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종 보전 연구가 동물원의 존속 이유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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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28. 오후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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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에 대해 묻다] 철책을 숨겨도, 아무리 넓어도 감옥
경남 김해의 한 동물원 내 호랑이가 실내에서 전시되고 있다.


열린 사육장 문을 나온 지 네 시간 만에 사살된 퓨마의 죽음을 온 나라가 애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물원 관련 청원이 수십 개 올라왔다. 사람이 구경하기 위해 야생동물을 감금하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에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큰 변화다. 동물원에서 바다코끼리를 도구로 구타하는 학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폐업한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아사하기 직전의 상태로 구조되었을 때도 들리지 않던 목소리다. 최근에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철책을 숨겨도, 아무리 넓어도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동물을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서 야생동물을 수집해 관상용으로 사육하던 유럽 제국주의의 산물인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가 변하면서 점점 진화해 왔다. 해외에서는 1900년대부터 동물을 전시장에 가두고 물건처럼 구경하는 형태가 점점 사라지고, 최대한 자연 서식지 환경을 재현하는 기법이 도입되었다. 호주의 ‘태즈매니아 데빌 언주’는 동물원의 역발상으로, 울타리 안에 동물을 전시하는 대신에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동식물을 관찰한다. 동물원의 미래적 대안이다.

기후 변화와 인구증가로 인해 서식지가 감소하고 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면서 현대 동물원의 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동물원수족관협회는 회원사의 의무사항으로 동물원 안에서 멸종위기종을 번식시키는 것뿐 아니라 서식지에서의 보전 활동도 명시하고 있다. 멸종위기종 동물을 동물원에서 번식시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역할도 한다. 황금사자타마린, 캘리포니아 콘도르 등이 야생에서 멸종위기에 처했다가 동물원의 노력으로 개체 수를 회복한 동물들이다.

경남 김해의 한 동물원 좁은 콘크리트 위에서 사육되는 사자 한 마리가 무료하게 앉아 있다.


전세계적으로 동물원이 진화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체험형 동물원, 동물카페 등 기형적인 동물전시시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지만 동물원수족관법이 허술해 제대로 규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동물원의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예산 투자는 충분하지 않다.

동물원 존폐에 대한 논의 이전에 ‘동물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동물원의 존속 이유가 멸종위기종 보전과 연구라면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반대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동물원은 존재할 필요가 없으니 사라져야 할 것이다. 종별로 생태적 습성에 맞게 제공해야 할 환경과 관리 기준도 정해야 한다. 동물을 만지게 하는 체험동물원, 흙 한줌 없이 맹수를 유리장 안에 전시하는 실내동물원, 동물쇼를 하는 시설, 동물을 데리고 다니면서 전시하는 이동동물원은 법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 백화점처럼 가능한 한 많은 종의 동물을 수집하고 태어나게 하는 대신, 우리나라와 서식지 환경이 너무 다른 동물이나 코끼리, 돌고래처럼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것이 부적합한 동물은 사육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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