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과 좋은 어른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연결합니다.
항시, 소이프 곁에 있는 것 같은
강산희 빌더님! 私적도 事적도 궁금해요!

“소이프가 일하는 방식이 좋아요

강산희 빌더는 소이프를 많이 애정 합니다.

소이프에 입사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할 정도로 애정을 한없이 표현하는데요.

입사는 못해도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을 듬뿍 담아,

한국콜마 ESG경영팀에서 근무하며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장학금 지원 사업,

디자인 아카데미 사업 등을 지원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 깊게 애정 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강산희 빌더에겐 어떤 마음들이 흐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봤답니다.

Q1. 언제나 마음을 다해 좋아해주는 소이프는 어떻게 알게 됐나요? 특별히 자립준비청년에 관심이 있었던 건지도 궁금합니다. 

소이프는 2020년 YG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할 때 해피빈 소개로 알게 됐어요. 해피빈에서 펀딩 사업을 하고 있고,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때 배우 경수진 님이랑 같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소이프 제안서를 받게 돼서 만나게 됐죠.


보통 그렇게 미팅하게 되면, 사회복지기관이라든지 사회적 기업 대표들이 엄청난 친절함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시거든요. 어쨌든 의도치 않게 기업은 무언가를 제공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받게 되는 입장에서는 더 잘 해주려고 표현하시는데요. 고대현 대표님 되게 무뚝뚝한 거예요.


근데 그게 혼자 무뚝뚝하면 튀는 거 있잖아요. 우리랑 같이 일하기 싫은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작업물의 결과가 별로면, 별로네 이러겠는데 작업물은 또 좋아요. 근데 일은 또 잘하고. 대표님 자체가 그런 사람이고,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이 되게 많고 잘하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보통은 일할 때 다 된다고 하고 막상 나중에 가서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표님은 반대야. 안 될 것 같이 얘기하는데 나중에 될 수 있게 하려고 있어요. 그렇게 맨 처음 프로젝트에서 위너 강승윤이랑 함께 펀딩을 진행했었죠. 펀딩을 하고 나서 소이프가 일하는 방식이 좋아졌고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대상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사업을 해본 건 소이프와 해피빈이 처음이었어요. 사회복지영역 중에 제가 제일 관심 있는 대상이 아동청소년, 청년이었어요. 대안학교라든지 청년, 청소년. 소이프와 펀딩을 하고 나서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Q2. 2020년 이전 회사(YG 엔터테인먼트)에서 소이프와 펀딩도 기획, 추진했고, 현재 한국콜마에서 근무하면서 2년째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장학금과 디자인 교육비를 마련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소이프와 함께 사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특별히 있으셨나요?

한국콜마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소이프의 디자인적인 요소와 자립준비청년, 그리고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세 가지를 엮어서 함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마침 회사에서도 우리 기업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사회공헌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 시기적으로도 적절했고요. 그게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농담처럼 들으시겠지만 소이프에 입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에요.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면서 생긴 버릇인데, 콘텐츠랑 디자인물에 대한 집착이 좀 생겼어요. 소이프에서 일하면 콘텐츠나 디자인물을 배우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회공헌 관련 프로젝트를 했던 기관들과 비교해보면 소이프의 콘텐츠와 디자인은 최고였어요. 한 번도 수정 요청을 한 적이 없었어요. 저는 NGO를 경험했기 때문에 관련된 프로젝트로 일하는 거에 매력을 좀 느끼는 것 같아요. 언제나 프로젝트 퀄리티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소이프에서 운영하는 자립준비청년 커뮤니티 ‘허들링’ 하나에만 집중해서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기업에서는 그렇게 일하지는 못하니까요. 기업은 일을 주고, 수행하게 하고, 이것저것 종합적으로 모두 해야 하는데,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대상에 집중해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늘 있죠. 허들링은 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감정 기복이 좀 있어서 신날 때 막 신나다가 또 애들 좀 몇 번 안 나오고 닦달하다 보면 좌절하고, 마음이 바닥을 치고, 막 죽여 살려 이럴 것 같아서 안 될 것 같아요. 하하. 소이프에서 일한다면,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디자이너 아카데미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위탁 사업하면서 수익률도 높이고 싶고요. 


하지만 현재의 제 역할은 기업에서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을 잘 배분해서 소이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잘 나눠줄 수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기업 담당자로서의 ‘사업 담당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게 제 뜻처럼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시나요? ^^


소이프랑 왜 같이 일을 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다른 비영리단체와 기관, 기업들과 일할 기회들이 많았는데요. 사업 대상자에 대한 진심을 느끼는 게 어려웠어요. 사업 아이템만으로 생각하는 사업적인 태도가 많았고요. 여기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구랑 해도 잘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소이프는 같이 일해보니 진심이더라고요. 진심을 느껴서 계속 같이 일해보고 싶었어요.

Q3. 자립준비청년들 중 많은 친구들이 사회복지를 공부해요. 곁에서 보아온 시설 선생님들 영향도 있고,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생각 때문에 선택하기도 합니다. 세상엔 많은 일들이 있는데요. 사회공헌 관련 업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회복지학과 나오기는 했는데 사회복지적 마인드는 조금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실습 나가면 “모금해 와!” 그래서 하루 이틀 모금을 하면 10만 원 정도가 되요. 이럴 바에 내가 떡볶이 가게 가서 알바하고 그 돈으로 기부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리고 모금이라는 게 상대방이 납득을 해야 내는 건데 납득도 못하는 데 달라고만 하면 누가 주냐고요. 맨날 싸워서 실습 나가면 최하점 받고 그랬어요. 사회복지 전공인데 맨날 성적은 C받고 교수님이 그냥 딴 거 하라고도 하셨거든요. 하하.


제가 다니던 대학은 사회복지과가 생활환경학부 안에 있었거든요. 사실 학부 안에 의류학과를 가서 잡지사 에디터가 되고 싶었어요. 의류학과에 가면 또 옷을 만들어야 하니 재봉질을 해야 하는 거예요. 옷을 만들 때 교수님이 55사이즈만 알려줘요. 와. 다른 사이즈로 만들려면 수치를 따로 재서 만들어야 하고 정말 안 맞았어요.


엄마가 떠오르는 직업 중에 사회복지사가 있으니 한 번 해보라고 해서 그냥 별생각 없이 갔던 거 같아요. 학문은 잘 안 맞았지만, 잘 활용할 수 있었던 사회공헌팀에 간 게 저한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기업이랑 사회공헌을 할 때는 예산이 확보가 돼 있고 그 예산을 어떻게 예쁘게 잘 쓰느냐가 관건이니까 기업 입장에서도 저랑 맞았었던 거죠. 기업의 사업, 프로젝트 사업을 하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제 첫 직장은 00구 자원봉사센터였어요. 공공기관이고 구청 산하기관이라서 비효율적인 일이 많았어요. 봉사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1년 정도 일하고 그만두고 한국자원봉사문화라는 단체로 옮겼어요. 자원봉사 쪽에서는 나름 규모가 있는 곳이었어요. 파트가 여러 개 있어서 저는 기업 파트를 맡아서 일을 했는데 저에게 너무 잘 맞고, 기업 담당자들도 저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때 맡아서 했던 일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국민은행, 메트라이프 생명 모두 기업이었죠.


서로 욕구가 되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만둘 때 국민은행 팀장님이 엄청 아쉬워했던 게 생각나요. 그때 내가 기업 사회공헌 일을 하면 더 잘 맞다는 걸 알았죠. 이제는 기업에 들어가서 일할 때다! 라는 생각으로 재밌어 보이는 YG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게 됐어요.

Q4. 2022년 허들링 제주도 캠프에 함께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2박 3일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요. 캠프에서 어떤 마음, 추억을 쌓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좋았죠. 2022년도 제주도 캠프에 빌더로 참여하게 된 이유는, 제가 회사에서 자립준비청년 관련 사업을 하는데, 대상에 대한 스킨십도 없고 잘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해지고 알아야 더 좋은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갔던 거예요. 첫날은 좀 힘들었고 후회도 했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까 친구들과 친해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좀 가볍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제가 알게 모르게 혹시 말실수를 하게 될까 봐 그게 너무 겁이 나서 말을 조심하게 되고요. 그래서 첫날은 너무 쉽지 않았고, ISME가 룸메이트였는데 후발대로 좀 늦게 왔어요. 첫날 룸메이트가 저녁에 후발대로 합류하니까 한 번 더 낯설었는데, ISME가 벽이 있는 듯하면서도 또 필요할 때는 마음을 열고 막 정보 방출을 하더라고요. 제가 가족 이야기를 할 때 귀 기울여 들어줬는데 제 입장에서는 되게 고마웠어요.


그 템포에 맞춰서 저의 정보도 막 꺼내는데 그 이야기들이 흐름이 있었던 게 되게 좋았어요. 되게 오묘하기도 했어요. 마음을 열고 싶은 마음과 닫고 싶은 마음을 청년들 누구가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 느껴져서요. 마음을 열어도 되나? 열고 싶은데 열면 안 될 것 같고 저도 왔다 갔다 했어요.  청년들이 어떤 마음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캠프였고, 첫 스킨십이 있던 만남이라 너무 좋았어요.


제주도 내려갔을 때, 임팩트가 컸던 건 짜응이 카페에서 음료수를 주문하고 받으러 가야 할 때 각자 챙기라는 의미로 “자, 자립합시다! 자립합시다!”를 외치는데, 제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거예요. 제 성향 때문에 친구들이랑 깊이 친해지지 못할 건 아는데, 자영이가 심금을 울렸고, 큰 영향을 미쳤고, 나도 앞으로도 되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 거예요. 웃지도 못하겠고 놀라지도 못하겠다는 거예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색한 적막함이 있었는데 짜응이 ‘자립하자’라는 말에 빵 터져서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친구들이 생각보다 밝았던 것에서 놀랐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밝음과 밝지 않음이 섞여 있고 이걸 조절하려고 친구들이 노력하는구나. 저번에 유랑님과 같이 만났을 때 짜응이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친구들끼리 좀 친해지면 “야 내가 더 고생했어” 서로 고생 배틀한다고. 마냥 웃을 수가 없어요.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편해진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게 얘기할 텐데, 성장하는 나이라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아련하고 마음이 찡할 때가 있어요.

<2022년 허들링 제주 캠프>
Q5. 자립준비청년 커뮤니티 허들링에서 활동하는 몇몇 친구들을 알고 계시는데요. 멀리서 자립준비청년을 봐왔던 때와 제주도 캠프를 함께 하면서 실제 활동하는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달라진 마음이나 느낌이 있을까요?

잘하고 있다는 게 잘 보여서 좋아요. 저는 아빠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아빠가 있는 척을 했어요. 특히 초등학교 때 더 있는 척했어요. 얼마 전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어머니, 산희가 아버지가 있는 척을 해요”라고 말씀하셨대요. 엄마가 “저는 산희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요. 아이가 겪고 있는 과정이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둬야지. 아빠가 있는 척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으니 그냥 놔두세요.”라고 이야기 하셨대요.


고등학교 때까지 가정통신문 쓸 일 있으면 아빠가 살아 계신 것처럼 이름 써서 낸 적도 있었어요. 대학에 가서야 “언니 있어? 가족 누구 있어?” 친구들이 물어보면 용기 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숨길 필요 없는 거고 이론적으로 아빠가 없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입이 안 떨어지니까 연습을 해서 말했어요. 제가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청년들이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절반 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빠가 없다고 말하기 위해 주먹 꽉 쥐고 연습하고 노력해서 말했던 것처럼 이 친구들도 지금 노력하고 있는 과정일까? 저를 투영해서 보기도 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만난 소수의 친구들이 자립준비청년의 대명사는 아닐 거예요. 그렇죠? 제가 보기에는 제가 아는 친구들이 오히려 좋은 케이스로 상위 10%인 것 같아요. 관심 있게 보게 되는 친구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는 친구들이다 보니까.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보려고 뭔가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다 보니까 좋은 롤일 것 같긴 한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밝다고 생각했어요.  

Q6. 자립준비청년과의 관계는 길게 시간을 내어 만드는 게 필요한데요.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나요? 장기적으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싶진 않나요?

다 예쁘고, 여러 친구 만나고 싶은데 저도 MBTI가 I이다 보니까 자주 만나고 깊게 친해지지는 못한 것 같아요~ 먼저 만나자고도 잘 못해요. 하하.


첫 직장인 자원봉사센터에 근무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을 매칭해서 이주 여성들한테 한국어 교실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어요. 저는 자원봉사자들과 초‧중‧고급반을 구성하고 외국인들이 오면 매칭을 해서 수업하는 거였는데, 외국인을 처음 만나고 함께 사업을 하니까 좋았어요. 또 어린 여자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설명하는 과정들도요.


그때 베트남 이주여성을 한 분 알았는데 제가 너무 좋아해서 되게 잘해줬어요. 같이 놀러도 가고, 밥도 먹고 친구처럼. 내가 책임질 것처럼 라포 형성(상호신뢰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을 투머치 하게 한 거죠. 그러다 그 친구에게 가정 폭력이 발생했어요. 그 친구가 울면서 전화하면 새벽에도 달려나가고, 경찰서 신고해 주고 도왔는데, 또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랑 하하호호하니까 미치는 거죠. 두 달쯤 있다가 또 울면서 전화오면 다문화가정 지원센터에 연락해서 지원요청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하다가 제가 넋다운이 됐어요.


마지막에 또 울면서 전화가 와서 나는 더 이상 널 도와줄 수 없다고 하니까, 나는 너 때문에 인생이 망했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상처받았죠. 하지만 그때 일을 생각해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때는 스물여섯이었고, 성숙하지 못했고,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없었던 것 같고요. 그 뒤로 대상자랑 라포를 맺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책임져줄 수 없는데 누군가의 삶에 너무 많은 관여가 되면 서로 좋지 않다고 그때 크게 느꼈거든요.


소이프에서 올 초에 모집했던 치어빌더 신청을 안 했던 이유는 지금 강산희의 롤은 치어빌더의 롤이 아니라, 기업의 자산을 좀 더 많이 끌어와서 실무자들이 수월하게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역할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국콜마 사업을 하는 동안은 자조모임을 할 때 참여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지원할 수 있는데 제가 다른 치어빌더님들처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에는 제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보면 잘 할 것 같은데 약간 겁은 나요.  


친구들을 보면 되게 많은 생각을 하고, 저도 더 노력하고 더 다가가 보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은 너무너무 조심스러워요. 먼저 카톡 보내는 것도 거의 안 해요. 어떤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받은 만큼 돌려주더라고요. 근데 또 오히려 이 친구들은 나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준 만큼 돌려주면 친구들한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친구들하고 긴밀한 관계를 못 가져도 10년 이상 보는 사이가 되고 싶은 목표는 있어요.

<2022년 허들링 제주 캠프에서 친구들과>
Q7. 친구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많이 필요합니다. 강산희 빌더에겐 좋은 어른이 있었나요? 성장 과정에서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처럼 느껴졌는지 궁금합니다.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 이걸 해도 저걸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

결국 어른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경험에 대한 노하우를 말해줄 수 있고, 내 상황은 이랬고 이렇게 해보라고 말하기보다는 뭘 해도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는 어른.  근데 많은 어른들은 잘 못하면 망할 것 같이 얘기하잖아요.


저희 부모 세대 특히 우리 엄마는 옳은 삶이, 맞는 삶이 정해져 있는 세대였어요. “대학 나와야 돼.” “직장 가야 돼.” “뭐 해야 돼. 그걸 안 했을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어.” 제가 그렇게 자란 것 같아요. 옛날 어른들은 결혼 안 하고, 공부 안 하면 망할 것처럼 얘기하죠.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드는 뿌리가 되어버려서 쉽게 겁내고 두려워해요. 물론 먼저 살아본 어른 말대로 하는 게 베스트일 때도 있지만 안 해도 괜찮아 말해주는 것도 필요해요.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 이건 장단점이 뭐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응원해 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일이 되면 또 달라지고, 상황이 또 모두 다르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 부모를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제가 자식을 안 낳는 이유 중에 하나인 것도 같아요. 저는 엄마의 교육 방침이 너무 싫었는데 막상 커보니까 제가 엄마처럼 하지 않겠다는 보장이 없는 거죠. 하하. 나이가 먹을수록 왜 그러는지 알 거 같아서 못하겠어요. 물론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조금 나은, 진화된 어른이 되는 거라고는 하기도 해요.

Q8. 작년에 입양한 반려견 누리를 엄청나게 사랑해 주는 모습을 보고 있어요. 누리는 어떻게 입양하게 됐나요? 키우면서 힘든 점, 좋은 점도 궁금하고, 누리로 인해 바뀐 일상은 어떤가요? 친구들도 퇴소 후에 겪는 외로움 때문이나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반려견, 반려묘를 입양하기도 하는데요. 누리를 키워보니 어떤 책임감을 느꼈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저는 누리를 데려오려고 1년을 고민을 했어요.

강아지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책임져본 적은 없어서 키우기로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아요. 시간이나 금전적인 투자와 나의 일상적인 생활을 포기하면서 책임질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결혼하고 생활 패턴이 안정적으로 되니까 이쯤이면 내가 책임질 수 있겠구나, 또 나 혼자가 아니라 남편이랑 같이 하면 되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이 저를 1년 동안 설득을 했어요.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마침 봉사활동 갔다가 누리를 만났고, 이상하게 마음에 끌렸고 남편이 하도 보채니까 “한 번 보러 갈래?” 같이 보러 갔다가 얼떨결에 집에 데려온 거예요. 한 달 동안은 진짜 고생 많이 했고 회사에서 맨날 울었어요. 누리가 힘들어서 막 낑낑거리면 옆집에서 신고 들어올까 봐요. 첫날은 누리가 사고 쳐서 무섭고, 내가 누리 때문에 뭐 못할까 봐 무섭고. 나는 역시 애견인이 아닌데 미친 짓을 했구나. 맨날 그랬는데 한 달이 지나니까 귀신같이 나아지더라고요. 누리를 키우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려견을 돌보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알고 제가 누리 때문에 여행을 못 간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은 거예요.


그 뒤로는 누구든 개를 데려오고 싶으면 최소한 1년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병원비, 사료비, 간식비, 기생충약. 비용도 많이 들고, 행복하게 하게 해주기 위해서 하는 산책, 놀이. 저는 그런 얘기 많이 해요. 옛날에 애들이 명품 가방 사고 싶으면 카드로 10개월 할부하고 10개월 동안 내잖아요. 그렇게 하지 말고 10개월 모은 돈으로 사라고 하거든요.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자금을 1년 동안 모아 놓고 그게 가능할 때 키워라. 한 달에 조금 쓰는 달은 20만 원, 많이 쓰는 달은 40-50만 원, 평균 30만 원은 확보해야 한다고요.


누리는 집안 물건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계속 자요. 저희가 들어가는 문소리 나면 그때 일어나요. 단점인 건 안 안겨요. 처음에는 얼굴로 안 안기는 게 장점이었는데 제가 누리와 사랑에 빠지니까 안 안기는 게 단점이에요. 억지로 하면 참긴 해요. 맨날 보호소에서 살았으니까 장난감도 가지고 놀 줄 몰랐거든요. 8개월 지나니 장난감도 가지고 놀더라고요. 언젠가 누리가 분명히 제 품에 안길 거라고 생각해요. 누리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좋은 거 같아요.


근데 누리가 남편보다 절 더 좋아하거든요. 성인 남자한테 학대를 받은 것 같아요. 처음에 남편은 너무 어려워했고, 다리만 들어도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갔어요. 발길질을 많이 당한 거 같아요. 아직도 저를 훨씬 더 좋아해서 남편이 서운한 마음이 조금 드는 정도? 개를 진짜 많이 키웠는데 이런 성향은 처음 본다고 그러더라고요.


누리는 자기가 고양이인 줄 아는 것 같아요. 고양이 보호소에서 있었거든요. 사설 고양이 보호소였는데 가끔 누가 한두 마리 개를 급하게 데리고 오면 받아줬는데 거의 2년 있었던 것 같아요. 고양이들은 개를 싫어하잖아요. 산책 나갔다가 고양이 보고 반가워서 다가갔다가 따귀 맞고 온 적도 있어요. 하하. 남편이랑 우리 새끼 때린 고양이한테 복수하자고 난리도 쳤다니까요. 근데 그 고양이가 또 동네 인기스타라. 하하.  


케어를 잘 할 수만 있으면 마음에 충족감을 주는 건 너무 좋아서 청년들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성숙해졌을 때 만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강산희 빌더의 반려견 '누리'>
Q9. 제가 만난 친구들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극과 극이더라고요.
결혼에 대한 자신이 없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비혼을 선언한 친구도 있고, 외로워서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어요.
강산희 빌더가 경험해 본 결혼은 어떤가요?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 제가 되게 똑 부러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까 허술하다고 되게 속았다고 얘기하거든요. 제가 말도 안 되는 똥고집 막 부려도 남편은 그래 그럼 네 생각이 맞다고 말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했어요. 이런 일이 무한 반복이니까.


이 사람과 제가 늘 하는 말은 사랑은 포기예요. 하하. 저는 결혼이 괜찮은 것 같아요. 좋아요. 결혼을 차라리 조금 더 빨리 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은 많이 해요. 서른일곱에 결혼했는데 서른에 했으면 인생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감정적으로 일단 안정적이 되는 것 같아요.


결혼해서 재산을 합쳐서 모은 것도 좋고. 월급이 두 배로 들어온다. 기분 좋아요. 갑자기 내가 좀 연봉이 늘어난 느낌. 하하. 저는 또 아빠가 없었기 때문에 뭔가 남성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마음적으로 충족되고요.


어쨌든 파트너가 있다는 것. 숙제를 맨날 혼자 하다가 어쨌든 괜찮게 하는 조별 과제 파트너를 한 명 만난 것. 뭐 싸울 일 있을 때 같이 싸워주는 거. 밥 먹을 때 음식 안 남는 거? 대단할 거 없는데 소소한 만족감과 행복이 있죠. 둘이 함께한다는 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해 줄 말은, 결혼은 신중해라. 할 거면 얼른 하고. 사랑은 포기다.

안 맞는데 살 수 있음 그게 포기지 뭐.

<강산희 빌더의 일상>
Q10. 강산희,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대충 살고 싶은 어른. 이제 올해 마흔 됐거든요. 빼도 박도 못하게. 나이로는 이제 어른인 것 같은데, 진짜 대충 살고 싶거든요. 대충 살고 싶은 어른. 이래도 저래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제일 듣고 싶은 말이 “야 괜찮아”거든요. 다 같은 게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얘기를 제일 듣고 싶어요.

Q11.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응원의 메시지 한 마디 부탁드려요~

자립준비청년이라고 해서 더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냥 한 인간으로서 응원한다면, “그냥 뭘 해도 다 괜찮아”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열심히 한다면 뭐든 괜찮아"

이야기 기록한 이. 유랑流浪
이야기 나눠준 이. 강산희 빌더 
소이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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