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3 :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

함의영 비영리사단법인 피치마켓 대표
디지털 접근, 그건 어려워야만 하는 건가?
디지털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언제든 느린 학습자가 될 수 있다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들의 정보 평등, 실질 문맹 개선을 위해 쉬운 글 컨텐츠를 만들고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 격차라는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이 정보 격차라는 사회문제 때문에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희가 작업한 책을 읽은 분께서 이런 편지를 쓰셨어요. "40년만에 처음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엄마와 책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 42세이시던 분인데요. 그러니까 그동안은 단편적인 이야기밖에 나누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정보에 대해 궁금한 것과 더 알 수 있는 것들이 생기면서 비장애인인 엄마, 나아가 사회와 이야기할 거리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된 것이죠. 이 일을 하는 저희에게 굉장히 감명 깊었던 사례입니다. 
제가 5년 전, 쉬운 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고 느끼게 되어서 그런 글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면서 논문을 찾아보았는데 가이드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수학급 교사께 사정을 해서 두 학기 동안 발달장애인과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으며 그들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고, 어떻게 하면 콘텐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들이 쓰는 글, 말하는 것을 실제로 비교하고 따라 쓰면서 느린 학습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기준선을 잡아 가기 시작한 것이죠. 

느린학습자란?  
사회적으로는 경계선 지능이 있는 분들 지칭할 때 통용되는 말인데요. 쉬운 글 도서를 만들어 교육하면서 느낀 것이, 일반적인 글을 읽는 데 대한 어려움이 비단 발달장애인의 사정만은 아니었습니다. 장애등급이 있느냐 없느냐, 나이가 몇 살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글을 읽을 때에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쉬운 글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죠. 그래서 '느린'이 아니라 '학습자'에 주목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분들조차도 느린 학습자들이 학습이 어려우니 새로운 시도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반복 학습하거나, 보다 적정한 교육 자료를 활용하면 학습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저희가 하기 시작한 것이 그 나이대에 필요한 정보이지만 글을 통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정보들을 쉽게 바꾸는 작업입니다. 신문과 뉴스, 고전 문학을 쉬운 글로 바꾸었고요, 장애인 분들도 선거 공보 같은 데 나오는 정책을 이해해야 하니까 위해서 이를 쉬운 글로 옮기기도 하고요. 

쉬운 문장과 쉬운 단어 이전에, 그 내용부터 수용자 중심으로 다가가야
발달장애인들 중에 요리를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 그 이유가 레시피를 보고 따라하기에 어려운 정보라고 인식해서거든요. 글 자체도 어렵지만, 그 내용 역시 어려운 거죠. 그래서 요리 과정 자체를 대폭 단순하게 바꿔 보았어요. 불을 조절할 필요도 없이 모두 중불로, 그리고 칼을 쓰지 않는 식으로요. 이처럼 과정 자체를 단순화한 뒤에는 다시 한 번 글 또한 쉬운 글로 옮겼고요. 
느린 학습자 분들이 디지털 금융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콘텐츠를 만들면서 부딪힌 난관 또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쉬운 글로 바꾸기 이전에 그 과정 자체가 너무 복잡했거든요. 문제는 저희가 앱 자체를 수정할 수가 없어서, 이미 개발된 기술에 대해 어떤 도움을 드릴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우리가 추측도 못했던 어려운 점들이 발견되더라고요. 대표적으로 '다음' 버튼을 누르는 것부터가 어려웠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추측하기조차 힘들었다면서요. 그래서 콘텐츠를 쉽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반복적인 교육도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느린 학습자'만 새로운 용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까?
"KILL CHAIN, KAMD, KMPR" 
이 단어들의 뜻을 혹시 아시겠나요? 지난 대선때 후보자마다 'KAMD를 구축하겠다.' 'KMPR을 구축하겠다'라는 식으로 공약하며 제시된 용어들인데요. 그렇다면 우리말로 된 용어라면 좀 이해가 되실까요?
"전략 표적 타격, 한국형 미사일 방어, 압도적 대응."
... 그래도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이 용어들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아요. 
KILL CHAIN: 시한성 긴급 표적에 대한 표적화 과정 .
KAMD: 저고도에서 적의 탄도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공중에서 요격하는 하층 방어 체계.
KMPR: 북한이 핵무기로 위해를 가할 경우 북한의 전쟁지도본부를 포함한 지휘부를 직접 겨냥해 응징 보복하는 체계.
역시 와닿는 설명은 아니죠. 그래서 저희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대선 공약집을 만들면서 이렇게 설명했어요. 
KILL CHAIN: 북한이 미사일을 쏘려고 할 때 그 미사일을 격파하는 미사일.
KAMD: KILL CHAIN이 실패했을 경우, 날아온 북한의 미사일 공중에서 파괴하는 방어 시스템.
KMPR: 북한이 미사일을 쏘려고 할 때 그 미사일이 아니라 평양에 선제공격을 하는 대응 방법.
이처럼 개념어나 문장이 어려워서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느린 학습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국민으로서 꼭 알아야 할 정보인데도요. 디지털 격차를 느끼시는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 역시, 일종의 '느린 학습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렵게 여겨지는 개념을 쉽게 풀어냄으로써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경험,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대응으로 접목하면 어떨까요?

정부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건 선의가 아니라 의무
사기업을 보면 고객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UX(사용자 경험)과 UI(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해 깊이 고민해서 한 명이라도 더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잖아요, 정부에게 국민 역시 일종의 고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책을 내놓든, 메시지를 내놓든, 한명이라도 더 이해를 시키는 것이 선의가 아니라 의무가 아닐까 싶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정보 격차를 줄이는 일이지만, 디지털 격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액티브X를 없앴다고 디지털 접근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한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그 사이트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지, 새로운 기기를 설치했을 때 그 조작법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지, 이때 적절한 UX나 UI를 통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이 메시지는 이런 의미라는 것을, 한 명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하면 디지털 격차도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