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윤며듦 #임지영기자

[주말에 뭐 읽지]  2021-04-29 #54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괜찮은 사람으로 나이 드는 법
마르타 자라스카 지음/김영선 옮김
어크로스 펴냄


‘구기자’라는 단어가 책에 자주 나온다. 그것도 유기농 구기자. 미국에서도 구기자를 먹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기자만이 아니다. 강황을 비롯해 모링가 잎, 아슈와간다 가루도 있다. 미국에서 유행한 건강식품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전 세계 노화방지 시장의 규모는 2500억 달러를 웃돈다. 모두 건강하게 늙고 싶어 한다.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의 저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마르타 자라스카는 건강식품의 섭취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절제된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은 의심할 여지 없는 장수의 비결 같다. 저자는 논문 600여 건을 분석하고 과학자 50여 명과 인터뷰했다. 스스로도 구기자와 유기농 콩, 토종 토마토퓌레를 먹고 하프마라톤과 윗몸일으키기를 수천 번씩 했으나 생각만큼 그게 건강에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황해서 더 깊이 파고들었고 가장 공들여야 하는 건 식습관과 운동이 아니라 사회적 삶과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무엇에 신경 써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이웃에게 친절하라는 주문이 어쩐지 ‘정신 승리’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미주신경과 옥시토신, 장내 미생물의 기능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이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상관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연구와 사례가 몹시 흥미롭다. 우울증과 염증 간의 연관성, 문란한 초원들쥐를 일부일처제로 만드는 방법, 단백질 섭취량이 높을 때 발생하는 일 등 각각의 사례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충분하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데 마음을 쏟는다면 젊어지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인데, 어쩌면 영양제를 입에 잔뜩 털어 넣는 일보다 쉽지 않은 방법 같다.

임지영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김인희 지음, 푸른역사 펴냄

“소분홍은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국가를 사랑한다.”

한·중 관계, 중·일 관계가 점점 악화하는 데에는 인터넷을 무대로 펼쳐지는 ‘애국주의 전쟁’이 한몫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복·김치 등을 놓고 인터넷 공간에서 중국 누리꾼들과 작은 전쟁을 벌였다. 양국 모두 애국주의가 충만한 모습이다.
저자는 중국 누리꾼의 애국주의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에서 홍위병을 만난다. 1960년대 시작된 중국 문화대혁명의 전사들 말이다. 문화대혁명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지금 중국에서 ‘소분홍(샤오펀훙)’으로 상징되는 ‘애국주의 분노청년’이 성장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반백 년 전 홍위병을 현재로 불러온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중국판 일베’의 형성 과정을 조명한 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의 감각
로저 니본 지음, 진영인 옮김, 윌북 펴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고, 관심 있는 일을 하며,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고수’란 무엇인가. 미나리과 채소 말고, 전문가나 장인을 뜻하는 고수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의사이자 교육자인 저자는 한 분야의 고수들을 지켜보고 대화하며 이들을 다룬 이론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일의 전문가는 일정한 과정을 겪는다. ‘도제-보통 일꾼-고수.’ 고수들은 어떻게 그 수준에 이르렀는지 눈앞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연주회에서 트럼펫 솔로 연주를 감상할 수는 있지만, 평생에 걸친 연습 과정을 볼 수는 없다. 갤러리에서 보는 멋진 그림도,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그렸을 수천 번의 습작은 보여주지 못한다. 책은 이면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의 일은 대부분 말로 표현하기 불가능한데, 저자는 고수들의 겉모습, 판단력, 지혜, 행동방식, 대처 능력 등을 기록했다.

셀 수 없는 성
티에리 오케 지음, 변진경 옮김, 
오월의봄 펴냄

“생물학은 우리를 편향되게 만든다.”

2014년 프랑스에서 ‘등교 거부의 날’이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2013년부터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시행 중인 ‘평등의 ABCD’라는 젠더 교육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위에 참여한 가족들은 “남자아이는 남자아이고,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생물철학과 생물사를 연구하는 철학 교수인 저자는 그들의 시위를 바라보며 의문을 갖는다. “‘남자아이는 남자아이고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둘의 생식기가 다르다는 사실 외에 무슨 내용이 있는가? 이것이 그렇게나 진보적인 얘기인가?” 그는 가부장적인 생물학은 남성중심주의와 이성애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며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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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오딧세이
전경수 지음, 눌민 펴냄

“부속 도서인 독도에 묻혀서 안중에도 없는 울릉도.”

TV 기상특보가 “태풍은 동해로 빠져나가서 다행입니다”로 끝나면 울릉도 주민은 아연실색한다. 울릉도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태풍 상황 끝”이라는 보도를 접하면 내팽개쳐진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울릉도 주민들은 줄곧 이런 식의 대접을 받고 살아왔다. 독도를 다루는 유행가 가사에 들러리로나 등장하는 섬이 울릉도다. 우리는 울릉도를 너무 모른다. 평생 인류학자로 살아온 저자가 인류학·민속학·생태학 등의 측면에서 울릉도를 집대성했다. 2006년 자연보호중앙연맹 답사반 자격으로 울릉도와 인연을 맺은 이래 15년 동안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울릉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할 중요한 참고도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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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영토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았습니다. 왜소한 체구에 초라한 모습. 사람들은 그가 이웃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냈습니다. 존재감 없는 그의 이름은 말 그대로 '아무개 씨'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노인은 비밀스러운 임무를 지닌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의 별이 질 때마다 새 별을 만드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었죠... 세상의 모든 무명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그림책 한 권. │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별이 질 때마다 새 별을 만드는 남자' 전체 글 보기 >>

새내기 기자 시절, 선배들이 가르쳐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취재 노하우 중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나이 든 취재원을 만날 때는 건강 이야기로 화제를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라고 한 마디만 던지면 알아서 상대가 얘기를 풀어나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화기애애해질 것이라고요.

사실 이 대화법은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워낙 강력해 거의 실패한 일이 없습니다.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병에 걸리면 걸린대로 할 얘기가 끊이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이게 가끔 거슬릴 때도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왜 건강과 질병에만 몰두하나못마땅했던 여성학자 마거릿 크룩생크처럼요(<나이듦을 배우다>). 그는 나이듦의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보면서 비로소 이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알고본즉 질병은 노인의 삶에 일어나는 일 중 타인이 눈여겨보는 (거의) 유일한 과정이었던 거죠. 그래서 나이 든 이들은 질병을 앞다투어 '전시'하려 들었던 거고요.

그렇게 보자면 건강에의 지나친 집착이야말로 외로움의 반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소개한 책의 저자가 유기농 구기자와 하프마라톤을 집어치우고 가족·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한 것도 그때문이겠죠.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해지나 자신에게 더 너그러워지기, 그래서 더 유연하고 지혜로워지기...탄탄한 개인주의자의 내공에 나이듦의 미학까지 갖추면서 남녀노소를 사로잡고 있는 배우 윤여정 씨를 보며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나아가 괜찮은 사람으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되는 이즈음입니다


"생각지 못한 일들이 계속 생겨 마음과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힘든데, 
추천해주신 책을 읽으며 차분하게 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평소 관심이 가지 않던 영역을 찾아서 공유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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