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딜리버리 vol.3
내 몸의 코드를 다시 짠다면?
 2023. 6. 2. 

세상 모든 것에는 소스 코드source code가 있습니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용어로 프로그램의 구조를 보여주는 설계도를 뜻하는데요. 미디어 이론가 유진 새커Eugene Thacker는 무엇이든 소스 코드를 갖고 있기에 정보로 변환 가능하고, 몸 역시 이러한 지점에서 정보를 매개하는 바이오미디어biomedia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코드로 이뤄져 있을까요? 인간이나 동·식물 같은 생명체는 고유한 유전 정보가 담긴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DNA는 유전자 형질을 구성하는 네 종류의 염기들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열거된 코드인데요. 인간의 경우 약 2만 개 이상의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니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저는 반년 전, 한 자산관리 애플리케이션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DNA 분석 검사를 받았습니다. 나의 구조를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요. 검사 결과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단맛 민감도 유전자'에 대한 사실이었습니다. 마카롱을 딱 한 입밖에 못 먹을 만큼 남들보다 단맛에 약한 제 취향이 사실 유전자 배치와 관련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명체의 소스 코드는 DNA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 염기서열이 동일함에도 성격이나 특기뿐 아니라 체질, 질병 유무마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사용하고 마주하느냐에 따라, 즉 환경적·사회적 요인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복잡한 유전자 변형을 거치지 않아도 재코드화되어 변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04년 미디어 이론가 루시애나 패리지Luciana Parisi는 1990년대 유행처럼 등장한 사이버 섹스, 체외 수정(비접촉 섹스), 생명 복제 기술 등이 육체적 섹스나 생명 번식에서의 해방뿐 아니라 자연과 육체에 대한 지배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가부장적 낡은 이분법을 재소환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그는 확장된 성이라는 의미로 '추상적 성'을 제안했습니다. 


'추상적 성'은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미생물의 공생적 섹스, 처녀 생식 섹스 등 이미 자연에서 존재하던 다양한 생식법이나 기술 발달로 가능해진 바이오디지털 섹스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특히 패리지는 미시 세포 차원에서부터 존재해 온 박테리아의 공생적 섹스가 남녀 이분법을 전제하지 않고, 정보 전달의 전염과 복제를 기반으로 한 자연 현상임과 동시에 돌연변이를 출현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언급합니다. 추상적 성은 혈연으로 이뤄진 계통발생적 진화가 아닌 이질적 개체들의 접합, 결연alliance적 돌연변이 발생의 진화, 수많은 성과 생식 방식으로 분화되는 진화를 가능케 하는 확장된 시각입니다.

유기 생명체와 테크네technē의 얽힘 속에서 신체를 미디어로 활용하는 작업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유전 정보부터 신체의 작은 부위까지 다루며 몸의 경계와 변신 가능성에 대해 질문합니다. 

구광이Kuang-Yi Ku, <Atlas of Queer Anatomy>(2022)


대만과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구광이는 치과 의사이자 시각 예술가입니다. 성소수자 정체성으로 몸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을 해온 그는 해부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인체해부학 도감Atlas of Human Anatomy』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시도를 했습니다. 『인체해부학 도감』은 1957년에 발간된 이래로 여전히 해부학 교과서로 많이 쓰이는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 등장하는 깨끗하고 명확한 신체를 의심하며 고정적인 경계를 해체하고자 합니다. 고전적인 해부학이 무시해 온 박테리아와 공생에 초점을 맞춰 신체를 다시 정의한 것인데요. 우리 몸에 있는 박테리아를 간과 심장 등의 장기와 같은 크기로 확대하거나 새롭게 그리는 워크숍을 진행했고 성병과 피부 감염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 핸리 드 브리스Henry de Vries와 협업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Atlas of Queer Anatomy>는 기존의 해부학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는 신체를 "경계가 아니라 스펙트럼"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예술계뿐만 아니라 의학 시스템 내외부에서 해부학에 대한 포용성과 다양성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헤더 듀이 해그보그Heather Dewey-Hagborg, <하이브리드: 이종의 오페라Hybrid: an Interspecies Opera>(2022)


길거리에서 수집한 담배꽁초, 껌에 남아있는 DNA로 타인의 얼굴을 재현하는 등 유전적 감시와 생물정치학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해온 헤더 듀이 해그보그가 인간과 동물의 유전 결합에 대한 주제로 신작을 공개했습니다. <하이브리드: 이종의 오페라>는 돼지와 인간에 대한 다층적인 의미를 파헤치는 5부작 다큐멘터리입니다. 돼지는 인간과 장기의 크기가 가장 유사하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장기 이식 동물의 후보로 꼽혀왔습니다. 2022년 1월, 최초로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했지만, 돼지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약 두 달 후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해그보그는 인간과 돼지가 얽혀있는 오랜 역사를 탐구합니다. 돼지 뼈 화석, 돼지를 숭배하는 고대 유물 그리고 실험실에서의 유전자 조작까지 다루며 야생 돼지가 어떻게 가축이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해 장기까지 제공하게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중심주의와 유전자 조작에 대한 문제들을 고찰합니다.

안나 마리아 고메스 로페스Ana María Gómez López, <푼크툼Punctum>(2017-)


라틴어로 '찌르다'라는 뜻의 '푼크툼'은 의학 용어로는 눈물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안나 마리아는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바늘로 몸을 찔러 혈액을 외부에서 순환하게 하는 작업부터 눈물점에 식물을 발아하는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층위로 작업을 확장해왔습니다. 자가 실험인 <푼크툼>은 신체 내부에 있는 혈관을 밖으로 드러내면서 인공 물질인 바늘, 밸브, 플라스틱 라인이 함께 연결된 모습을 연출합니다. 작가는 기구를 통해 혈액이 다시 몸으로 통과하는 모습을 통해 몸의 취약함과 일시성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자기 눈에 직접 베고니아 꽃의 씨앗을 심어 눈물점에서 식물이 발아할 수 있는지 실험한 작업 <접종Inoculation>(2013-)에서는 씨앗이 가지는 정보 압축적이고 또 혼성적인 성질 그리고 그 씨앗이 발아하기를 기다리는 과정 안에서 신체로서 수행해야 하는 상호적인 행동에 대해 고찰했습니다. 그는 주삿바늘이 만들어 낸 구멍과 눈물점처럼 미약하고 작은 부분 역시 창조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주다은, <Silent Oscillation>(2022)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감각적 차원으로 불러오는 데 집중해 온 주다은은 DNA를 암호화된 문자열이자 악보score처럼 바라봅니다. <Silent Oscillation>은 특정 멸종 식물이 남긴 염기서열을 소리로 치환하고, 여기에 새로운 외피를 부여한 사운드 설치 작품입니다. 소리 조각 속에 들어있는 초소형 컴퓨터는 내장된 사운드 생성 알고리듬을 활용해, 유전 정보에 기반한 멜로디를 무한하게 매 순간 재생해 냅니다. 3차원의 공간을 비장하게 울리는 <Silent Oscillation>의 소리는 마치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멸종식물을 '지금, 여기'로 재소환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매번 다른 방식으로 유전 정보를 읽어내 끊임없이 변주하는 소리를 재생하도록 설계된 사운드 생성 알고리듬의 이면에는 작가의 프로그래밍 행위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만, 작가 역시 프로그램 이식이 끝나고 장치가 작동하는 동안에는 더 이상 그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멸종 식물과 작가, 사운드 생성 알고리듬 기술의 마주침 끝에 새로운 존재가 된 소리 조각들은 멸종된 식물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부재'를 감각하게 합니다. 

루시 스트레커&클라우스 스파이스Lucie Strecker & Klaus Spiess, <Microbial Keywording>(2018-2020)


퍼포먼스와 다학제 예술 활동을 해온 작가 루시 스트레커와 비엔나 의과대학 부교수이자 의학 인류학자 클라우스 스파이스는 말하는 사람의 입에 있는 미생물과 언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라이브 퍼포먼스 <Microbial Keywording>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말의 가장 작은 단위인 음소를 반복적으로 발음했을 때 생성되는 타액을 채취하고 산성도를 측정하면서 입 속의 미세한 환경 변화를 기록해 데이터화합니다. 이후 퍼포먼스를 위해 개발한 생물반응장치**에 채취한 미생물을 놓습니다. 청중이 주변에서 특정 음소를 반복해서 외치면 생물반응장치의 유체 펌프가 발화 속도, 볼륨, 주파수 등을 기록한 음성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과 상호작용하며, 미생물에 특정 페로몬을 주입합니다. 이를 통해 미생물의 생식 과정에서 음소에 대한 정보 기억이 복제되는지 살펴봅니다. 두 사람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언어가 상징적인 기호 체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물질성을 가지며, 발화되는 과정에서 구강 내 미생물과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눈물점: 아래위 눈꺼풀에 있는 눈물길의 입구가 되는 부분으로 지름이 약 0.3mm인 작은 구멍이다.

** 생물반응장치: 바이오리액터bioreactor라고도 하며,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도구다.
 읽기 자료 👀 

① Eugene Thacker, Biomedia,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4.

Luciana Parisi, Abstract Sex: Philosophy, Bio-technology, and the Mutations of Desire, Continuum, 2004.

③ Patricia T. Clough, "The Affective Turn: Political Economy, Biomedia and Bodies", Theory, Culture & Society, v.25, n.1. (2008), 1-22.

④ Klaus Spiess, Lucie Strecker, "Microbial Keywording: Towards material speech acts", Performance Research, v25, n.3. (2020), 56-62.


 이미지 출처 👀 
① Kuang-Yi Ku, Atlas of Queer Anatomy, 2022 (링크)
② Heather Dewey-hagborg, Hybrid: an Interspecies Opera, 2022 (링크)
③ Ana María Gómez López, Punctum v.4., 2017- (링크)
④ 주다은, Silent Oscillation, 2022, (링크)
⑤ Lucie Strecker & Klaus Spiess, Microbial Keywording, 2020,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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