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홍을 소개합니다.
 
  교사들에게는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졸업생들의 소식만큼 반가운 것도 없습니다. 새해를 맞아 자랑스러운 여명학교 졸업생 한 명과 온라인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국내 한돈산업을 선도해 온 다비육종에서 현재 분만사 파트장(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10(2014) 졸업생 홍○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작년에 최우수 사원으로 뽑혔다고 들었는데, 먼저 축하를 전한다.

  생각하지 못한 결과에 감사할 따름이다. 탈북민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게으르고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다. 입사 1년 차에 파트장을 맡게 되었는데 주변의 우려가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컸다. 사수였던 과장님이 직접 사장님을 설득하는 등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를 신뢰해주는 상사의 지지를 받으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요즘 취업이 정말 어려운데 취업의 비결이 궁금하다.

  다비육종 회장님께서 탈북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워낙 많으시고, 나뿐만 아니라 축산에 많은 관심이 있는 사람은 취직시켜 주고자 하셨기에 사실 입사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취업보다 어려운 것은 취업 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맡은 업무를 잘 감당하는 것이었다. 내가 탈북민인 것을 모든 직원이 다 알았고, 어떤 직원은 나를 대놓고 시기질투했지만 나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그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려고 노력했다. 기독교인으로서 함부로 살고 싶지 않아서 직원들과 함께하는 유흥의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처음에는 그런 나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를 롤(Role)모델로 생각하는 후임도 생겼다. 일터에서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분만사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분만사에서는 주로 가축이 새끼를 건강하게 잘 낳도록 돌보고, 분만을 도우며 태어난 새끼를 일정 기간 동안 돌보는 일을 한다. 앞으로는 분만뿐만 아니라 인공수정 과정까지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나의 업무적 목표다.
북한에서부터 신앙을 가졌다고 들었다.

  집안 대대로 전해져 온 성경이 있었고 그 외에도 지퍼달린 성경도 있었는데, 한국에 계신 고모할머니가 중국에 있는 선교사와 밀수꾼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일제시대에 남한이 고향이셨던 고조할아버지께서 중국 간도와 러시아 연해주에 사시면서 신앙을 갖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우리 집안의 5대째 기독교인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종이에 적어주며 외우라고 하면서 처음 성경을 접하게 되었다. 성경의 문체와 내용이 익숙하지 않아 거부감이 들었지만, 엄격한 아버지가 두려워 십계명과 다른 성경 구절들까지 암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암기한 구절 중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가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버지는 가택 수색의 위험을 피하고자 성경 구절을 암기하고, 필사한 후 소각하기를 반복하셨다. 필사한 내용들을 친척들이 서로 교환하여 보기도 했다. 북한식 신앙의 교제였다. 하루는 신앙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나를 아버지가 캄캄한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플래시로 축구공을 비추면서 태양이 없으면 지구가 캄캄해지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으면 우리 영혼도 어둠 속에 있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들을 보여주면서 하나님께는 우리가 이 개미들과 같은 미물에 불과하니, 개미 같은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절대자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앙이 확고해진 계기는 갖고 있던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걸 경험한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때부터이다. 마침 그때 아버지가 일하던 군부대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가게 되면서 가정 경제가 어려워졌고, 처음으로 배고픔을 겪었다. 군인 가족이기에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내가 처음 겪는 어려움과 사회 혼란을 보면서 나는 북한 사회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절대자의 존재에 의지하였다. 당시 선교사를 통해 얻은 새신자를 위한 기도 5단계라는 얇은 책자가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국경 지역에 갔다가 친척의 권유로 2011년에 한국에까지 오게 되었다
여명학교는 본인에게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에 와서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공부를 권하시면서 기독교 가치관으로 가르치는 여명학교를 추천하셨다. 나는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왔기에 1년만 공부하면서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바로 졸업할 수도 있었지만, 여명학교가 좋아서 1년을 더 공부했다. 덕분에 나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잘 찾게 된 것 같다.
입학 후 첫 주 역사 수업 시간에 채○성 선생님의 첫 한 마디를 지금껏 잊지 못한다. “나중에 남북의 격변의 시대가 되면 여러분은 원치 않더라도 역사에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고, 역사에 기록될 사람들이다라는 그 한마디는 큰 감동이 되어 일기장에 기록해 놓고 지금껏 마음에 새기고 살고 있다. 나는 작은 존재이지만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남북한의 역사에 점이라도 찍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다잡게 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 것 같다
여명학교 졸업 후 직접 경험한 한국 사회는 어떠했는가?

  천안에 있는 연암대학에서 축산을 공부했고, 졸업 후 4년제 대학교에 편입하여 축산을 더 공부했다. 대학 생활 중에 북한과 탈북민에 대한 편견에 직접적으로 부딪힌 경험이 있다. 한번은 수업 중에 동물의 신체 구조를 배우는데, 내장을 설명하던 교수님이 갑자기 나를 호명하며 너는 북한 순대가 맛있어? 남한 순대가 맛있어?”라고 물었다. “저는 북한 순대가 더 맛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대뜸 그럼 가!라고 했다. “어딜 가라는 건지요?”라고 반문하니 북한 순대가 더 맛있다며, 왜 남한에 왔어? 북한 가!라고 했다. “그건 제 입맛인데요라고 해명했지만 마음은 몹시 상했다. 그 교수님은 장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적잖은 상처였다. 대자보를 붙여서라도 싸우고 싶었으나 탈북민 후배들이 이 학교에 올 수도 있으므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감사한 기억이 더 많다. 몇 년 전부터 감사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여명학교가 그 중 첫 번째여서 건축후원을 조금 했다. 또 얼마 전에는 대학생 때 장학금을 받은 일가재단에도 후원을 했다.(일가재단에서는 장학생으로는 홍○이 첫 후원자라고 함) 나는 받은 것이 많아서 앞으로 줄 수 있는 삶을 살게 되기를 희망한다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올 3월에 결혼한다. 대학생 시절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많은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한 팀에서 만났던 친구와 결혼한다. 좋은 일들이 있어도 북한에 있는 부모님께 들려드리지 못하고,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드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가끔 마음을 허전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이다. 우리 가정이 평화롭게 부모님께 인사드릴 그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여명학교 선생님들이 기억하는 홍○성실하고 열정이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특히 역사를 가르치셨던 채○성 선생님께서는 홍○은 각 잡힌 북한 군인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아서 일상에서는 늘 성실하고, 마음이 선하고 생각이 열려 있는 학생이었다
홍○은 일상에서 리더십을 잘 발휘했는데 반장이 아니어도 학생들을 잘 챙겼고, 학습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학생들과 교사의 중간에서 훌륭한 역할들을 했다. 예를 들면 본인이 바보스러움을 자처하면서 학생들의 주의를 끌어 수업에 집중하도록 해줄 때도 있었고, 때론 친구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어 교사에게 이해심을 심어준 적도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대학 선택 과정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보다 실리를 따지는 지혜도 갖춘 것 같았다. 소위 좋아 보이는 것보다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하려고 자신의 진로를 꾸준히 탐색하는 학생이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졸업생들의 좋은 소식을 또 전해드리겠습니다
2022년 여명학교 중고 통합과정 신설 

  지난 17년 동안 고등 단일 과정으로 운영하다가, 한국어가 서툰 북한이탈주민의 자녀들의 
입국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어 습득과 적응을 위한 중등과정도 인가를 받았습니다

모집인원 : 중등과정-30명 / 고등과정-46명 

  본교 통합과정은 학생 맞춤형 특성화 교육으로 학생들을 실력 있고 겸손한 인재로 성장하도록 도울것입니다북한이탈주민들의 많은 관심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2022년 1월 여명기도회

여명기도회는 코로나19가 종식 될 때까지 각자의 처소에서 기도해 주시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기도제목은 여명학교 홈페이지(www.ymschool.org) 후원안내>기도후원>기도제목을 참조해 주십시오. 
여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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