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연설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도시 아테네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말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참여를 끌어내는 연설의 기술을 갈고닦았습니다. 아테네의 군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탁월한 연설가였던 페리클레스는 단 한 번의 연설로 사람들이 전쟁을 하도록 만들기도 했지요. 바로 기원전 431년 시작된 펠로폰네소스전쟁입니다.

아테네를 위시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인들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에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대부분이 휘말렸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스파르타가 강력한 전사들의 도시임을 실상 잘 알고 있었고, 전쟁을 시작하기란 참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 두려움과 피곤함이 고조되고 있을 때, 홀연히 페리클레스가 연단에 나타납니다. 나쁜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믿도록 만든 말. 그로써 수많은 청년들을 전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향하도록 마음먹게 한 그 말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도했다. 스파르타의 위용에 움찔하던 아테네인들을 독려하여 기어이 전쟁터로 이끌어 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설득의 달인, 탁월한 연설가였다.
두려움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었고, 절망과 슬픔에 주저앉은 시민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자신에게 향하는 대중의 분노를 달랠 줄 알았다. 호메로스의 말처럼 그의 말은 ‘뚝뚝 듣는 꿀처럼’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달콤하게 해 주었고,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르면 가장 달콤한 결과를 얻어 내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진행된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그 이후 패전국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과격한 과두정파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고 아테네를 아테네이게 하였던 민주정은 무너졌기 때문이다. 

─ 김헌, 「들어가는 글」,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11~12쪽에서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저의 입장은 늘 한결같습니다. 펠로폰네소스인들에게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하기로 설득되었을 때와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실제 상황에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입장까지 바꾼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제 제안에 설득되신 분들께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공동의 결의를, 설령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지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성공하더라도 식견을 자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의 상황은 인간의 생각만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측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습관적으로 운을 탓하곤 합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만일 메가라 칙령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소한 일로 인해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그것이 철회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내세우고 있지만 말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책망도 여러분 자신에 남기지 마십시오. 이 사소한 일이 여러분 모두의 입장에 대한 결의이자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들에게 양보하면, 저들은 여러분이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들어 주었다고 생각하고서는, 즉시 다른 더 큰 무언가를 요구해 올 것입니다. 반면 여러분이 단호히 거절하면, 저들에게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전쟁에 관해서, 그리고 양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져 들으시면서 우리가 저들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자신들의 땅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며 저들에게는 사적으로든 공동으로든 재산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장기전이나 바다를 건너 남의 나라로 건너가서 벌이는 전쟁 경험이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서로 단기전만 치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일한 심의 기구를 구성해서 급박한 사건들을 즉시 해결할 수 없고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지만 부족이 서로 달라 그들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개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최대한으로 누군가에게 복수하려 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자신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주 모이지도 않고, 모이더라도 공동의 일들과 관련해서는 아주 적은 시간만을 논의하며, 대부분의 시간은 개인의 일을 처리합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은 자신의 무관심은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도시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 대신에 다른 누군가가 신경 써야 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개인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공동체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부족한 재정으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 그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재정을 마련한다고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이 지연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적기(適期)는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우리 땅에 세우는 요새도, 저들의 해군력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들이 바다에 대한 능숙함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항해술을 페르시아전쟁 직후에 익히기 시작했는데도 아직 완전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닷사람 아닌 농부들이, 그것도 우리들의 그 많은 함선들에 의해 계속 봉쇄되어 훈련할 기회도 갖지 못한 자들이 제대로 된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항해술은 다른 어떤 것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끔씩 부업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업을 허용치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의 영토로 걸어서 진군해 온다면, 우리는 저들의 땅으로 배를 타고 건너갈 것입니다. 펠로폰네소스의 일부분이 파괴되는 상황과 앗티카 전체가 파괴되는 상황을 비교해도, 그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싸우지 않고서는 다른 영토를 가질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많은 영토가 섬들과 내륙에 있기 때문입니다.

땅과 집을 버리고 바다와 도시를 방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분노하면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싸움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집과 땅이 아닌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해서만 통탄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사람들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들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밖으로 나가 직접 여러분의 소유를 파괴하고 펠로폰네소스인들에게 그것들 때문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 주라고 촉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쟁을 치르는 중에 지배권을 더 확장하거나 굳이 자초해서 위험을 더하려고 하지만 않으신다면,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희망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이유들을 댈 수 있습니다.

저는 적들의 전략보다는 우리 자신의 과오가 더 두렵습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전쟁이 불가피하며, 우리가 전쟁을 기꺼이 받아들일수록 더 약하게 공격하는 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도시든 개인이든 가장 큰 위험으로부터 가장 큰 영예를 얻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페르시아에 맞섰을 때, 그들은 우리가 가진 만큼의 자원으로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도 버리고 운보다는 지혜로, 힘보다는 용기로 이방인들을 몰아냈고, 이 도시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우리가 그들에 못 미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적들을 막아 내어, 후손들에게 이 도시를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넘겨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김헌, 김기훈, 장시은 옮김, 
「페리클레스: 전쟁을 위하여─민회연설 1」,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29~37쪽에서

페리클레스 (BC 495-429년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를 강국으로 만든 지도자로서, 정치개혁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웠을 뿐만 아니라 아크로폴리스를 완성하고 문화예술 부흥에도 힘썼다. 뛰어난 웅변술을 갖춘 군인으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주도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의 뜻대로, 그에게 설득된 아테네 시민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분노한 아테네 시민들은 페리클레스에게 화살을 돌렸고, 그를 공직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은 없었고, 스파르타와의 화친도 이뤄지기 힘들었다. 결국 아테네 시민들은 다시 그를 장군으로 선출해 국가 전반의 일을 맡기고, 전쟁을 지속하고 승리를 이끌 인물임을 믿어 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난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되는 기원전 429년 7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아테네에서 페리클레스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스파르타를 이겨낼 묘안이라고 제시했던 작전은 아테네 성곽 안에서 버티기였는데, 이로 인해 성 안에 유래 없는 역병이 돌았고, 바로 이 역병에 걸려 죽음을 맞은 것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모두를 소진시킨 전쟁은 기원전 404년, 즉 시작한 뒤 30년 가까이 지속된 뒤에야 끝났고, 결과는 아테네에 더욱더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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