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 #책방산책 #발터벤야민

[주말에 뭐 읽지]  2021-04-01 #50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산책길에 문득 들른 그곳

윤미애 지음, 문학동네 펴냄

지난해 3월 나는 곧 출간될 책 〈서점의 말들〉 원고 마지막 부분을 다듬느라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책은 서점에 관한 내용이면서 한편으론 그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손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점이라고 하면 인터넷서점도 있지만 진짜 서점은 ‘머리나 심장이 아닌 온몸으로 밀고 나가’ 만나야 하는 곳이다. 이런 생각에 닿았을 때 내 관심은 실제로 몸을 움직여 방문하는 서점과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 기울었다. 중요한 것은 마우스를 클릭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말하자면 ‘책방 산책’이라고 할까?

그런 이유로 서점에 가면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산책’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자주 살펴보곤 한다. 산책을 주제로 쓴 책은 적지 않다. 고전이 된 루소의 책부터 디킨스의 유유자적 걷기 여행, 산책을 좋아했다는 일본 작가 나가이 가후의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엔 보들레르라는 ‘시인 산책자’가 유명하다. 파리 시내를 걸었던 보들레르의 산책을 떠올린다면 뒤이어서 발터 벤야민이 따라 나온다. 때마침 벤야민 연구자인 윤미애 교수가 쓴 책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를 만났다. 벤야민의 산책에 대해서는 파편적으로 이런저런 책들에 많이 들어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그런 내용을 다룬 책은 없다.

벤야민이 도시 산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그의 선배 ‘프란츠 헤셀’의 영향이 크다. 헤셀은 베를린 시내를 산책할 때 벤야민을 데려갔고, 이것은 훗날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산책을 이해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나아가 이 집념 어린 학자는 도시의 모든 사소한 곳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 즉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다.

윤미애 교수는 먼저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속에 숨겨진 산책로를 탐구한다. 뒤이어 이 산책은 벤야민이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베를린의 거리 이야기와 도시 고고학까지 뻗어 나간다. 산책 도중 문득 들어간 어떤 장소에 대한 사유도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서점도 당연히 그중 하나일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다양한 ‘사적 인간’들이 손님으로 들어가서 책을 고르던 도시 광장 한 귀퉁이 서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혼자 작은 서점에서 일하며 끄적끄적 책을 쓰는 사람이다. 이 또한 현대 ‘사적 인간’의 한 모습이리라. 어느 날 나는 벤야민과 닮은 누군가가 우리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그는 산책자이면서 손님이다. 나는 손님에게 인사하고 그는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사유할 것이다. 서점이란 바로 그런 장소다.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인 동시에 사람을 사유하게 만드는 곳. 나는 이 멋진 곳에서 오늘도 이름 모를 산책자들을 기다린다.

윤성근(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어둠의 세계
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조아영·이세현 옮김, 오월의봄 펴냄

“방산업체들은 입법부·사법부·행정부에 이은 정부의 네 번째 기관이 되었다.”

한국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모습이 ‘오월 광주’와 닮아서가 아니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군부의 자금줄 중 하나이고, 군부는 그 돈으로 무기를 사서 자국민을 학살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얀마 내 무기 금수조치는 국제 시민사회의 최우선 요구다. 하지만 전쟁산업의 이익은 언제나 정의를 초과한다. 전쟁은 산업이다. 부패는 무기산업의 예외 없는 핵심 축이다. 국가안보라는 명분은 그 모든 걸 은폐하는 훌륭한 장막이다. 부패와 비리를 밝히기도 그만큼 어렵다. 〈어둠의 세계〉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심지어 매우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무기산업에 관한 거의 모든 사건을 포괄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 사람, 현장 위를 종횡무진한다.

트릭 미러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생각의힘 펴냄

“나와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일단 그 주제로 글을 써보았다.”

추천사 명단부터 눈길이 간다. 김금희, 강화길, 김하나, 이슬아, 이길보라 등 여성 작가들이 말한다. 현시대 가장 뜨겁고 생생한 증언록이자 대담하고 무자비한 책이라고. 필리핀계 이민자의 자녀로 휴스턴의 메가처치에서 자라 〈뉴요커〉 기자로 일한 작가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기에, 진실과는 먼 방향으로 끌려가기에’ 책을 썼다고 했다. 외신으로부터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이라는 수식을 듣기도 한 그는 소셜미디어, 리얼리티 쇼, 성과 인종, 권력, 페미니즘 등 각종 주제를 넘나든다. 특히 10대 시절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던 당시의 기억과 지금의 해석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트릭 미러’는 왜곡이 있는 거울을 의미한다. 트릭 미러 앞에 선 우리는 종종 거울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싱긋 펴냄

“유명 셰프들의 신입 시절을 지켜봤다. 그들에게도 종일 양파만 까던 시절이 있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을 보고 겁먹은 선배들이 떠맡으라고 해서 엘리베이터에 동승했지만, ‘떨려서’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명절에 흰 봉투를 건넸다. 금일봉 아니냐며 직원들이 난리가 났지만, ‘관광산업을 위해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손글씨가 들어 있었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김사복씨는 조선호텔에 상주하던 일명 ‘호텔 택시’ 기사였다. 그가 광주에 다녀온 뒤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44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울림이 있다. 고관대작만 호텔에 드나들었던 1970년대부터 ‘호캉스’란 말이 보편화된 지금까지, 44년 동안 ‘호텔 도어맨’으로 일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다. 호텔 문 앞에서 적은 한국 현대사의 작은 기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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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시요일 엮음, 미디어창비 펴냄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을 타임캡슐에 묻어두었던 오래된 편지들이라 생각하셔도 좋아요.”

대학 시절, 앤솔로지(시선집)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아무 데나 펼쳐 읽었다.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그 시인의 시집을 차례차례 사서 읽었다. 세상의 벽을 마주하고 힘들고 지칠 때 그게 꽤 위로가 되었다.
지난해부터 시 큐레이션 앱 ‘시요일’을 구독한다. 무료로 쓸 때도 이 앱이 매일 배달해주는 시 한 편을 읽는 맛이 좋았다. 시요일 기획위원인 신미나·안희연 시인이 졸업과 입학, 취업 등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시 70편을 추려 시선집을 냈다. ‘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시집 제목을 여러 번 따라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읽지 않아도 좋다. 손 가는 대로 펼치면, 고단한 일상에 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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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영토

고등어 한 마리 굽느라 창문을 열어두었을 뿐인데 난데없이 고양이가 생겼다. 생경한 기쁨은 잠시일 뿐, 이내 고양이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수습하려는 여자의 노력은 처절하다. 결국 여자는 명절을 핑계 삼아 도망쳐버리고 혼자 남은 고양이는 작아지기 시작하는데...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고 했던가. 사랑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견뎌내며 성장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드디어 50번째 뉴스레터 보내드려요!”라고 자랑하려다 보니 오늘이 만우절이네요😳. 그래도 믿어주실 거죠? 일 년이 총 52주라고 해요. 그러니 50번째 뉴스레터라면 설날․추석 빼고 꼬박 일 년을 발행한 셈입니다.
 
돌이켜보니 첫 계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동네책방 가는 길’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책방넷(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Buy Book, Buy Local’ 캠페인이었습니다(2019년). 가까운 동네책방에서 산 책 한 권으로 로컬 경제를 살리자는 이들의 움직임이 신선해 <시사IN>도 지켜보고 응원하게 되었죠. 그런데 곧 코로나19 위기가 터지더라고요. 순식간에 발밑이 무너진 동네책방들을 보며 뭐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것이 2020 시사IN×동네책방 콜라보 프로젝트 [책 읽는 독앤독]이었습니다. [주말에 뭐 읽지] 뉴스레터도 그때 함께 시작됐죠.
 
그런데 도움은 오히려 <시사IN>이 받은 것 같습니다. [책 읽는 독앤독]에 이어 2021 [읽는 당신×북클럽]을 동네책방과 함께하며 읽기의 가치, 로컬의 가치, 연대의 가치에 호응하는 독자들을 새롭게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동네책방 덕분에 소중한 추억들이 쌓였습니다. 이를테면 서점에 관한 책들만 해도 그런데요. 오늘 추천글을 써주신 윤성근 대표(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서점의 말들>을 저는 지금은 문을 닫게 된 대학로 책방 이음에서 만났습니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라는 카피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섬에 있는 서점>한평책빵에서 만났고요(서울혁신파크를 찾는 방문자들을 입구에서 따스하게 환대해주는 '빵집' 겸 서점입니다), ‘이 작가, 천재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만화책 <있으려나 서점>은 제주의 그림책방&노란우산에서 만났죠. 이 책들을 펼 때마다 저는 책을 사던 순간의 책방 분위기와 공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때로는 책방 주인과 나눴던 얘기들도요. 참 신기한 일이죠?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이런 추억들이, 이토록 생생하게 따라오지는 않으니까요.
 
사실 뉴스레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물리적 거리두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올 일상을 위해, 또는 일상의 재편을 위해 [주말에 뭐 읽지]는 책, 책방, 사람 소식을 계속 전하고자 합니다. 그게 언제까지냐고요? 70호가 될지, 100호가 될지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매체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독자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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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축하 메시지, 하고 싶은 제안, 따끔한 조언 무엇이든 좋습니다.
독자들의 생각을 잘 담아내는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참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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