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땅 #리더의자격 #주말에뭐읽지 #시사인

💌   2021년 10월28일 77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pixabay 
그의 마지막 기록, "좋은 하루였다"  
버락 오바마 지음, 노승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보통 대통령 회고록은 두껍고, 게다가 8년 임기를 서술하려면 900쪽이 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여겼다. 그런데 〈약속의 땅〉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오바마 임기 2년 반의 기록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담대한 희망〉에서 이미 서술한 어린 시절은 간단히 다룬 다음, 2008년 선거 캠페인을 지나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2011년까지만 쓰여 있다. 2권이 나온다는데, 과연 남은 6년이 한 권에 담길 수 있을까.
3권이 나올 거란 강한 예감과 함께 책을 읽다 곧장 두 번째 놀라움에 접어들게 된다. 재미있어서다. 이 뛰어난 지도자는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쓴다. “좋은 하루였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킨 날의 밤을 담담히 서술하는데, 미국인이 아닌 독자의 가슴까지 벅차오르게 만든다. 정치의 이상(理想)이 도달해야 할 현실에 발 닿은 것 같은 느낌을 마구 준다. 빈라덴 사살 작전을 시작하고 끝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리더는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준다’는 점이다. 물론 오바마 또한 완벽하지 않다. 그도 실패했고 실수했다. 이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전임자가 벌여놓은 9·11 후속 조치의 여파로 미군의 희생은 계속되었고, 군 수뇌부와의 갈등도 있었다. 금융위기로 나빠진 경제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분명 그의 피부색 때문에 발현된 ‘출생지 논란(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음모론)’도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그때 오바마가 자신의 팀과 했던 커뮤니케이션, 고민, 태도 그리고 판단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백미다.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판단을 하고,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리더의 자리에 있거나 리더십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 김은지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지음, 이데아 펴냄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하기 때문에 노골적 부정의인 세습신분제보다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끝났다.’ 계층 사다리가 무너진 불공정 사회에 대한 자조가 섞인 말이다. 능력이 있으면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이 희망을 빼앗긴 채 생존 투쟁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개천의 용’은 시대를 거슬러 다시, 묘한 흥분을 주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저자 박권일은 ‘능력주의’의 동력은 부푼 희망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용이 되지 못한 이들의 열패감과 억울함”으로 자라나는 괴물이다.
저자는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로 불평등에 대한 무감각을 말한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졌다면 다른 몫을 갖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실 능력주의의 민낯은 이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책 자세히 보기 >> 
당신이 아프면 우리도 아픕니다
이재호 지음, 이데아 펴냄
“2020년 유행한 코로나19로 2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동안 2062명의 노동자는 산재로 죽었다.”
‘재난은 불평등하다’는 선언이 식상해져버렸다. 가난할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직업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게으른 주억거림 뒤에 실제로 누가, 무엇을 겪으며, 어떤 일상으로 이 무게를 견디고 있는지 살핀 책이다. 언택트 시대를 떠받치며 주 70시간을 일하는 택배노동자, 확진자들이 코호트 격리된 요양원의 (자신도 노인인) 돌봄노동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장애인.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서 유래된 단어다. 저자는 ‘판(pan, 모든)’과 ‘데모스(demos, 사람)’가 합쳐진 이 단어를 응시하며 과연 우리가 배제하고 있는 ‘우리’가 누구인지 끈질기게 묻는다. 책 자세히 보기 >>
여성의 대의
지젤 알리미 지음, 이재형 옮김, 
안타레스 펴냄
“나는 정의가 아닌 것은 참을 수 없어요. 내 인생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2020년 93세로 숨진 지젤 알리미는 프랑스 인권변호사이자 페미니즘 운동가이다. 낙태죄가 강간죄보다 더 쉽게 처벌받던 시절, 온몸으로 맞서 법률 제정에 힘썼다. 1940년대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당시 낙태수술을 한 시술자는 사형을 당했고 유죄를 선고받은 여성은 대개 서민이었다. 알리미는 상류층은 남몰래 영국이나 스위스 병원에서 낙태를 한다며, “낙태 재판은 결국 계급 재판”이라고 적었다. 그는 여성에게만, 그중에서도 하위 계급에게만 가해지는 속박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제도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자세히 보기 >>
일몰의 저편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펴냄
“당신이 쓴 것은 좋은 소설입니까, 나쁜 소설입니까?”
성애 소설을 쓰던 작가가 문예윤리위원회라는 국가 조직에 의해 바닷가의 격리된 건물에 감금된다. 그곳에서 작가는 외설, 폭력, 범죄 등의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던 다른 동료들과 함께 형편없는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문예윤리위원회는 작가들에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좋은 소설’을 쓰라고 윽박지른다.
소설, 영화 등에서 캐릭터의 특정 행위나 대사를 툭 떼어내 ‘이건 남성혐오다’ ‘저건 여성차별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며 논란으로 만드는 것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국가·사회가 강요하는 윤리와 ‘표현의 자유’ 간 모순을 일본 문학계의 거장이 도발적으로 그려냈다. 책 자세히 보기>> 
장정일의 독서일기

“어떤 지식인들은 우울한 삶을 개인의 사적 욕심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노자〉 읽기를 권고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비워낼 만큼 과도하게 차 있기라도 한 것인가?"
〈노자〉 하면 우리는 자동반사처럼 무위(無爲)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노자>의 무위는 누구를 위한 걸까요? 무위는 과연 평범한 아무개들이 깨닫거나 획득해야 하는 도(道)를 뜻하는 것일까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달라지면서 <노자>의 메시지 해독이 어떻게 변질돼 왔는지를 '장정일의 독서일기'로 읽어봅니다.

노자와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 기사 전문 보러가기 >>
“그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딸이에요?”
현대사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초등학생인 조카가 어느 날 묻더군요. 기특해서 저도 되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맞아, 또 이름 아는 대통령이 누구누구야?”
조카는 신이 나서 역대 대통령 이름을 늘어놓았습니다. 딱 한 사람만 빼고요. 그게 누구냐고요?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입니다. 참 신기하죠? 노 전 대통령 별명이 한때 ‘물태우’였다는데, 요즘 아이들이 느끼기에도 그 이름 석 자의 존재감은 꽤나 약한 모양입니다.
 
얼마 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하면서 여러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장 논란이 그중 하나죠. 제 주변을 보면 내란 음모로 국가 전복을 꾀하고 5․18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을 국가장으로 보내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좀 더 우세한 것 같습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공적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죠.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 40여 곳과 국교를 수립하는 한편 북한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이어가며 유엔 동시 가입을 이뤄냄으로써 한국 외교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그 시절이었으니까요.
 
고인을 둘러싼 평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장을 결정하는 데 노 전 대통령 본인과 유족들의 사과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죠. 유족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유서로 다음의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합니다. “역사의 나쁜 면을 다 짊어지고 가겠다. 나의 과오에 대해 깊은 용서를 구한다.”
 
대통령의 한 마디. 그것이 사회에 깊게 패인 갈등을 더 부추길 수도, 봉합하고 화해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득 숙연해지는 대선 D-132일차. 오바마가 <약속의 땅>에 남긴 머리말을 다시 한번 줄 그으며 읽어봅니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이면 미국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이번 선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믿지만, 선거 하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이유는 동료 시민, 특히 다음 세대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광고] 편집자와 함께하는 '완독 클럽' 신청자 마감 D-3


“아픈 삶도 삶이라는 것,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 죽음의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않는 것. 기대 수명의 연장과 함께 마주해야 하는 분명한 사실을 차분히 준비해온 사람들의 이야기. 앞장서서 고민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hun****)
 
“자녀들이 먼저 읽고 추천해준 책입니다. 제 또래 5060세대뿐만 아니라 2030세대도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을 읽고 우리 사회 죽음에 대한 쟁점을 확인했고, 그 대안을 고민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young*******)
 
죽는 건 어렵지만, 읽는 건 쉽게.
책을 팔기만 하지 않습니다. 읽는 것도 책임집니다. 편집자가 매일 읽을 분량을 정해드리고, 함께 읽으면 좋을 관련 자료도 추천하는 [완독클럽], 10월31일 마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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