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열여섯 번째 흄세레터
지난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 보셨나요? 영화는 미스터리 형사극의 외피를 쓴 멜로영화인데요, 영화를 보면서 또 보고 나와서 흄세 시즌2 작품들이 떠올랐어요. 가닿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애태우는 모습에서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가 겹쳐 보였고, '어른의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는 성숙하지 못했던 《그녀와 그》 속 테레즈와 로랑이 떠오르는 식으로요. 사랑의 얼굴은 다양하고도 또 많은 부분 닮아 있나봅니다. 시즌2 작품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영화도 마음에 드실 거라 생각해요. 고민 중이시라면 예매를 권해드립니다.💳 반대로 영화를 재밌게 보셨다면 시즌2 작품들도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생각해요. 주변에 〈헤어질 결심〉을 추천하는 친구나 동료가 있다면 넌지시 흄세 시즌 2를 추천해주시길...💙

오늘은 지난 레터에 이어 토마스 만의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흄과 세가 뽑은 미리보기 장면부터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까지 알차게 소개해드릴게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미리보기


아셴바흐가 반쯤 멍한 상태에서 마치 취조하듯 낯선 이를 자세히 뜯어본 게 아마 무례했던 모양이었다. 아셴바흐는 낯선 남자가 자신의 시선에 응답하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것도 도전적인 눈빛으로 아셴바흐의 눈을 직시했다. 자신은 극단적인 상황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어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라고 몰아세울 작정인 게 분명했다. 곤혹스러워진 아셴바흐는 몸을 돌려 울타리를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남자에게 신경 쓰지 않기로 얼결에 마음먹었다. 실제로 그 남자는 이내 아셴바흐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방랑하는 듯한 낯선 이의 모습이 아셴바흐의 상상력을 자극했거나 그 밖에 어떤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었다. 아셴바흐는 기이하게도 자신의 내면이 확장되는 걸 감지하고 깜짝 놀랐다. 떠도는 듯한 일종의 불안감, 젊은 시절처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갈망이 치밀었다. 그런 감정은 아주 새롭고 생생한 것이거나 아주 오래전에 떨쳐버리고 잊어버린 것이었다. 아셴바흐는 뒷짐 진 채 못 박힌 듯 서서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그 느낌의 본질과 목표를 알아내려 했다.


그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구였다. 그뿐이었다. 그 욕구는 발작처럼 엄습해서는 점차 열정적인 것으로, 그야말로 환각을 야기할 정도로 고조되었다.(《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12∼13쪽)

흄's pick

출근길에 낯선 번호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뜸 “이장님이시유?” 하고 묻더라고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다고 대답하니 “그럼 누구시유?” 하고 또 묻더라고요. “네……?” 하고 나서 내가 누구인지 잠시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다고 말하니 이번엔 또 “그럼 혹시 이장님 번호 아시유?” 하고 묻더라고요……. 출근길 내내 나는 누구이고 이장님은 또 누구일까 하는, 생각해본 적 없는 물음을 계속해서 곱씹었습니다. 아셴바흐도 그랬을까요.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내 때문에 “환각을 야기할 정도로” 강렬한 “여행에의 욕구”를 느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토니오 크뢰거〉 미리보기


토니오가 한젠을 사랑한 건 무엇보다도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젠이 모든 면에서 자신과는 다르고 반대된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스 한젠은 우등생인 데다가 영웅처럼 승마와 체조와 수영을 하고 모두에게 인기 있는 활발한 소년이었다. 교사들은 한스 한젠에게 거의 애정 어린 호의를 보였으며, 성을 뺀 채 이름만 불렀고, 온갖 방식으로 격려하고 장려했다. 학우들은 한젠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 거리에서는 신사 숙녀들이 한젠을 불러 세우고 덴마크 선원 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밝은 금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녕, 한스 한젠. 머리카락이 정말 멋지구나! 지금도 반에서 1등이지? 엄마 아빠에게 안부 전해주렴. 참 훌륭한 소년이야…….”

한스 한젠은 그런 소년이었고, 토니오 크뢰거는 그 소년을 알게 된 후로 갈망을 느꼈다. 그 소년을 볼 때마다 질투심 어린 갈망이 솟구쳤다. 갈망은 가슴 위쪽에 자리 잡고서 뜨겁게 불타올랐다. 너처럼 푸른 눈을 가질 수만 있다면. 토니오는 생각했다. 너처럼 모든 세상과 잘 지내며 행복하게 어울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늘 무슨 일을 하든 예의 바르고 모두에게 존중받아. 너는 학교 숙제를 끝내고 나면 승마를 배우거나 실톱으로 작업을 해. 방학 중에도 바다에서 노를 젓고 요트를 타고 수영하는 것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 그런데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하릴없이 빈둥대고, 바다 위를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비밀스럽게 변화하는 표정의 유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야. 그래서 너의 두 눈이 그렇게 맑은 거야. 너를 닮을 수만 있다면…….

토니오 크뢰거는 한스 한젠처럼 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소망은 진심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스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길 고통스럽게 갈망했다.(《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150∼151쪽)

세's pick

나와 닮은 사람과 반대되는 사람,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끌리시나요? 저는 지금이라면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 답하겠지만, 어렸을 때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갔던 것 같아요. 그때의 사랑은 질투와 동경, 때로는 열등감과 닮아 있었던 것 같고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주인공 희도는 첫사랑 상대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 너 질투해. 아니, 나 너 좋아해. 근데 너한테 열등감도 느껴. 넌 이게 무슨 소리 같아?" 

👀편집자 흄&세의 추천 콘텐츠👍

경계선Border(2019)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예요. 포스터부터 기묘한 느낌이 물씬 나죠?
영화는 남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 '티나' 앞에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남자 '보레'가 나타나며 시작됩니다. 티나는 보레를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죠.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기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고 쉽지 않은 영화인데요, 낯선 곳을 배경으로 한 아주 낯선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번 도전해보세요.  

✈️ 흄세 사진대회 개최 📸
다양한 나라/도시를 배경으로 한 시즌 2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지난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멋진 사진을 자랑해주세요.
-참여 방법: 시즌 2 작품에 등장하는 나라나 도시에서 찍은 사진과 소설 속 문장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휴머니스트세계문학 #흄세 #흄세사진대회)
-참여 기간: 7월 4일~7월 27일(수요일)
-선물: 문화상품권 5만 원(4명),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10명)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교보문고 광화문점 전시
7월 한 달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흄세 부스를 만나보실 수 있어요.
편집자 '세'도 빠르게 다녀왔는데요, 시즌 1과 시즌 2의 열 작품이 한데 모여 있는 걸 보니 흐뭇하면서도 차곡차곡 목록을 쌓아갈 앞으로가 두렵... 아니 기대되더라고요!😘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한번 들러봐주세요.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2. 이국의 사랑
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 김인순 옮김

007 그녀와 그

조르주 상드 | 조재룡 옮김

008 녹색의 장원

윌리엄 허드슨 | 김선형 옮김

009 폴과 비르지니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 김현준 옮김

010 도즈워스

싱클레어 루이스 | 이나경 옮김

 🎁 EV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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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추첨을 통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2명)과 휴머니스트 세계문학(2명)을 드립니다.
*당첨자는 다음 호에서 발표합니다.

지난 레터 당첨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이*아(9000), 문*윤(3725)
☕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안*윤(3006), 배*해(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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