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너무 신기했어요. 옛날에 책(자연샘은 『청년 연암을 만나다』의 공동저자 중 1인)을 냈을 때는
얼떨떨하고 부끄러웠는데, 편집한 책이 나오는 건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편집할 때 저자 선생님의 글이 책으로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는데요. 그런 마음으로 작업하다가 책이 출간되니 기쁘네요.
민주) 언니는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며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러다가 어떻게 북 에디터를 하게 된 것인가요?
자연) 저는 여기서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 말은 곧 공부가 곧 일상이 된다는 것인데요. 근데 제가 결혼도 했고 임신도 하게 됐잖아요. 이제 연구실에서 상주를 하며 공부할 수 없는 배치가 된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공부와 일치되는 일상을 꾸릴 수 있지?’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선생님들처럼 당장 이 공부로 강의를 하거나 책을 써서 밥벌이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마침 북에디터스쿨이 열렸어요. 그렇게 강의를 듣게 됐고 인턴까지 하게 됐죠. 타이밍이 좋았어요.
민주) 언니는 독자로도, 작가로도, 편집자로도 있어 봤네요? 각각의 위치에 있을 때 책에 접근하는 관점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요?
자연)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가 제일 답답한 것 같아요. ㅎㅎ 어떻게든 읽어야 하는데 뭐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고 막막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무언가를 생산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러니까 읽을 때도 그다음 단계를 염두에 두고 읽어요. 어떻게든 한 발이라도 책에 더 다가가서 읽게 돼요. 그래서 쓰기를 위한 읽기는 밀도가 높은 것 같아요.
편집자는 관점이 가장 많이 다른데요. 편집하면서 책을 읽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는 책과의 거리 조절이 잘 안됐던 것 같아요. 계속 책에 밀착해서 읽으려고만 했어요. 그런데 책을 편집하려면 책 전체 주제도 봐야 하고, 전체 컨셉에 잘 맞는지도 봐야하고, 책의 논리적 흐름도 봐야 해요. 근데 그럴 때는 책과 거리를 두고 읽어야 해요. 그러다가 또 세세하게 읽기도 해야되죠. 문장 하나하나, 단어의 어감이나 맞춤법 같은 부분까지요. 계속해서 책과 거리조절을 하면서 읽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게 되는데 앞에 읽었던 걸 계속 잊어버려요. ㅎㅎ 그래도 다시 읽고 또 읽고 해야죠. 편집자를 하기 전에는 한 번도 이렇게 책을 읽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민주) 편집자의 읽기가 좀 더 궁금해지는데요.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자연) 편집자는 다양한 관점으로 책에 접근해야 해요.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지, 작가의 말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양한 입장에서 읽어보는 거죠.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요.
민주) 편집자가 책의 말들을 여러 관점에서 이해해보려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네요. 우리가 언제 한 번 타인의 말을 그렇게 이해해보려고 한 적이 있나 싶어요. 내 말을 하느라 바쁜 것 같아요. ㅎㅎ 어떻게 들릴지,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신경 쓰기보다도요. 들을 때도 저 사람이 저 말을 왜 하는 건지, 어떤 맥락 위에서 하는 건지도 별로 관심이 없죠.
자연) 지금은 두 번째로 여민샘의 책을 편집하고 있어요. [글쓰기 학교] 고전 평론반에서 공부하신 여민샘이 『금강경』으로 쓰신 책인데요. 새로운 책을 만나는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요. 저자마다 책을 쓰는 스타일이 다르고, 하는 얘기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편집자는 매번 새로운 상황과 맥락으로 들어가야해요. 친구들도 저마다 성향과 성격이 다르잖아요. 상대방이 이끌어줘야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얘기를 먼저 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편집을 하면서 ‘내가 이 전에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한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가 또 ‘내가 저자의 말을 너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ㅎㅎ 책과 거리가 너무 가까울 때 ‘나라면 이렇게 쓸 텐데,,,’하고 판단하게 될 때가 있어요. 오만한 거죠. 작가님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공부하셨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책과 거리를 너무 멀리 둘 때는 책이 그냥 다 괜찮아 보여요. 책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게 아직은 서툰 것 같아요. ㅎㅎㅎ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말 위에서 그 말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가 중심이에요. 이런 판단이나 고집들이 올라올 때 마음을 내려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민주) 편집자라고 모두가 공부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편집자는 어떤가요?
자연) 공부를 하지 않고 편집자가 직업이었다면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책을 편집하는 일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특히 더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새로운 주제의 책, 새로운 분야의 책을 만날 수 있고, 공부하는 사람들과 계속 교류할 수 있잖아요. 그 사람 덕분에 제가 또 그 주제나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기도 하고요. 계속 공부하는 환경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책을 편집할 때 선생님이 한 분 더 생긴 느낌이랄까요.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편집자가 너무 많은 것들을 해야할 것 같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공부하는 사람으로 접근하니 다 배울 거리에요. 공부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인 거죠.
민주) 북에디터스쿨 강의가 탄생된 썰을 들었어요. 곰샘과 북드라망 대표님께서 공부하는 연구실 청년들을 위해 강의를 열게 됐다고. 청년들이 책을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실제로 강의를 들은 청년이 저(민주) 밖에 없잖아요.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관심은 있어 보여요. 근데 편집자의 길이 너무 어려워 보인다고 해요. 책을 편집하는 일에 대한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언니는 연구실에서 오래 공부를 해왔고, 직접 책도 써봤잖아요. 그래서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저희처럼 1,2년 공부한 청년들도 도전해볼 수 있을까요?
자연) 저도 아직 잘 몰라요. 일단 그냥 해보면 돼요. 편집자도 결국 책을 편집하며 경험이 쌓이는 거니까요. 선생님들은 그 길을 열어주신 거고, 이게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돼요. 공부하는 삶을 살면서 자기 일상을 꾸려야 하잖아요. 그리고 다들 어떻게 꾸릴지, 어떤 일을 할지 고민을 하고요. 그런데 밖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노동량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공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사람이 배치가 달라지면 다른 마음들이 올라오고 또 다르게 살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책을 편집하는 일이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기에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일상과 삶이 연결되기에 좋잖아요. 그냥 북에디터에 도전해보세요. 다른 스킬들보다도 작가님의 책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년 상반기에 북 에디터스쿨 강의가 또 열리니 많은 청년이 도전해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