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한 한국사회는 거대한 오디션 경연장 같을 때가 많았어요.

읽는 당신 x 북클럽 
w. 김정희원(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
공정과 능력주의:대안과 변화를 모색하기
안녕하세요. 〈시사IN〉 미디어랩에서 일하는 장일호입니다. 저는 책을 생각하면 조바심 나는 사람입니다. 황정은의 소설 〈디디의 우산〉(창비, 2019)에 실린 단편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화자처럼요. 책은 너무 빨리 절판 되기 때문에, 매 번의 독서엔 다음 책을 향한 조바심이 상당량 포함된다. 이걸 다 읽기 전에 그 책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래서 언제나 책을 사들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초과합니다. 또 여러 권을 동시에 들춰봅니다. 버스에서 읽는 책, 침대에서 읽는 책처럼 장소에 따라 읽는 책이 다르기도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처럼 감정에 따라 책을 고르기도 하고요. 웬만하면 끝까지 읽지만 모든 책을 끝까지 읽지는 않습니다. 책이 읽히지 않을 때는 완독에 집착하기보다 때와 시절을 기다리며 책끝을 접어 내려놓곤 합니다. 다른 책이 또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든는 방법〉(조애나 러스 지음, 박이은실 옮김, 낮은산 펴냄)은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책 중 한 권입니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창비, 2018)를 인상깊게 읽은 편집자가 제사 크리스핀의 다른 책을 찾기 위해 외서를 검토하다가 발견한 책이라고 해요.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든는 방법〉은 1983년 출간 됐다가 절판 됐던걸 2018년 제사 크리스핀이 서문을 덧붙여 복간 했고, 눈 밝은 편집자 덕분에 2021년 한국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사 크리스핀의 서문을 읽다보니 어슐러 K. 르 귄의 말이 생각났어요. "훌륭한 작가들이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종당하고 묻히게 둘 수는 없다."(〈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황금가지, 2021)

그리고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읽는 당신x북클럽 모임 풍경이 꼭 이렇겠구나'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을 만나 기뻤습니다. 이렇듯 요즘 제 독서의 한끝은 북클럽을 향해있답니다.
👉 글 속 생각은 말의 즉흥성은 잃지만 더 짜임새 있고 더 단단하게 고정되고 심지어 그것을 쓴 사람의 손을 과감하게 떠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한 작가로부터 출발한 생각은 다른 곳에 도착해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이들과 완전히 낯선 대화의 창구를 열고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한다. 그렇게 글로 표현된 하나의 생각은 다른 생각과 실타래처럼 엮이고 이어져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새로운 삶의 요람이 된다.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든는 방법〉(조애나 러스 지음, 박이은실 옮김, 낮은산 펴냄) '옮긴이의 말' 중
바로 내일이죠. 4월1일(목) 오후 7시30분에는 김정희원 교수를 모시고 〈공정하다는 착각〉 북토크를 진행합니다. 강의 제목은 '공정과 능력주의:대안과 변화를 모색하기'입니다. 

저 역시 '능력주의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새삼스러운 고백을 해봅니다. 제가 경험한 한국사회는 거대한 오디션 경연장 같을 때가 많았어요. 20대를 돌아보면 인정받기 위해, 탈락하지 않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불안을 이불처럼 덮고 잠들곤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 공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정성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그런 측면을 더 강화하고 있다는 걸 얼마 전 〈페미니즘 라이프스타일〉(반비, 2021)을 읽다가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젠더와 능력주의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한 부분 나누고 싶습니다.  
👉 여성들의 능력주의 신화가 견고해지면, 여성이라서 못 할 것이 뭐가 있느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죠. 나아가 자신이 성차별이나 성희롱 등을 당하지 않을 유일한 길은 일로 자신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어, 과로하고 자기 스스로 일에 종속된 삶을 기꺼이 수행하다가 탈진하는 여성들이 늘어납니다. 이 여성들이 기대는 건 '아무리 사회가 지저분하고 여성 차별을 해도 능력은 인정해줄 거야. 내가 능력을 발휘해서 회사에 공헌하면 인정받을 거야'라는 믿음입니다. 남자들보다 능력주의 신화를 더 믿습니다. 페미니즘 라이프스타일〉(김현미 지음, 줌마네 기획, 반비 펴냄)

강의를 앞두고 〈공정하다는 착각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그래서 어떤 질문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고였는지 궁금합니다4월1일(목) 오후 7시30분 열릴 두 번째 북토크 질문을 받습니다. 나누고 싶은 의견도 좋습니다. 북토크 질의응답은 사전 질문을 우선합니다. 💬 질문 남기기 
💌 한국사회학회와 〈한국일보〉의 '불공정 사회' 공동 기획에 김정희원 선생님이 대담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셨다고 해요. 아직 온라인에는 기사가 릴리즈 되지 않아 뉴스레터에 첨부하지 못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북토크가 끝나고 다함께 책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것,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기록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 3월4일 북토크 하이라이트 영상과 그밖에 더 읽어볼만 한 글을 아래 소개합니다. 

공정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질문이다. 때로는 세대 차를 확인하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ㅣ박태주(노동 연구자) 
"관계적 존재론의 핵심은 단순히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나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 있다’ ‘모두가 모두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ㅣ김정희원 교수(〈경향신문〉 2021년 1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