의 주인공 허진숙의 변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대본을 통해 한예리 배우가 일인극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당시 행사를 기록한 경향신문의 기사를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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