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프리몰 뉴스레터 '대현가족' 2020 신년호
핫플레이스는 여기
을지로 어디까지 가봤니?
‘을지로’라 쓰고 
‘힙지로’라 읽는다
글과 사진 : 임운석 여행작가
한창 산업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당시 을지로에는 한국 최초의 주상 복합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운상가가 그것이다. 산업화는 급성장을 불러왔고 그것은 브레이크가 없는 쾌속열차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 앞에 을지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쏜살보다 더 빠른 거대한 세월의 흐름에 맞설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SNS를 통해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곳으로 변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을지로 지명은 수나라 30만 대군을 살수에서 전부 몰살시켜 강대했던 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의 성에서 유래한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명칭을 개칭할 때 우리 명장(名將)의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이 을지로로 제정된 것이다.
을지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이한 장소다. 지척에 종묘가 자리하고, 그 뒤로 유네스코도 반한 비밀의 정원이 있는 창덕궁이 자연의 품에 안긴 듯 평화롭다. 서쪽에는 경복궁이 조선 왕조 정궁의 권위를 뽐낸다.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대한제국 당시 고종황제가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 약소국의 회환을 달래던 덕수궁이 자리한다. 덕수궁 옆에는 서울의 심장이라 할 서울시청이 있다. 이 모든 곳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다.
오늘날 을지로의 모습은 산업화의 결과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을지로는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 각종 자재와 공구들, 그리고 그것을 다룰 기술자들이 뒤섞여서 형성되었고 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공구, 미싱, 조명, 타일 도기, 가구들인데 이들은 골목상권으로 발전했다. 

힙지로로 거듭난 을지로
쇠락한 모습이 역력해 도심의 흉물이라는 오명까지 받고 있는 세운상가. 
그러나 세운상가는 한때 가장 잘나가던 서울의 랜드마크였다. 1968년 ‘세계의 기운이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서, 당시 우리나라 현대건축을 대표하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아 2년 만인 1968년에 준공했다. 이후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상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랜 전통에 걸맞게 수많은 기업들이 이곳을 인큐베이터 삼아 성장했다. 
이곳을 거쳐 간 기업체로는 삼보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코맥스 등이 있다. 하지만 1980년대 강남 개발, 2000년대 용산전자상가가 성장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운명이 되었다.

쇠락한 세운상가는 ‘재개발 VS 보존’이라는 치열한 논쟁 끝에 2014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세운상가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콘셉트로 승부수를 던진 청년 창업자들이 몰려들며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들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옛것에 새로움을 덧칠하는 이른바 뉴트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SNS에 올라온 뉴트로 문화는 밀레니얼 세대를 통해 더욱 확산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재생산 중이다. 그 결과가 을지로를 최신 유행을 뜻하는 영어 ‘힙(hip)’을 앞에 붙인 ‘힙지로’이다.

힙스터들이 즐겨 찾는 힙지로 핫플레이스
이전의 을지로 핫플레이스들은 대체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곳이 을지로3가역에 위치한 골뱅이 골목과 노가리 골목이다. 이들 골목의 단골들은 공구·인쇄· 조명·타일도기골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비교적 저렴한 안주와 술잔을 앞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피곤을 달랬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20~30대 젊은층이 찾으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노가리 골목은 봄부터 가을까지가 피크다. 
주변 상가들이 문을 닫으면 골목은 일제히 차 없는 거리로 돌변. 플라스틱 테이블 세트가 놓이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가볍게 맥주 한잔하고 퇴근하려는 주변 직장인부터, 꼭 한번 찾아오고 싶어 왔다는 원정객까지. 독일의 세계적인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를 옮겨놓은 듯하다. 실내외 좌석만 약 8천 석이다. 만선호프, 을지OB베어, 뮌헨호프, 초원호프 등 10여 업소가 성업 중이다. 안주는 노가리, 황태 천 원, 쥐포 6천 원, 먹태 1만 2천 원이다.

을지로3가역 1번 출구와 가까운 ‘커피 한약방’은 옛날 허준이 병자를 치료하던 혜민서 자리에 위치해 약방이라는 콘셉트로 문을 연 카페이다. 실내외 분위기는 마치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한 장면과 흡사하다. 세월이 묻어나는 인테리어가 특히 돋보인다. 
핸드드립 커피를 한약 사발처럼 생긴 넓은 잔에 내어주는 것도 특징적이다. 카페와 마주 보고 있는 혜민당에서는 모양과 맛 모두 만족할만한 다양한 디저트 메뉴를 선보인다.
세운상가 9층 전망대와 세운상가 3층과 대림상가를 잇는 공중 보행교도 핫플레이스다. 
일명 ‘을지로 루프탑’으로 불리는 이곳 역시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가 늘어서 있다. 골목상권과 달리 주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호랑이카페’는 개점과 동시에 이곳의 여러 가게를 제치고 힙한 카페로 등극했다. 아메리카노 가격이 3천 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며, 신선한 과일로 만든 후르츠 산도가 유명하다.  
호랑이와 이웃한 ‘이멜다분식’은 카페와 같은 인테리어를 자랑하지만 이름처럼 분식집이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가정식 분식을 제공한다는 것이 이 집의 모토다. 이외에 양과를 파는 구움양과, 도너츠와 핫도그 등을 파는 빠우가 성업 중이다.

을지로 골목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가게들은 휘황찬란한 간판이 없다. 작은 입간판이나 계단 진입구에 붙여 놓은 안내문이 간판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미팅룸’을 들 수 있다. 인쇄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간판이 없어서다. ‘솔커피&호프’ 간판을 찾는 게 편리하다. 이 식당 사장은 예전에 푸드트럭을 운영한 바 있는 청년들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커피 한약방’처럼 개화기에 맞춘 듯하다. 
빈티지·앤티크 소품들이 옛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렇다고 예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젊은 감각으로 포인트를 살린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20명 정도가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 낯선 이와 합석해야 하지만 그 또한 재미로 여겨진다. 

인기 메뉴는 고소한 식감의 파스타와 카레에 재워둔 닭 안심구이 그리고 아이스크림 위에 살포시 올려놓은 듯한 달걀이 올라간 구름 파스타이다. 맛은 물론이고 플레이팅이 마치 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십에 아홉 이상은 수저를 들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게 이 집의 전통(?)이다.
을지로가 힙지로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청년 창업가들의 신선한 아이디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서울시의 해당 지역의 ‘미래유산’ 지정 등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2030세대가 주도한 뉴트로 열풍에 힘입은 SNS의 저력이라 하겠다.

대현프리몰
mhkang@daehyun.com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14 대현프리몰 B/D 02-2233-4331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