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교육석학 바실리 수호믈린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어떤 사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들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처럼.”
과연 우리는 학교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는가? 교육을 미사어구로 포장하는 어른들의 말과 다르게 우리 학교의 현실은 암담하다. 내신으로 줄 세워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빛을 내지 못한다. ‘성적’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학생의 가치가 줄 세워지기 때문이다.
상위권 학생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중위권 학생은 더 열심히 해야 올라갈 수 있다는 노력을 강요받고, 하위권 학생은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혀 열등감에 빠진 채 살아간다. 한 번 실패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기에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시험이 끝나면 의식적으로 옆 친구와 성적을 비교하며 속으로 불안에 떠는 본인을 볼 때면 너무 힘들고 부끄럽다. 우리는 왜 이렇게 12년을 살아가야 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른들의 손쉬운 선발을 위해 만든 상대평가 시스템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었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 학생이 행복하지 않은 학교에 미래는 없다.
학교에서 하는 말은 위선이다.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들겠다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마련하겠다고, 국가가 책임지고 안전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옆 친구를 이겨야 잘 했다고 평가받고, 잘 하지 못한 이들은 학교에서 낙오되고 소외된다. 이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은 공부라는 무기를 통해 살아남는 생존경쟁의 하루를 살아낸다. 아무리 좋은 교육 제도가 마련되어도 근본적인 평가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학교는 행복한 곳이 될 수 없다. 상대평가제로 인한 경쟁 교육은 학생들의 학습권 뿐 아니라 행복추구권까지도 침해하게 된다.
그동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모두가 방관했던 경쟁교육의 고통을 토로하고, 이 상대평가 시스템을 고발하고자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참담한 현실을 묵인하지 않겠다. 배움의 주체로서 이 세상에 우리의 목소리를 외칠 것이다.
우리는 몇 등급짜리의 ‘누군가’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이길 원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옆 친구를 이기고 성공하는 법이 아닌, 함께 손잡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원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한 인재가 되기 전에, 현재를 나답게 즐길 수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살기 위한 생존경쟁 없이, 하고 싶은 것과 꿈꾸는 것을 배우길 원한다.
우리의 희망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상대평가 제도에 대한 위헌 선언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배움의 주체로서 용기 내어 세상에 외친다.
“경쟁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고통받게 하고, 배움의 본질을 훼손하는 상대평가제 위헌”
2022. 12. 06.
대입시 상대평가 위헌을 선언하는 학생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