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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행운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님, 한주 잘 시작하셨나요?
오늘은 새로운 언니를 소개합니다. 

오늘 소개할 조소담 작가는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를 만들었어요.
 젠더 다양성과 기후위기, 디지털 성범죄, 장애인 이동권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슈를 다룬 매체였죠.
지난여름, 6년간 치열하게 운영해온 닷페이스의 막을 내리고
잠시 일과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다고 해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함께 읽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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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담


2016년 10월 닷페이스를 창업해 2022년까지 운영했다. 동세대에 꼭 읽어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전환기를 누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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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세상과 관계 맺기

여러분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요즘 출근할 데가 없는 ‘일 공백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일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던 몇년을 지나,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제는 뜨개 가방을 완성하고 뿌듯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훌라춤도 배우고, 지난주엔 수영장에서 숨쉬기만 연습하다 집에 왔습니다. 그냥 해도 되는 자유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지난 시간의 자신에게 심리적 거리감도 좀 느끼고 있습니다. 일에 너무 매몰되었던 거 아닌가. 그런데 그 와중에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니 이 질문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다시 삶의 대부분이 일이 되어도 나는 괜찮을까. 우리는 왜 일을 하는 걸까. 일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할까.


저는 일중독은 아닙니다만, 사실 일하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어요. (이거 말이 되는 말인가요…?) 일을 삶의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맞추고 싶어했고요. 스스로를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일에 생산적인 도구로 쓰일 수 있는지 자주 질문했습니다. 내가 잘하는 건 뭔가, 어떻게 가성비 있게 스스로를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빨리 더 잘할 수 있나. 좀 삭막하죠? 아, 제가 정보를 하나 빠뜨렸네요… 저는 회사의 대표자이고 창업자였습니다.


너무 거리감을 느끼진 말아주세요. 이미 5미터 멀어지셨나요…? 저는 미디어 ‘닷페이스’를 2016년에 설립했고 6년간 운영했어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미 닷페이스를 아신다면, 제가 방금 하이파이브를 날렸습니다. 모르신다면 이참에 소개를 해보고 싶어요. 우리는 이야기를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목소리를 찾고 잘 듣는 과정을 예비하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매체입니다.

닷페이스를 만들기 전까지 저는 회사 생활, 인턴십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만든 회사가 제가 처음 경험한 회사가 된 겁니다. 얼마나 막막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언제나 우당탕탕에 가까웠고, 우아하게 일한 기억은 없는 느낌인데요. 열댓명 규모의 회사가 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도, 성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6월, 6년간 운영해온 닷페이스의 서비스를 종료하고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나니 기분이 묘하네요. 6년의 시간이 한 문장에 담길 수 있다는 게 야속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요. 닷페이스는 일터임을 넘어서 제 인생의 중심이었고 큰 의미였습니다.


저는 닷페이스의 대표이자 콘텐츠 책임으로 일했습니다. ‘콘텐츠 책임’으로 했던 일들을 좀더 설명해보면요, 닷페이스 초기에는 매체의 플랫폼 전략을 짜고 그에 걸맞은 이야기의 형태를 잡는 일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용자들의 ‘공유하기’를 촉발하는 스토리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스토리라인을 짜고, 어느 시점에 어떤 콘텐츠를 편성해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길 것인지 결정하고 실행을 촉진하는 일을 했어요. 스토리 에디터라는 이름으로는 전체 스토리라인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이야기를 매체의 톤에 맞게 다듬어 내보내는 작업을 했었고요. 이후에는 발제, 마감 주기를 포함한 제작 체계를 만들고 적용하는, 즉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설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콘텐츠에 관여하는 비중을 줄이고 대표로서의 일이 더 많아졌지만요. 윤리 책임으로 매체에서 내보내는 콘텐츠의 윤리적 책무에 대한 부분을 감수하는 역할은 계속 유지했었습니다. 때로 취재에 같이 들어가고, 현장에 나가고,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요. 작은 조직이다보니 일의 영역이 유동적이었어요.


닷페이스에서 일을 하다보면 세상과의 연결감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과 일이 깊숙이 연결된다는 게 이 일의 기쁨이자 어려움이었어요. 전날 밤 접한 누군가의 부음에 울고 싶고 화내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출근을 하고, 그걸 일하는 에너지로 전환을 시켰고요. 일상에서 느끼는 분노, 슬픔, 호기심, 애정 같은 것들이 일에 반영이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 곤두세우고 감각해야 했고, 생각이 잘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쉬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힘들기만 했느냐 하면 전혀 아니고요. 그 과정에서 느낀 일의 기쁨과 슬픔 덕분에 저는 ‘언젠가 삶의 대부분이 또 일이 되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 걸까. 일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할 때,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의 열정과 애정으로 일과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살아가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나 기댈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일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나 태도, 나는 일과 이런 정도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겠다는 생각. 오늘의 글에서는 서로를 참고삼을 수 있도록ㅡ 제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크게 봤을 때 제게 일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법입니다. 그 세상 안에는 ‘나’도 있고, ‘우리’도 있고, 내가 살아 갈 배경이 되는 ‘세상’ 그 자체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 다양한 깊이와 폭으로 자신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여러 수단이 있지만, 일도 그 수단 중 하나입니다.


먼저, 일을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음’이란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나를 잘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을 쓴다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나는 이런 일과 환경에선 이 정도로 플레이할 수 있구나’,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알아차리고 ‘나는 이럴 때 몰입할 수 있고 성장한다고 느끼는구나’ 경험하기 위한 도구로서요.


여기서 중요한 건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실행 속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이 아닐까 해요. 하나의 시도를 완결하면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하나 이상의 배움을 얻습니다. 동료 S는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이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어요. 풀어 말하면 배우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써 배운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허상이 깨집니다. 이 속에 복잡한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일을 통해 그런 기쁨을 제게 주면서 저를 키우고 싶어요.


두번째로, 일은 인생에서 누굴 만나고, 누구와 함께 커갈지 선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전의 저를 쥐어박고 싶은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관계에 선을 긋곤 했어요.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에요. 어른의 우정은 신기하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일을 하다보니 회사 안이든 밖이든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신기하게도 동료와 친구라는 말이 어느 스펙트럼에서 겹쳐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우리가 숲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무는 자기의 발달 과정 모두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지 않잖아요. 옆에 있는 나무들이, 숲이 함께 나무를 키워주니까요. 필요할 땐 도움을 청하고, 함께 흔들리며 성장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일을 통해 내놓는 결과물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각해요. 저에겐 이 관점이 창업을 선택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가 만든 사회에서 내가 살게 된다’라는 문장이 저에겐 두려움과 용기의 원천이었어요. 가족과 친구와 나 자신이 겪는 어려움들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이니까요. 내가 내버려둔 사회에서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는구나. 두려웠고, 바꾸면 바뀐다는 말이 용기가 되었어요. 때로 현실에서 좋은 장면을 발견할 때면 그 장면이 반복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 두려움과 용기가 일을 하는 동기가 되었고요.


어떤 장면을 보고 싶은 강한 열망. H는 ‘엔드 픽처’(end picture)라는 말로 이걸 일컫더라고요. “썸머가 보고 싶은 최종적인 그림이 뭐예요?” 이 일의 끝에 있을 구체적인 한 장면을 상상해보라는 질문이었어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거기서부터 거꾸로 현재로 오는 거예요. 그 장면이 현실이 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꾸 묻는 겁니다. 이런 구체적인 상상은 힘이 세서, 이야기가 되고 나 자신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떤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시나요. 각자의 시선이 있겠죠. 똑같은 사람이라 해도 인생의 시기마다도 다른 것 같고요. 좀 이상하지만 어쩌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건가봐요. 때로 우리는 일의 도구처럼 살지만, 사실 일이 우리의 도구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키우고 싶어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서, 혹은 세상에서 보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우리는 일을 합니다. 저도 언제든 준비가 되면 다시 그렇게 재밌고 멋지게 일을 하고 싶어요. 일이 인생에서 좀 물러나 있는 시간도 이렇게나 좋지만요.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더 자주 행복하시기를 바라보아요. 아무리 고단한 하루였더라도 잠들기 전에 ‘오늘 좋았다’ 생각하는 날이 잦기를, 우리의 행복과 안녕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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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편지에서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어요.
"우리는 일의 도구처럼 살지만, 
사실 일이 우리의 도구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맺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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