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스물두 번째 흄세레터
님이 알고 있는 가장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나니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어요. 어떤 사랑이 비극적인 사랑일까?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서로 같은 마음을 지니고도 헤어져야만 하는 것? 불타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것? 아니면 한없이 사랑했던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게 되는 것? ......이 정도 되면 모든 사랑은 어느 정도씩 비극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그래도 가장 비극적인 건 미완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폴과 비르지니》처럼요. 오늘 레터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자연 속에서 사랑하고 성장하는 폴과 비르지니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편집자 흄&세가 고른 장면과 추천 콘텐츠까지 재밌게 읽어주시고, 다음 레터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맨 아래 '피드백 남기고 선물 받기' 버튼을 통해 알려주세요! 😘

《폴과 비르지니》 미리보기 1


“구하러 가게 내버려두세요, 아니면 죽어버릴 거예요!”


절망이 그에게서 이성을 빼앗은 것을 보고, 그의 목숨까지 잃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맹그와 나는 그의 허리띠에 긴 밧줄을 묶고 그 끝을 붙잡았네. 그런데도 폴은 헤엄을 치기도 하고, 암초를 발로 박차기도 하면서 생제랑호를 향해 뛰쳐나갔지. 폴은 몇 번인가 배에 다다르리라는 가능성을 보기도 했네. 바다가 불규칙적으로 요동치면서, 사람이 걸어가서 살필 수 있을 정도로 배를 거의 뭍 가까이 올려주기도 했거든. 그러나 곧바로, 전에 없이 맹렬하게 되돌아온 바다는 궁륭처럼 솟구쳐 어마어마한 높이의 물기둥으로 배를 뒤덮었고, 결국 선체 앞부분을 모두 들어 올리면서, 불쌍한 폴까지도 해안으로부터 아주 멀리 되던져버렸다네.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가슴에는 멍이 들어, 반은 익사한 것이나 다름없었지. 이 젊은 친구는 감각이 되살아나자마자,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새로 열의를 불사르며 배로 돌아갔지만, 그러는 사이 바다가 그만 끔찍한 타격을 가해 배를 반쯤 갈라버렸네. 그러자 모든 선원들은 배를 구해내리라는 희망을 버리고는 우르르 몰려들더니 바다로 뛰어들어 활대며, 판자며, 닭장이며, 식탁이며, 술통이며 가릴 것 없이 올라탔지. 바로 그때 영원한 연민을 받아 마땅한 대상이 보였네. 한 젊은 아가씨가 생제랑호의 선미 복도에 나타나더니,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사람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어. 비르지니였네. 그녀는 폴의 용맹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정인임을 알아보았지. 그토록 사랑스러운 사람이 너무나 참혹한 위험에 처한 모습을 보고, 우리는 고통과 절망에 휩싸였네. 그런데도 비르지니는 고귀하고 당당한 태도로, 우리에게 영원한 작별 인사를 건네듯 손짓을 해 보였어. 선원들은 모두 바다에 몸을 던지고 없었네. 갑판에는 딱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는데, 그는 헤라클레스처럼 완전히 벌거벗고 몸에는 힘줄이 잔뜩 솟아 있는 사람이었지. 그는 공손하게 비르지니에게 다가갔네. 우리는 그가 무릎을 꿇더니, 비르지니의 옷을 벗기려고 부러 애쓰는 것까지 보았어. 하지만 비르지니는 위엄을 갖추고 그를 밀어내고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어.


“구해라, 그녀를 구하시오! 그녀를 버리지 마시오!”(168~169쪽)

흄's pick

편집을 하면서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읽었을 텐데, 매번 같은 지점에서 울컥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면서, 비르지니가 가라앉는 배에서 어서 뛰어내리길 그렇게 바랐는데요......😭

《폴과 비르지니》 미리보기 2


우리가 천생인연의 배필을 만난다는 귀한 행복이 아니고서야, 그다음으로 가장 불행이 덜한 삶의 형태는 어쩌면 혼자 사는 삶일 걸세. 인간을 향한 불평불만이 많았던 사람은 누구나 고독을 추구하게 마련이지. 자신들이 만든 사상이든, 도덕이든, 정부든 간에 그로 인해 불행해진 모든 사람들이, 고독과 독신에 전적으로 삶을 바치는 시민계급을 숱하게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야. 쇠퇴기의 이집트인들도, 동로마 제국 시절 그리스인들도 그랬지만, 또한 오늘날의 인도인들이나, 중국인들, 현대 그리스인들, 이탈리아인들, 그리고 유럽 동부 및 남부의 대부분 민족들도 마찬가지라네. 고독은 사회적 불행으로부터 인간을 멀리 떨어트려놓음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그를 자연의 행복으로 되돌려놓는 게야.


수많은 편견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 한복판에서, 영혼은 계속되는 혼란에 빠져 있다네. 야망으로 가득 차 비참한 사회에서 서로서로를 예속시키려는 구성원들의 견해를, 요란스럽게 법석이며 모순을 일으키는 그 수천 가지의 견해를 끊임없이 자기 안에 되새기는 거야. 그러나 고독 속에서라면, 영혼은 자길 괴롭히는 그런 이질적인 환상들을 버려버린다네. 자기 자신과, 자연과, 조물주에 대한 질박한 감정을 되찾게 되는 게지. 이와 마찬가지로 급류를 이루어 논밭을 황폐화시키던 흙탕물은 원래 흐르던 방향에서 비켜나 어느 작은 분지로 쏟아지듯 흘러들면서, 진흙은 강바닥 깊숙한 곳에다가 버려두고, 최초의 청아함을 되찾고 다시 투명해지니, 그렇게 본디 자신이 있던 기슭으로 돌아가 대지의 녹음과 창공의 빛을 반사하게 된다네. 고독은 육체의 조화뿐 아니라 영혼의 조화까지도 회복시켜주는 게지.


인생이라는 행로를 가장 멀리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그래, 계급적으로 고독한 자들 중에 나오는 게야. 인도의 브라만처럼 말이야. 요컨대 나는 이 세상 자체가 그 안에서의 행복을 위해서는 고독을 꼭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네. 그만큼 내적 고독을 스스로 만들어내 우리 자신의 견해는 빠져나가지 않고, 남의 의견은 결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 어떤 감정이든 거기서 지속적인 기쁨을 맛보기란, 혹은 어떤 굳건한 원칙에 입각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닐세. 인간은 가지가지 욕구에 의해 온 인류와 연결되어 있기에, 한 인간은 다른 인간들에게 자신의 업을 빚지고 있으며, 물론 남아 있는 자연에도 이바지할 의무가 있는 셈이지.(125~126쪽)

(*모바일상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문단을 나눴습니다.)

세's pick

저는 2n년 동안 '고독? 혼자만의 시간? 난 그런거 필요 없어!' 하고 지내왔어요. 언제나 북적북적,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은 상상하기 어려웠죠. 그러다 최근에서야 그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답니다. 전과 달리 요즘은 삶이 덜 자극적일수록 더 충만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꺾인 탓도...)  《폴과 비르지니》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삶과 자연에 대한 고찰을 제공하는 소설에 좀 더 가까운 듯해요.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고민이 있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오는 문장을 조언 삼아도 될 정도로요.😜

👀편집자 흄&세의 추천 콘텐츠👍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 맛집인 건 다들 이미 아시죠?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인데요, 다큐멘터리 감독인 '크레이그 포스터'가 대서양에서 암컷 문어를 만나 교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러닝타임은 85분으로 짧은 편이지만, 주인공이 1년 동안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 문어를 관찰하며 느낀 마음만은 오롯이 전해지는 듯해요. 여기저기서 추천은 받았는데 자극적인 콘텐츠에 미뤄왔다면, 이번 주말에 어떠세요?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2. 이국의 사랑
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 김인순 옮김

007 그녀와 그

조르주 상드 | 조재룡 옮김

008 녹색의 장원

윌리엄 허드슨 | 김선형 옮김

009 폴과 비르지니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 김현준 옮김

010 도즈워스

싱클레어 루이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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