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심 ∥오월의봄
한참 전의 일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인혁당 사건 재심 준비를 도왔다. 내가 맡은 일은 한자와 한글이 섞인 조서들을 변호인과 재판부가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통일해서 정리하는 일이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1974년 4월 9일 8명의 관련자가 사형판결 하루만에 사형을 당하였고,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사건 관련자들의 조서들을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의문이 쌓여갔다. “어떻게 수년전의 일까지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이 하나도 헷갈리지 않고 여러 명의 기억이 모두 똑같을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했다.
모진 고문을 가해 모두의 말을 맞추게 만든 것이다. 책<탈북 마케팅>을 읽으며 그 때가 떠올랐다. 방법만 좀 덜 잔인해 보이는 것처럼 바뀌었지 본질이 달라져 있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 ‘자유의 땅’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 그리고 차별과 배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 또한 이 부분을 꼬집는다. 저자는 탈북민들이 북한을 떠나오는 순간 ‘국가’라는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망명자가 되는데, ‘또 하나의 조국’이 되어야 할 대한민국은 그들을 ‘탈북 마케팅’에 이용하는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며 의구심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