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한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 이야기

최소한의 행복

새로운 달이나 계절을 맞이할 때면 대청소를 하고 싶어지죠. 창문을 열고선 팔을 걷어붙인 채로 부지런히 지난 흔적들을 닦아내고 덜어냅니다. 옷장과 서랍,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버릴 것과 남길 것이 분류되곤 해요. 미어터질 듯한 쓰레기봉투를 옮기다가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짊어지고 살았던 것이 이리도 많았구나 싶었지요. 이 모든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나와 주변을, 이 지구를 좀먹어 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무언가로 가득 찼던 공간에 틈이 생기고, 얼룩이 진 자리가 말끔해진 것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내 곁에 남아있는 것들을 둘러보며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지요. 뉴스레터를 읽고 있는 님은 어떤가요? 님에게 절실한 최소한의 행복과 함께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회복을 돕는 사소한 장면들을 공유해볼게요.

04.13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회복을 위한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 이야기


04.27.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책에 실리지 못한, 숨겨진 어라운드만의 이야기를 전해요.


05.11.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오늘 다시 보아도 좋을, 그때의 이야기를 소개해요.

살곰살곰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법

이번 88호에 함께한 플랜트 크리에이티브팀 파도식물의 이야기 중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문장이 있는데요. “나와 내 친구들이 살곰살곰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환경 보호든 지구 평화든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라 믿어.” 다가올 지구의 날을 맞이하며, 문득 어라운드 식구들에게도 묻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선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나요? 무언가 소진된 것만 같을 때, 마음을 차오르게 만드는 장면들은 무엇인가요? 

《우아한 언어》

박선아 | 위즈덤하우스


김이경—편집장

이 책은 출간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저도 이제 막 읽고 있어요. 어라운드 매거진 에디터이자, 《20킬로그램의 삶》 박선아 작가의 책이라 더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어느 시절의 아름다움, 우리가 남겨두어야 할 것들, 시간이 지나 비로소 마주하게 된 반짝이는 순간이 담겨 있어요. 우리를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게끔 회복시켜주는 힘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네요. 남기고 싶은 순간을 담은 이야기책 또한 지켜주고 싶은 것들 중에 하나이고요.

Vaundy, ‘Mabataki


지정현—브랜드 프로젝트 매니저

뮤직비디오가 인상 깊었던 노래예요.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과 그 길을 거슬러 내려가며 탄환이 달린 목걸이를 푸는 남자. 어깨를 부딪치고 신경질적으로 총을 꺼내 상대를 겨누지만, 이내 자책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고 뒤돌아 걸어가는 모습이 세상에 실망한 우리네 모습 같았거든요. 남자는 총을 버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길을 다시 올라가 길에 지친 듯 앉아있는 소녀에게 손을 내미는데요, ‘우리 서로 미워하지 말고 이야기해볼까’라는 가사를 생각해보면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Mabataki(瞬き)는 ‘눈을 깜빡이다’라는 뜻이에요. 눈을 깜빡이는 사이, 우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회복할 순간을 놓치고 있는지 몰라요. 제가 뮤직비디오 1분 57초, 길을 뒤돌아 보고 있는 소녀를 놓친 것처럼요.

식물원


오은재—에디터

평온하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격자무늬 창마다 빛이 서려 있는 한낮의 식물원을 상상하게 됩니다.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자연스레 식물원으로 향하곤 해요. 식물원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사방에 가득 찬 초록빛을 보면 위로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를 둘러싼 프레임은 어떤 궂은 날씨도 틈입할 수 없을 것처럼 견고해 보이죠. 적당한 볕과 바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말없이 자라나는 식물들. 그들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사람들과 적당한 소음. 그 과묵한 풍경을 보고 있자면 초록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색이 아닐까? 싶어져요.

시시콜콜한 최선

일상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누구나 한가지쯤 지구를 위한 일들을 실천해나가고 있답니다. 그 사소한 행동에 ‘노력’이라는 이름을 붙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숭고한 단어를 거들먹거리기엔 나의 노력이 시시콜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해 별것 아닌 제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릴까 해요. 저의 노력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 식탁에서 시작되곤 해요. 매주 화요일, 금요일마다 사내 점심 메이트들과 함께 ‘비건데이’를 누리고 있는데요. 모두 이전부터 비건에 관심은 있었지만, 홀로 실천하긴 막막해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렇다면 주에 2번, 한 끼라도 비건 음식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가 꺼져 가던 불씨를 키웠고, 이를 도화선 삼아 용기를 내어보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세상에 맛있는 비건 음식은 참 많고 많았습니다. 우리의 작은 마음이 언젠가 거대한 불꽃으로 번져오를 순간을 고대하며, 오늘도 머리를 맞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메뉴를 고릅니다. 남들이 보기엔 다소 허술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것이 오늘 우리가 식탁에서 벌일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으면서요.


오은재

콩나물 국밥


아직 걸음마를 뗀 지 얼마 안 된 초보 비건들은 매 순간 실수를 연발하곤 합니다. 이것이 과연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 매의 눈으로 성분표를 살펴봐야만 하죠. 난감한 일들은 대개 음식점에서 벌어지곤 합니다. 이를테면 콩나물국밥을 주문했을 때, 사장님께서 내어주는 날달걀을 거절하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못 본 척하기는 얼마나 더 힘들고요.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더 많거든요. 정중앙에 예쁘게 자리한 노른자를 마주하고선 ‘습관’이란 참 무섭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하죠. 다행히 요즘은 눈을 질끈 감고, 뜨끈한 국밥을 내오는 사장님께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네곤 합니다. 사장님, 달걀은 필요 없습니다. 힘겹게 지켜낸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며, 엄지를 척 내보이기도 하고요.

인도 카레


육류 요리를 먹다 보면 고기만 쏙쏙 골라내느라 다른 재료가 선사하는 재미는 뒷전이 되곤 해요. 비건데이만큼은 그간 알지 못했던 식재료의 맛을 고루고루 음미하려 합니다. 그중 인도 카레는 비건 음식의 매력을 알려준 특별한 메뉴예요. 인도는 비건 문화가 잘 정착된 나라이기도 하죠. 주요한 장면에 배치되지 못하고 엑스트라 취급당했던 콩, 가지, 당근과 감초 역할 정도라고 여겼던 양파, 감자는 카레라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으로 우뚝 군림하곤 합니다. 병아리콩은 그 다채로운 재료들 사이에서 핵심을 담당하고 있어요. 인도 비건들에게 믿고 먹는 식재료로 통할 정도로 포슬한 식감이 일품이랍니다. 동글동글한 콩을 굴리다 씹는 순간, 그 귀여운 맛을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숟가락을 들이밀 때 ‘아 용기 내길 잘했다!’ 싶어집니다.

범선 지지표 들기름 막국수


인터뷰를 나가면 종종 인터뷰이와 함께 식탁에 마주 보고 앉을 일이 생깁니다. 쉴 새 없이 먹고 사는 일에 대해 떠들다 보면 끝 무렵에는 허기가 지거든요. 누구의 배에서 새어 나온지 모를 꼬르륵 소리에 머쓱해질 때쯤 밥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오르내립니다. 이번 88호에 함께했던 범선 님과 지지 님은 들기름 막국수를 내어주었는데요. 집 안 가득 퍼진 들기름 향에 참지 못하고 잽싸게 면을 집어 올려 한 입 먹어보았어요. 이윽고 혀를 휘감는 감칠맛에 넋을 놓고야 말았지요. 별다른 양념과 고명 하나 없었는데도, 다양한 맛이 미각을 리드미컬하게 자극했습니다. 요즘도 종종 들기름 막국수를 찾을 정도로 진한 여운을 남겼답니다. 이번 주말에는 그들의 레시피를 따라 저만의 손맛이 묻어나는 막국수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ART BUSAN 2023〉

5월은 황금연휴가 몰려있어, 마음먹고 떠나기 좋은 달이지요. 어라운드를 아끼는 독자님들께서 보다 예술적인 휴일을 만끽하길 바라며, 프리미엄 아트페어 〈ART BUSAN 2023〉에 초대합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ART BUSAN은 10여 년간 명맥을 이어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대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는데요. 2023년에는 21개국 15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하여 뜨거운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해요. 국내외 미술씬을 이끌어 가는 거장부터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신진작가까지.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미술계의 흐름을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예술 곁으로 한 발짝 다가가고 싶으신 독자분들을 위해 어라운드 인스타그램에서 〈ART BUSAN 2023〉 초대권 이벤트도 진행 중이랍니다. 우연히 마주친 그림 한 점에서 오래 기억하고픈 의미를 길어 올리길 바라며. 《AROUND》 88호에도 이에 관한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으니, 찬찬히 살펴주세요.


〈ART BUSAN 2023〉

5월 5일 금요일 - 5월 7일 일요일

벡스코 제 1전시장 (해운대구 APEC로 55)


𝗜𝗻𝘀𝘁𝗮𝗴𝗿𝗮𝗺 𝗘𝘃𝗲𝗻𝘁

참여 방법 : 나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볼까요? 아트부산 2023 기대평과 함께 여러분의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주세요.

참여 기간 : 4월 10일 월요일 ― 4월 16일 일요일

당첨자 발표 : 4월 17일 월요일 (개별 DM 안내)

당첨자 : 10명 (1인 2매)

입장 가능 날짜 : 5월 5일 금요일 - 5월 7일 일요일 중 하루 입장 가능

AROUND Playlist 06 Vol.88 지키고 싶은 장면(On Earth)

줄곧 내리던 봄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어요. 길가 곳곳에 고여있는 웅덩이를 피하며 걷느라 수고롭다가도 물기 어린나무들의 모습이 개운해 보여 사소한 불편쯤은 충분히 감수하게 됩니다. 모든 생물이 최선을 다해 저마다의 색을 내보이는 요즘. 《AROUND》 88호와 함께 듣기에 적당한 여섯 번째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할게요. 이번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광활한 자연의 품에 안겨 듣기에 적당한 노래들을 선별했답니다.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선 바람에 일렁이는 풀들과 스텝을 밟고, 기쁨에 겨운 나무들의 속삭임을 느끼며 눈을 감아보아요. 이번 플레이리스트는 유튜브와 스포티파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답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회복’에 관한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 이야기들을 나눠보았어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부부가 등장해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초콜릿케이크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이들은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을 목도하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 속으로 침잠합니다. 그런 그들을 구해낸 것은 아들의 케이크를 만든 빵집 주인이었어요. 주인 없는 케이크를 앞에 두고선 감정을 쏟아내던 부부를 보며, 그는 별 말 없이 갓 구운 롤케이크를 내옵니다. 그러곤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 그 따스한 선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제서야 파도치던 감정들은 점차 잦아들고야 맙니다. 때론 ‘별것 아닌 것’만 같은 것에서 강력한 힘을 받곤 하지요. 한 주간 가쁘게 달려왔을 독자분들께서도 거창하지 않은 장면을 통해 수고한 자신을 도닥일 수 있기를 바라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Another Story Here’과 함께 돌아올게요. 그럼, 다다음주 목요일 아침 8시에 만나요!

'지키고 싶은 장면(On Earth)’을 주제로 한 《AROUND》 88호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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