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자 오막에게, 오막아, 그대의 가족이 루니에게 얼마나 잘해주면, 사람 나이로 90대인 루니의 빵댕이가
 
20_빵댕이, 그리고 근원적 '옴'.
한아임 to 오막
2023년 5월
 
4인자 오막에게,

오막아, 그대의 가족이 루니에게 얼마나 잘해주면, 사람 나이로 90대인 루니의 빵댕이가 그렇게나 귀여울 수 있는 건지, 참말로 나로서는 상상을 할 수가 없구나. 사람하고 17년을 함께하기도 어려운데, 동물과 17년을 함께하다니, 보송보송한 마음이 드는구나.

그리고 <코다>를 봐야겠구나!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 류이치 사카모토 님이 음악을 넘어서 소리 전반에 관심을 두신 분인지 몰랐다. 그대가 링크해 준 트랙들을 들어봤다. 앰비언트 음악은 내가 평소에 너무 좋아하는 장르다. 그것이 명상에 최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Long Whale Song - SymphoCat
얼마 전에 유튜브의 추천 피드에 너무나 자극적이고 쓰잘데기 없는 영상들이 올라오는 게 빡이 쳐서, 그런 영상들에 대해 모조리 다 “Do not recommend channel”을 누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런 영상이 연관될 만한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쇼츠 몇 개를 보는 가운데 관련 쇼츠가 뜨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나의 추측으로는, 내가 얼마 전에 “사람은 왜 사나?” 이런 비슷한 키워드로 검색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나름 도움이 되는 영상도 많았지만, 몇 개는 참 얕을 뿐만 아니라 진부해서, 빡이 친 적이 있었다. 그런 영상하고 엮여서 추천에 자꾸 빡빡빡치는 영상이 뜬 건지!!!)

아무튼 그렇게 수많은 채널에 “비키셈”을 누르고 나자, 플랫폼 전체를 통틀어 음악 영상이 제일 잘나가는 종류의 영상인 유튜브 씨는 내게 거의 음악만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위의 곡이었다. 20분에 가까운 긴 버전이라 명상에 매우 유용하다.

아예 명상하라고 이렇게 길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주는 채널도 있고:
Calmness - Ethereal Fantasy Meditative Ambient - Beautiful Ambient Music for Relaxation and Sleep - Eternal Depth
앰비언트 음악은 듣다 보면 곡과 곡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도 하고, 곡 내에서도 변화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내가 꼭 음악에 집중을 하지 않더라도 파동의 변화에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머리가 시원해진다.

무엇보다, 앰비언트 음악으로 추천 피드를 채우면 화날 일이 없어진다. 물론, 뭐, 유튜브 추천 피드야말로 내가 쌓은 카르마의 결과이니, 그걸 갖고 화내는 나의 심신을 수련하는 게 더 현명한 길이겠다만은, 도닦기를 시작도 하지 않은 중생으로서는 일단 화나는 영상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음악 위주로 들으며, 추천 피드를 완전히 새로운 추천물로 채우는 게 가장 정신건강에 좋은 전략이라고 여겨졌다. 추천 피드를 보면 사람을 안다고 하지 않니? 그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환골탈태 중이다. 나의 추천 피드는 이제 딴사람의 것이거든.
혹시 오막이, 혹은 다른 고막사람들이 명상에 관심이 있다면, 김주환 교수님의 채널에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이 채널은 특히 이롭다.

이분은 개인적으로는 크리스천이신데, 범종교적인 명상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신다. 그것도 그렇고, 학술과 현장, 믿음과 과학, 초보자와 고수들이 두루 유용하게 여길 만한 강의도 하신다. 이러한 강의들에는 명상에 대한 내용만 포함되는 게 아니라, 몸 전반, 마음 전반, 역사, 심리, 심지어 물리 등등과 관련된 내용들이 나온다. 그야말로, 잡학다식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참으로 흥미로운 채널이란 얘기다.

그리고 명상에 대한 채널이다 보니, 영상에 종소리라든지, binaural beats가 들어갔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우우우웅하는 소리를 말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격관 명상 - 호흡훈련 - 김주환 교수님
영상에 등장하는 강아지 이름이 테리우스인가 보다. ‘테리우스와 함께하는 멍상명상’이라고 영상을 소개하신다. 일단 영상에 물도 나오고, 강아지도 나오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테리우스도 루니만큼 귀여운 것 같다. 유튜브 플랫폼 전체에서 내가 마주한 트렌드를 생각해 보면, 명상 영상은 말 그대로 명상을 위한 영상이니까 대개 ‘영상’이랄 만한 움직임이 없거나 있더라도 굉장히 정적인데, 이 영상의 경우에는 테리우스의 존재만으로도 비주얼이 흥미로워지는구나. 강아지는 고개만 이리저리 흔들어도 예쁘다.

아무튼, 나는 요즘에 하루에 두 시간씩 명상을 한다. 명상을 처음 해본 건 옛날이지만, 뭔가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한 건 최근이다.

처음에는 하루에 30분 정도로 시작했다. 그런데 해보니까 한 타임에 10, 20분은 너무 짧은 것. 그래서 요즘에는 한 타임에 최소 40분으로, 아침저녁으로 한다.

아침저녁 둘 다 하지 않은 날은 차이가 난다. 그냥 기분만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결과에 차이가 난다. 그리고 솔직히, 결과라는 것의 일부가 결국 기분 아닌가? 하루에 억을 벌어도 기부니가 안 좋으면 걍 기부니가 안 좋은 거 아닌가?

그리고 작업 시간이 길어진다고 작업물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그대의 말에 다음의 말이 생각났다. ‘생각은 오래 하는 게 아니라 깊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을 이미 했었나? 워낙 당연한 듯하면서도 신선했던 말이라 이미 그대에게 언급했을지도…) 어디서 처음 들은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대가 하는 말과 통하는 것 같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 생각을 길게 하는 게 아니라 깊게 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뭔가,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근본적으로 나의 존재가 바뀌기에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음.

그런데 위의 명상 영상이나 사찰 소리, 종소리 같은 것을 듣다가, 다른 종류의 무아지경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이런 타악기가 강한 음악이 좋더라. 특히 첫 곡:
Àbáse – Laroyê
‘명상’이란 것은 꼭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만큼 검색을 하면 할수록, 경험자들이 추천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런데 명상의 목적이 (혹은 목적 중 하나가) 마음을 초연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런 음악도 명상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타악기가 아예 없는 몽환도 있지만… 타악기가 강하고 리드미컬해서 몽환적인 것도 있단 말이지.

그리고 명상이라기보다는, 음악이 나를 휘젓고 갔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이런 곡도 좋다:
Jungle Mystery - Nino Nardini 
느린 가운데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찌릿찌릿하다. 제목이 Jungle Mystery인데 진짜 정글이 그려진다. 어떻게 이렇게 분명히 자연의 것이 아닌 소리로 자연을 연상시킨 건지, 신기하다.

아무튼. 초연함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 가면 영영 목적지에 머무를 수 있는 여정이 아니라, 칫솔질이나 설거지처럼 죽을 때까지 매일 해야 하는 업 같다.

그래서 나는 명상 방석도 샀다! 오래 명상하려면 필요하더라. 그대가 이번에 일본에 간다고 하니, 카메라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명상에 이로운 장소나 도구들 역시 탐구해 보기를 강추한다.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명상이 최고이되,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생각을 없애야지’보다는 떠오르는 생각에 오히려 집중하기를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그 생각이 커지다 흩어지는데, 그것이 아주 오묘한 느낌을 준다.

암튼 명상 방석을 일단 사면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명상을 하지 않겠는가? 빵댕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시 빵댕이로 돌아가 보자. ‘외식’ 영상에 나오는 어린 오막… 심히 귀엽구나? 빵댕이를 뽐내네? 기가 막히는군… 내가 뭘 본 건지. 아기가 밥을 먹기도 전부터 뽈록한 배를 뒤로하고 빵댕이를 뽐내는데, 노래가 아련해서 기분이 묘하다.

그건 그렇고, 참, 기록이란 해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는 것 같다. 이 영상도 말이다. 아마도 아버님이 촬영하신 것 같은데, 외식이란 특별한 이벤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다시는 없을 일은 아니잖아. 그런데 이렇게 촬영을 해놓으니 참, 수십 년 후에 다시 보면 이렇게 느낌이 색다르구나. 우리 가족도 아닌데 참 아련했다.

(근데 그리고, 같은 채널에 있는 그대의 다른 영상도 봤음. ㅋㅋㅋ 가끔 인스타에서도 그대의 사진을 보면 왜 비율이 좋은 것 같지, 좀 의아할 때가 있다. 사진을 그대로 올리는 게 맞는가? 사기가 아닌가? 좀 의심이 된다.)
그리고 박지지 님 목소리 좋으신 거 알쥐알쥐. “사랑의 쿵쿵따”는 커버 디자인부터 거기의 글씨체부터 곡 그 자체와 그 안의 내레이션까지 너무나 조화롭다 이 말이다. 가사도 작편곡도 노래도 박지지 님이 하셨다고 뜨는구나. 거기다 라이징스타에 편집까지… 그녀는 르네상스 여인인가… 

그리고 뮤직비디오 메이킹은 안 그래도 인스타에서 보고 너무 웃겨서 계속 봤어. 자막은 누가 다셨니… 편집이 오막이라고 되어 있는데 설마 당신인가? 하여튼 나는 자막 위주로 봤다.

그런데 오막은 어째서 2023년을 찍으면서도 영상미가 아련한 건지? 의도한 것인가? 그는 노스탤지아를 들이쉬고 내쉬는 인간인가? 그의 카메라 무브먼트는 어째서 이렇게 뻘하게 웃긴가? 줌인/아웃 때문인가? 갑작스러운 팬 때문인가? 움직이지 않고 뚫어져라 구경하거나 멍때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이름 모를 피사체들 때문인가?

근데 그리고 이 뮤비… 뭔가 철학적인데…! 내 안에 많은 내가 있고… 나는 그 나를 제3자로서 관찰한다. 심지어 마치 게임을 하듯이 나를 플레이한다. 그러다가 몸은 없고 얼굴만 남기도 하고, 아예 옷만 남기도 하고, 무아지경의 춤도 추고. 이것은 명상의 프로세스인가…
지난번 편지에서 세상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니, 이런 노래가 떠올랐다.
Film Burn - Yppah
이 곡은 내게… 푸르른 환상 왕국을 연상시키는데… 그것이 즐거운 장례식 같다. 장례식이 꼭 슬프란 법은 없다. 어떤 믿음 체계 내에서는 (그것이 종교이든, 영성이든, 철학이든, 과학이든) 인간은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다. 인간을 형성하던 것 중 ‘무언가’는 계속된다. 그래서 오히려 죽지 못하고 과하게 삶을 붙잡고 있는 것이 눈물 흘릴 일이고, 놓고 죽을 수 있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이런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SF의 맥락에서도 그렇고, 현실 세계라 불리는 것의 맥락에서도 그렇고. 사실 SF라고 일컬어지던 것들이 너무나 지금 여기, 롸잇 나우가 되어서, 그 둘을 분리하는 게 언제까지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다.

근데 이 노래 말이야:
Nightcall - Kavinsky
이거 너무 오래되고 오래 사랑받은 노래잖아. 이것이 망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가사라는 이론 알고 있었음…?!

남자 파트가 있고 여자 파트가 있는데, 가사 내용은 이러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고는 ‘네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줄게’라며, ‘어두운 곳으로 데려갈 테지만 겁내지 마’ 등의 말을 해.

여자가 답하기를, ‘사람들이 네 얘기를 해, 그런데 너는 그대로네.’

이게 거의 내용의 전부란 말이지. 난 이걸 듣고 이것이 뭔 말인가 싶었는데, 드넓은 인터넷 세계의 누리꾼들이 말하길, 이 아티스트의 여러 곡들을 연결해 세계관을 형성하면, 남자가 사고로 죽었고 그 사고가 뉴스 같은 데 나온 게 ‘사람들이 네 얘기를 해’에서의 ‘네 얘기’를 뜻한다는 것이야…! 즉, 여자는 죽었다고 알고 있는 남자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남자가 그대로인 것 같아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는 것이지.

앨범 커버부터가 사이버펑크스러운데 죽은 자가 전화를 건다고 하니, 이것은 귀신 이야기인지 미래 이야기인지? 판타지인지 SF인지? 장르의 구분은 어디로 갔는지? 죽으면 우린 어디로 가는지? 가긴 가는지? 별생각이 다 든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노래는 좋고!
음… 내가 명상할 때 늘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건 아니다.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생각할 다른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생각을 할 때 매우 깊게 해서, 길게 하진 않아도 되는 길로 가보자. 생각을 자주 할 순 있는데, 너무 길게 하면 다른 일을 못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그것 때문에 또 더 생각해야 함…! 그것은 악순환이다. 그러니 생각이란 할 때 빡! 하고, 안 할 땐 하지 말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여행을 간다, 5월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던 친구와,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여행하기로 했다. 두.근.두.근.

그럼, 오막 그대는 즐거운 일본 여행이 되기 바란다. 다량의 사진을 기대하겠다. 일본 구경해야지 히히.
-명상의 길로 본격 들어선 중생,
아임이.-
이번 편지를 보낸 한아임은...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발행인
이메일 주소
수신거부 Unsubscribe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