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호기자 #속초 #북스테이

시사IN북 뉴스레터 #18

친구가 없어 책만 파고 들던 어린 시절, 가끔씩 빠져든 공상이 도서관에 갇히는 것이었습니다. '사서도, 수위도 다 퇴근해 버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홀로 남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빌려 읽고 싶지만 내 차례가 잘 돌아오지 않는) 만화책이나 추리소설도 마음껏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말하자면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도서관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얼마 전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북스테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건데요. 낮에는 서점 겸 카페, 밤에는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하는 그 집에서 주인장이 2층에 있는 자기방으로 '퇴근'하고 난 뒤 1층 책방 공간을 온전히 차지하고 있자니 어릴 적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만 같아 괜스레 설레더군요. 평소 제목만 눈여겨 보았던 그림책과 신간 도서들을 읽는 짬짬이 북스테이 앞마당에 나가 깊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덤이었고요.  

그뿐 아니었습니다.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전혀 예상치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었는데요. 제가 갔던 북스테이는 청년 세 명이 함께 사는 삶을 꿈꾸며 지은 집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혼자 살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랜 1인 가구의 삶을 통해 깨달은 세 사람이 함께 살기로 마음을 합치고,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가며 집을 짓게 된 지난한 과정을 듣는 일은 또 얼마나 흥미롭던지요.   

올해는 여름 휴가를 맞는 마음이 예년같지 않죠. 실제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도 조심스럽고요. 그럴 때는 책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도 방법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방역 대책 꼼꼼히 세운 북스테이도 좋고, 아무도 훼방놓지 않는 우리집 거실도 좋겠죠. 책이 가져다 주는 우연한 생각, 우연한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멋진 여름 휴가 구상하시길. 늘 말씀드리지만 책은 가능한 동네책방에서 구입해주시고요😄

                                                                    Image by Pixabay


‘언젠가 속초’에 가시려거든  

김영건 지음/21세기북스 펴냄 
  
 
 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여행을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고심을 거듭해 가이드북을 고르고 해당 지역 이름이 들어간 다른 책도 살펴본 후 구입하곤 한다. 이를테면 몇 해 전 일본 오키나와에 가기 전에는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효형출판)를 가이드북과 함께 읽었다. 정작 내가 방문한 날은 헌책방 ‘울랄라’가 쉬는 날이라 들어가보지 못했다. 여행은 사진으로도 남지만 이렇게 책으로도 남아 기억의 두께를 더한다.
 
2017년 봄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를 낸 저자 김영건씨를 만나기 위해 김씨가 3대째 대를 이어 일하는 동아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시사IN〉 제494호 ‘오늘도 동아서점은 문을 열었습니다’ 기사 참조). 당시 동아서점이 매달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서울의 서점에서는 마주치지 못했던 〈속초에서의 겨울〉(북레시피)이라는 낯선 책이 순위권 안에 있었다. 김영건씨는 그 책을 고른 내게 “속초 얘기는 되게 조금 나와요”라며 조용히 웃었다. 나는 요즘도 책꽂이에서 그 책을 만나면 영건씨의 웃음을 함께 떠올린다. 내게 〈속초에서의 겨울〉은 동아서점과 속초를 떠올리게 하는 기념품인 셈이다.

동아서점이 2019년 9월 집계한 베스트셀러 1위는 〈속초:대한민국 도슨트 01〉였다. “속초에 관한 책은 어디에 있죠?”라고 묻는 여행객들에게 김영건씨가 작정하고 내놓은 대답이다. 김영건씨가 태어나고 자라고 떠나고 결국 돌아왔던 속초를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따라 읽는 동안 ‘언젠가 속초’를 기대하며 소개된 곳을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표시해뒀다. 영건씨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로 ‘보광미니골프장에 가는 일’을 노트에 적어두었다고 했다. 1963년 평양 출신 실향민 이춘택씨가 만든 ‘세상에서 하나뿐인 골프장’에서 게임을 마친 뒤 감자전을 먹으며 막걸리 마실 날을 나도 덩달아 기다리게 되었다.

장일호 기자

 책 자세히 보기 >>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문명과 혐오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아고라 펴냄  

“이런 잔혹함 앞에서 포기했다는 듯 두 손을 드는 것은 그야말로 현명하지 못한 일이자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이야기는 191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있었던 매리 터너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백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흑인 여성이었다. 그 이후로도 ‘적절치 않은 피부색을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다. “주류 담론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대로 이 나라에서는 이제 인종차별이 사라졌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앞에 다시 선명해진다. 
혐오는 뿌리가 깊다. 그리고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잔학 행위를 정당화하는 혐오 집단의 논리는 무엇인가? 혐오를 용이하게 하는 정치사회적 체제가 있는가? 이 책은 근본적인 질문을 들고 인종차별, 소수자 린치, 강간, 아동학대, 계급 착취 등 혐오가 만들어낸 폭력의 역사를 파고든다.  

 책 자세히 보기 >>  


저도 의학은 어렵습니다만  
예병일 지음, 바틀비 펴냄  

“의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이지만, 왜 그런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산화질소’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면 당신은 의학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산화질소는 전신운동을 할 때 생성되는 물질로 혈관을 확장시켜준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 심혈관 위험인자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두드러진 효과를 보인다.
의학교육학과 교수인 저자가 의료와 관련된 여러 궁금증을 망라했다. 얼굴이 누렇게 뜨는 이유 같은 건강상식부터 왜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을 졸업해야 하는지까지, 에세이 쓰듯 쉽게 설명했다. 자그마한 궁금증에 책을 들었다가 의료기관 민영화나 원격진료 같은 당대의 첨예한 문제에까지 쑥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늘의 착각  
허수경 지음, 난다 펴냄  

“언젠가는 너를 잃어버릴 거라는 이 확연한 사실을 착각으로 위장하여 저녁 어둠에 놓아두는 것.” 

표지에 세로로 적힌 ‘유고 산문’이라는 글자를 괜히 매만져본다. 시간이 지나도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다만, 고인이 된 시인이 그리울 때 펼쳐볼 수 있는 책이 여러 권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기댄다. ‘없음’이 ‘있음’이 되는 기적이 책장을 펼치면 시작된다. 그것 역시 착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2019년 10월3일 1주기를 맞아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 나온 데 이어 두 번째 유고집인 이번 책은 6월9일 그이의 생일에 맞춰 나왔다. 허수경 시인이 생전 문학 계간 〈발견〉에 연재했던 글 8편을 한데 모았다. 편집자의 말마따나 두 번의 사계절이 고스란히 담겼다. 다가오는 10월 2주기에 세 번째 유고집이 나올 예정이다. 다행이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글이 남아 있어서. 
 


뉴 타입의 시대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세계의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할 때다.”  

‘뉴 타입’은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간이다. 우주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저자는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올드 타입에서 뉴 타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답을 찾는 것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서 미래를 구상하는 것으로, 규정을 따르는 것에서 자신의 철학을 따르는 것으로.
저자의 전작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국내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다. 철학과 자기계발, 역사와 비즈니스를 통섭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철학과 예술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찾는 전략 컨설턴트’라는 소개가 그리 무색하지 않다.  
 
 책 자세히 보기 >>  

유례없는 팬데믹은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팬데믹 그 후, 새로운 경제와 사회계약'을 묻는 시사IN 웹세미나가 6월29일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웹세미나 현장에서 오간 토론과 박원순, 이재명, 김경수의 '진짜 뉴딜' 3부작을 담아 시사IN 저널리즘북2 <코로나 뉴딜 (가칭)>이 출간될 예정입니다(오른쪽 그림).  


👆지금 예약 구매로 힘을 실어주세요☝
*7월말, 8월초 출간 예정입니다 

"재난은 아주 특별한 정치의 공간을 연다. 
재난은 사회를 더 불평등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평등하게 만들기도 한다...재난기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드는, 정치의 본령에 이토록 가까운 일을 할 기회는 정치가들에게도 흔치 않다."   
 
-천관율 기자의 머리말 중


 photo by 책방시점, 강화  

요즘은 동네책방 못지않게 북스테이🏡도 늘고 있다죠. 로컬과 책방 주인의 개성이 살아 있는 북스테이 탐방에 푹 빠진 분들도 많던데요. 조금만 '검색 신공'을 발휘하면 내 취향에 맞는 북스테이를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일찌감치 북스테이 문화를 선도한 1세대 북스테이들이 모여 있는 북스테이 네트워크도 있으니 참조하시고요.  <시사IN>과 함께 책 읽는 독앤독🐶(독립언론×독립서점)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친구책방 중에서도 완벽한날들(속초), 책방시점(강화) 등이 북스테이를 하고 있답니다.

시사IN 친구책방은 다음을 클릭해 확인해 보세요친구책방에 가면 [주말에 뭐 읽지]에 소개된 책📚과 <시사IN>도 만날 수 있습니다(동네책방에서 시사IN 구독을 신청하실 때는 해당 책방에 지원금이 갈 수 있게끔 책방 이름을 꼭 함께 적어주세요).

시사IN북
book@sisain.kr

이번호 <시사IN> 뉴스레터 어땠나요?

<시사IN> 뉴스레터를 아직 구독하기 전이라면 여기
추천하고픈 친구에게 이 링크를 전달해주세요 https://newsletter.sisain.co.kr/

💬받은 이메일이 스팸으로 가지 않도록 이메일 주소록에 book@sisain.kr를 등록해주세요.  
수신거부 원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04506 서울시 중구 중림로 27 가톨릭출판사빌딩 3층 (주)참언론 TEL : 02-3700-3200 / FAX : 02-3700-3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