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의 소개 문구는 '영감을 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쓸모를 떠나 다양한 분야에서 느낌표를 줄 수 있는 글을 표방합니다. 사실 인스피아를 처음 시작할 때 책만 중심적으로 다루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만, 반짝이는 영감을 위해선 역시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고 여전히 양질의 압축된 사고가 남아있는 매체는 책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책은 꽤 가성비가 높은 콘텐츠입니다. 이를테면 워런 버핏과의 한끼 점심 식사가 50억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의 평생 생각을 모은 책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이죠. 심지어 책은 셰익스피어나 공자처럼 수천년전 죽은 위인의 생각조차 들여다볼 수 있게 합니다.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나'를 위해 몇년 밤을 새가며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면 책을 보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만은 않을겁니다. 그리고 저자 뿐 아니라 그 책을 발굴해서 기획, 출판한 이들의 노고까지 생각한다면 작은 한권의 책은 정말 만만치 않은 노력의 결과인 셈이죠. 

책에는 대체로 억울한 누명이 씌워져있습니다.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건 재미없는 사람 취급당하기 딱 좋은 일입니다. 한 대기업 자소서 꿀팁에선 취미란에 절대 적지 말아야할 취미 중 하나로 독서를 꼽기도 했는데요.(그 대신 꿀팁의 작성자는 '외향적이며 역동적인 취미'를 적으라고 조언했습니다. 승마나 단체로 뛰기 같은거요.) 

하지만 단지 책을 볼 때 자리에 앉아서 대체로 떠들지 않고 종이를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역동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하는 건,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머리를 흔들며 막대기 휘젓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내용이죠. 십수년간 지옥의 수용소에서 버텨 살아남은 사람의 소설, 현대 중국 역사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의 전기, 외과 의사의 사투를 담은 책을 읽는 건 과연 현실감각이 적은 '고루한' 일일까요? 

책을 읽는다는 건 곧 지식에 접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건 사실상 잘 쓰여진 논문, 기획기사, 칼럼, 에세이, 인터뷰, 보고서, 다큐멘터리, 유명 학자 강연 등을 갈무리해 효율적으로 읽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실제로 많은 책들이 '원소스 멀티유즈'를 예전부터 적극 활용해왔죠. 일단 제가 지난 레터에 소개했던 책들 가운데 몇가지 예를 들자면 헤더 로저스의 <사라진 내일>은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고, <지구의 밥상> <밥상 위의 세계>는 경향신문 기획 연재 기사를 엮은 것이었으며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한겨레에 연재된 에세이를 모은 것입니다. 최근 흥미롭게 본 신간 가운데 이소진씨가 쓴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서평)은 저자가 쓴 논문을 직접 체험, 인터뷰 등으로 보완한 '책'입니다.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관심가는 모든 신문과 잡지, 논문 등을 모조리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알짜를 골라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다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주제에 따라 영화나 다큐멘터리, 만화 등 다양한 소재를 적극 활용할 예정입니다.  

책은 겸손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민폐니까 노키즈존이 필요하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차별받아 마땅하다" SNS, 뉴스, 댓글창에는 '쉽게 쓰여진' 주장들이 많습니다. 한편 잘 쓰여진 한권의 책은 책임감있는 한마디를 하기 위해 수백페이지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비효율성'이야말로 우리가 사안을 더 깊은, 다른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프간 여성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외신을 베껴오는 대신 아티크 라히미의 <인내의 돌>을 인용하고, 광복절을 앞두고 정치인이 SNS에 올린 한마디 기사보다도 헨미 요의 <이쿠미나> <먹는 인간>을 인용할 수 있는 그런 곳, 그게 제가 소박하게 꿈꾸었던 '인스피아'라는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취지가 얼마나 잘 살려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연구자님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지만요. - 향후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구상 중입니다만,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이런 겸손함과 비효율적인 자세만큼은 지켜가려고 합니다.

 

글 거리가 금방 떨어지지 않을까? 처음에 인스피아를 시작할 때는 조금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우리가 (조금 어설프나마) 각자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면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은 없으니까요! 때로는 사안을 그저 재미로 엉뚱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옆길로도 샐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고 읽고 글을 쓰는 저는 '찐텐'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 이 즐거움이 조금이나마 연구자님들께도 전달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보통 시중의 책을 다루는 콘텐츠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간 소개 콘텐츠'가 대부분입니다. 구간을 소개하는 매체는 잘 없습니다. 사실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선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긴 합니다. 이 책을 이 시점에 소개해야하는 이유마저도 명확합니다. "지금 나온 책이니까 소개한다" 

그럼에도 인스피아에서 비교적 구간을 많이 다루는 두가지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은 유통기한이 찍힌 우유가 아닙니다. 오래되고 절판된 책이라고 해서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까지 고루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제가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인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란 책이 있는데요. 그 책은 사실 1986년에 쓰여진 해리 프랭크퍼트의 철학 에세이가 2005년에 뒤늦게 출판되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2016년 발간되었으며 저는 그 책을 작년에 우연히 발견했고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에 대해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번역서도 국내에 2017년 출간된 책인데, 현지 출간 시점은 1989년이더라고요. 

SF소설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라면 국내 최신작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테지만 옥타비아 버틀러나 칼 세이건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겠죠. 그리고 로마 사상가인 세네카의 책은 심지어 거의 2000년 전에 쓰였는데도 나중에 읽어보신다면 깜짝놀라실겁니다. 사실상 최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들의 핵심 내용들과 크게 차이가 없을 뿐더러 훨씬 더 깊고, 마음을 치는 내용이 많거든요. 즉, 대다수의 대중 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이 책이 새로나왔기 때문에 이 책을 보세요'라는 접근보다는,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 주제들에 대한 책을 읽어보세요'라고 내용 위주의 접근을 하는 것이 더 친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책을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신간을 계속 구입하고 훑어보고 있지만 사실 신간을 주체적으로 읽는 건 꽤 노력과 시간·돈 낭비, 책을 가려내는 능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왜냐면 그 책들의 홍수-그리고 광고의 홍수를 뚫고 어떤 책이 괜찮은지 분별하는 판단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구간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비판적으로 읽은 후기나 논문들을 찾기도 좋고 훌륭한 교수님이나 전문가, 학자들의 입체적인 서평을 곁들여 읽기에 좋습니다. 특히 번역서들의 경우 엄청난 수준의 비판적인 해설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통상 '추천사'들만 적혀있는 국내 신간에 비해 책을 주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든든한 길잡이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없는, 덜 좋은 책'을 거르기도 수월합니다. 저 같은 초보가 엄청난 책들의 숲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구간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넓고 삶은 유한하며 읽지 말아야 할 책은 많습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자면, 구간은 인기있는 신간에 비해 도서관에서 빌려보기가 수월합니다. 저는 살림이 크게 부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은 꽤나 비쌉니다. 저는 가계부에 항상 책 이름까지 적습니다. 덮어놓고 사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하거든요. 그런데도 매달 식비보다 도서구입비가 더 많이 나옵니다. 둘 장소도 문젭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같은 '도서관 무용론'자가 되기 위해선 한번 서점을 돌 때 50만원(5만엔) 정도는 써버리겠다는 각오와 자신의 서가를 고양이 빌딩으로 만들 수 있는 재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책겔지수'로 운을 띄운 이유는 제 배고픔을 뽐내려는 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섭니다. 저는 대학생, 취준생 시절 책을 사볼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책을 고를 때 일부러 헌책방이나 몇년 전에 출간된 서평 잡지 등을 뒤적여 읽을 책을 찾아냈습니다. 제가 신간들을 위주로 읽지 않은(혹은 못한) 이유는 신간은 무조건 사서 봐야했기 때문입니다. 언론사가 소개하는 유명한 작가의 최신간은 항상 도서관에서 예약 초과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심이 가는 신간을 족족 모두 사모을 돈도 없고 그것을 둘 장소도 없습니다. 신간, 남들이 다 보는 베스트셀러에서 조금만 눈길을 돌려도 도서관은 '내가 보고 싶은 책은 얼마든 읽을 수 있는' 소중한 보물창고입니다. 

한때 SNS에서 "작가님 도서관에서 책 빌려서 잘읽었어요"라는 말이 너무 싫다는 이야기가 돈 적이 있었는데요. 일견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만한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자격이 없어!라고 외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결국 독서 인구의 저변이 넓어져야 책을 한권이라도 더 사서 보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참고로 지난해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48%가 1년에 종이책을 한권도 안본다고 합니다. 서점에 앞서 도서관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빌려본 책이 100권정도 되면 그중에 곁에 두고 사랑하고 싶은 책이 몇권쯤은 나오겠죠.

그리고 만약 한해에 '재미난 책'이 100권 나온다고 치면, 예를 들어 1980년부터 2020년까지 나온 책과 2021년 한해에 나온 책 중 '재미난 책'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옛날에 나온 책 중에 몰라서 못읽을 뿐, 재미난 책이 있는걸 알면 얼마든 빌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스피아에 소개할 책들을 준비하면서 어떤 주제에 대한 책을 막연히 읽고 싶긴 하지만 도서관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도 소박하게나마 자임하고 있습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 보존서고에 들어있을 만한 책이 어떤 것들이 있을지를 대충 알게 되고, 그곳부터 시작하는 점들을 그려놓기만해도 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인스피아를 준비 할 때 저는 웬만하면 한번에 두권 이상씩 동시에 책을 읽는 편입니다. 그 쌍은 다양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한 주제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을 다루는 책, 같은 작가의 과거 책과 현재의 책, 혹은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 책 등입니다. 

이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 코끼리를 여기저기 만지는 것을 통해 코끼리를 느끼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데요. 코를 만졌다가 다리도 만지면 머릿속에서 쪼글쪼글하고 길쭉한 세탁기 물호스같았던 이미지가 '이런 퉁퉁한 기둥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군'이라고 확장될 수 있겠죠. 만약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책만 읽는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코끼리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마추어의 독서·자료찾기란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깊게 읽는 것을 통해 '한끗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논쟁적인 사안에 대한 기사나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해묵은 논쟁을 볼 때면 참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요. 논의는 항상 돌고 돌고, 세상은 한톨 바뀌지도 않는 것 같고. 완전히 '절망편' 그 자체입니다.

그럴 때마다 '프로해찰러'인 저는 공상하곤 했습니다. 만약 내가 시간이 진~짜 많아서 관련한 다양한 훌륭한 책들을 읽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어차피 인용할거라면 타사 기사, 마감 직전 급하게 전화 돌려 따낸 '업계 전문가'의 한줄 인터뷰 말고 진짜 이 시대의 논쟁, 고민거리들에 대해 깊게 고민한 좋은 책이나 다큐멘터리, 소설 등을 진지하게 살펴본 뒤 글쓰는 데 참고할 수 있다면 어떨까 등의 '공상'이요. 그걸 알기 쉽게 정리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한끗 다른' 생각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만약 비슷한 일이 나중에 또 터지게 된다면 다들 조금은 더 나은 논쟁을 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물론 이런 무지 기특한 생각만 한 건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재미로 더 파고 들고 싶은 경우도 많아요. 어떤 것이 궁금해서 찾아보는 위키피디아만 해도 굉장히 각주가 많잖아요. 예를 들어 저는 한때 먹는 것에 푹 빠져서 모든 레시피며 음식책을 닥치는대로 읽었었는데요. 이를테면 한끼에 2000원 밥상차리기부터 시작해서 분자요리, 음식인문학, 문화인류학, 농업경제학 책까지 가리지 않고 읽어내려갑니다. 교외 피크닉가는 길에 고속도로 한번 잘못탔다가 부산 가는 수준의 해찰입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처음에 어떤 목적을 품고 읽었던 책들보다도 해찰하다 읽은 책들이 막상 더 재밌더라고요. 완등을 목표로 산에 올라도 어쩌면 더 기억에 남는 건 길을 가다 먹은 도시락이나 풀꽃일 수 있듯이요. 

즉, 저의 소심함으로 인해 미괄식이 된 이 질문에 대한 핵심 답은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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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회사 차원의 굉장한 철학과 투자가 있어서 자율성을 보장해준다기보다는, 일단 윗분들이 제가 뭘 하는지에 대해 놀라울만큼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네...👤(그림자 수준의 존재감)

그런데 이런 '뭘 하는지에 관심이 없는' 상태는 그간 저희 회사가 꾸준히 '쓸모없는' 뉴콘텐츠팀을 꾸려온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기도합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저는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에 속해있습니다. 이곳에선 현재 틱톡을 통해 1020 세대와 소통하는 국제뉴스 <암호명3701>, 여성서사를 다루는 버티컬 브랜드 <플랫>,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뉴스레터 <끼니로그>, 도시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농촌 등의 이야기를 다루는 <밭> 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미있는데 돈도 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면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썩 돈이 될만한 주제는 아닙니다.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다들 해야되는 일이 아닌 자기가 재밌어하는 주제들을 골랐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저는 잠깐 모바일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요. 여기서 과거 기사 중 오늘날짜와 같은 날 지면에 어떤 기사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그 중 하나를 소재로 잡는 <오래전 이날>이라는 코너를 돌아가면서 썼습니다. 인기도 별로 없고 쓰는 팀이 해체될 때쯤 코너도 어느새 없어지고 말았지만, 사실 저는 이때 옛날 기사들을 그저 읽어내려가는 게 꽤 재밌었어요. 저는 항상 머리(1면)가 아니라 문화면이나 생활 기사들이 실린 뒤쪽에서 기삿거리를 찾곤 했습니다. 꼭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올만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기자가 개인의 욕심과 열정을 쏟아부은 기사들이 지금 읽어도 재밌더라고요. 예를들면 '똥개 등의 견공'들을 데리고 와서 '미친개병' 예방주사를 맞히는 어수선한 풍경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어놓은 1960년대 기사라든지, 1980년대 초 국내 레코드업계의 불황 풍경을 상세하게 담은 기사라든지요. (저는 분명히 그 기사를 쓰신 선배들도 '쓸데없는' 포인트에 열정을 쏟았기 때문에 그런 기사를 남길 수 있었던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당장 크게 중요해보이진 않아도 먼 훗날에도 계속 읽힐 수 있을만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저는 이 세상이 아무리 많이 바뀐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만큼은 가장 나중의 나중까지 기계화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핵심엔 글을 읽고 쓰고 작당하고 그저 자신의 마음을 때리는 것에 몰두하고, 돈 안돼도 쓸데없이 노력을 쏟고, 멍하니 즐기는 게 즐거운 사람들의 쓸모없는 열정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어떤 책, 기사든 창작자가 그 순간에 콘텐츠에 대한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책값-이상의 자신의 쓸모없는 취향과 열정을 쏟아붓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대충 무책임하게 인터넷에서 베껴와서 내것인척해도 되는데) 굳이 수십년 전 문헌을 뒤지고, 눈을 사로잡는 제목을 위해 운율이 맞는 단어를 생각해내고, 좋은 필자를 발굴하고, 올바른 통계인지 한번 더 전화해서 확인하고, 진위를 살펴보고, 현장에 직접 가보고, 숫자를 한번이라도 더 체크하고 그런 순간들이요. 그런다고 누가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리 '기레기'라고 해도 저는 여전히 언론사는 기본적으로 쓸모없는 것에 열정을 불사르고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니려고 하는 미련퉁이들이 꽤 많이 모여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국내 언론 플랫폼 생태계 및 방치된 저작권 이슈, 그에 대응하지 않으려는(못하는) 조직 요소 등이 그런 바보스러움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할 뿐이죠. 그럴거면 그냥 어설프게 줄창 떠밀리느니 차라리 바닥에 누워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요.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