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 #천현우 #주말에뭐읽지 #시사인

💌   2021년 10월21일 76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신선영 
대학생 아닌 20대가 있을 자
허태준 지음, 호밀밭 펴냄

20대가 공정에 민감하다고들 한다. 취업준비생과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의대생들이 공공의대에 분노해 거리로 나서며, 대기업의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노동조합을 만든다. 세상은 ‘청년’들의 이런 목소리를 집중 조명한다.
이 체제에서 거의 죽음으로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존재들이 있다. 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던 이민호 군은 생수 만드는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다. 제주도교육청은 사고 20일 만에 사과했다. 이석문 제주도 교육감은 공식 입장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당시 이렇게 말했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수능에 모든 행정력이 집중되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나 졸업생의 이야기는 주로 언론 보도나 작가의 기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왔다(〈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중에서).” 이 책은 죽음으로만 호명되는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당사자가 직접 써내려 간 기록이다. 저자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3년7개월 근무했다.
르포보다 수필에 가깝다. 일하는 곳의 구체적인 조건보다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캔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환대해주는 거리에서 느낀 외로움, 산재 사망 기사나 영화 〈설국열차〉를 보며 든 생각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솔직하고 내밀하게 적혀 있다. “누군가가 안정감을 느끼는 울타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닌 이십 대가 있을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이들이 저마다 높은 울타리를 쌓아두고 ‘넘어오지 말라’며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이 땅에서, 저자의 낮은 목소리가 숙제처럼 마음에 남는다.
- 전혜원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논증의 탄생
조셉 윌리엄스·그레고리 콜럼 지음, 윤영삼 옮김, 크레센도 펴냄
“최선의 형태로 발현될 때 논증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합리적 결과에 도달하는 수단이 된다.”
누구나 글 쓰는 일을 어려워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전문 작가들마저도 ‘새하얀 백지 앞의 공포’를 고백하곤 한다. 설득하는 글쓰기는 더욱 어렵다. 타인의 사고를 예측하고 자신의 명확한 논리를 내세워야 한다. 이 책은 설득력 있는 논증을 위한 실용적 지침을 700여 쪽에 담아냈다. 특히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를 어떻게 볼지 짐작하고, 그 시각에 따르는 서술을 먼저 쓴다. 이후 차근차근 이 생각을 뒤집어가는 게 기본기이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 자세히 보기 >>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
이병한 지음, 가디언 펴냄
“절박함과 절실함으로 인류는 재차 빛을 발하고 있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는 말이 쓰인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큰 악영향을 끼치며 거대한 변화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전의 지질학적 시대와 달리 이 시대는 단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기를 절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통과 소비의 변화를 꾀한다. 
저자가 변화의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기업 CEO들이다. 환경과 기술 간의 갈등이 아니라 융합을 전했다. 태양광과 스마트팜부터 미생물을 활용한 농업기술, 해조류 부산물로 만든 대체 플라스틱까지 친환경으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책 자세히 보기 >>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
에이미 거트먼·조너선 D. 모레노 지음, 박종주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생명윤리학은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무한히 건설적이다.”
이 책 제목은 미국 블루스 곡에서 따왔다. 오바마 행정부 ‘생명윤리학적 쟁점 연구 대통령직속위원회’에서 활동한 저자들은, 이 제목이 미국 사회가 사후의 삶을 바라보는 모순적 방식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누구나 건강과 장수를 원하지만 그 수단 가운데에는 논쟁적인 것이 많다. 의료보험, 공중보건 등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유전자공학, 말기 의료, 장기기증 등 윤리적 문제도 피할 수 없는 난관이다. 책은 각 쟁점을 두고 어떤 논박이 펼쳐져왔는지 정리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을 들어 다른 주장을 논파하는 책은 아니다. 오직 ‘시민성’만을 덕목으로 제시하며,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적는다. 책 자세히 보기 >>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찰스 화이트필드 지음, 김세영 옮김, 
빌리버튼 펴냄
“상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지만, 너무 자주 겪기 때문에 무심코 간과해버리기 쉽다.”
저자는 트라우마 치료의 선구자로 꼽히는 미국 정신의학 전문의이다. 1987년 처음 나온 이후 이 책은 1300만 부 이상 팔렸다. 오늘날 사람들은 40년 전에 비해 트라우마라는 개념에 더 익숙하다. 책은 다양한 임상 경험을 통해 ‘자아’를 잃어버리는 과정을 전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감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솔직한 감정을 회피하게 된다. 거대한 사건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상처도 아이에게는 영향을 준다. 부모가 아이를 농담거리로 삼거나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약속을 어기는 것도 오래도록 남는다. 책 자세히 보기 >> 
책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 일이 그렇겠지만 대형서점의 일은 보기보다 그리 우아하지 않다. 제 차례를 기다리는 신간이 매일 200권씩 쌓이고, 수많은 굿즈 제작 후유증으로 물욕을 잃고, 박스를 날라 땀에 전 꼬질꼬질한 행색으로 미팅에 간다...(중략) 그런데도 왜 서점인들은 휴일에도 서점을 어슬렁거리고 휴갓길에도 ‘가보고 싶은 서점지도’를 만들며 설레는가. 대체 서점을 향한 이 지긋지긋한 순정은 어디서 나오는가." 대형서점 직원이 털어놓는 일의 기쁨과 슬픔.

광화문 교보문고, 그 어딘가에 '순정남'이 있다 기사 전문 보러가기 >>
일교차가 심했던 지난 한 주 어떻게들 지내셨나요?
어둠이 내리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지는 이즈음,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과 수원역 로데오광장, 전남 여수시청 앞 등지에서는 같은 현수막을 내건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7살 여수 현장실습생 고 홍정운님을 추모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진행되는 추모집회가 그것인데요.
<시사IN> 이번호 기사(깊은 물 무서워 했는데, 정운이는 왜 바닷속으로 들어갔나)에도 실렸듯 지난 9월27일 여수의 한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인 홍정운군이 S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요트업체 대표가 잠수부 작업 비용 20만~100만원을 아끼기 위해 잠수 관련 자격증도 없는 홍군을 바닷속으로 내려보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가 막힌 죽음 앞에서 특성화고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죠. 그렇지만 며칠 전 나가 본 추모집회 현장은 쓸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저희는 안전하고 좋은 일자리에 일찍 취업하고 싶어 특성화고에 진학한거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자 특성화고에 온 것이 아닙니다(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라는 외침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지, 곁에서 지켜보는 제가 다 애가 타는 심정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의 삶은 죽음으로만 호명돼야 하는 것일까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오늘의 추천 책처럼 특성화고를 다니거나 졸업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기록들이 모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요즘 마산 지역 청년 노동자이면서 ‘쇳밥일지’ ‘시사용접소’ 등 노동 칼럼을 쓰고 있는 천현우씨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는데요. 본인의 홈트 사진부터 특성화고 재학 시절 에피소드까지, 그가 시시콜콜 올려놓는 일상을 훔쳐보며 문득 깨닫곤 합니다. 제가 이들의 삶을 얼마나 납작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요. 
오늘의 추천 책을 쓴 허태준씨는 몇 달 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야 ‘세상에 공장이란 곳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넘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는 곳에서 일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거였죠. ‘주장’은 반대되는 주장을 낳지만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는 그의 주장에 적극 공감하며, 이번 주말은 읽다 만 이들의 책과 칼럼부터 다시 한번 챙겨볼까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대는 당사자들이 꺼내놓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테니까요.
       
[광고]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그래도 고맙습니다


“아픈 삶도 삶이라는 것,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 죽음의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않는 것. 기대 수명의 연장과 함께 마주해야 하는 분명한 사실을 차분히 준비해온 사람들의 이야기. 앞장서서 고민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hun****)
 
“자녀들이 먼저 읽고 추천해준 책입니다. 제 또래 5060세대뿐만 아니라 2030세대도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을 읽고 우리 사회 죽음에 대한 쟁점을 확인했고, 그 대안을 고민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young*******)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를 읽고 난 독자들이 인터넷서점에 남겨주신 후기입니다. 책이 하고 싶은 얘기를 간파해주신 독자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죽고 싶은가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내 생애 말기 돌봄을 보장할까요?

호스피스 의사와 의료인류학자 그리고 기자들이
죽음을 어려운 일로 만드는 삶의 조건들을 두루 살펴봤습니다.
죽음에 관한 각자의 내밀한 경험이 더 많은 보편의 이야기로 나눠질 때,
삶도 조금은 덜 잔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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