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회! ‘파주자유음악잔치 2019’
파주출판도시는 우리나라를 통틀어 가장 문화적인 곳 중 하나입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인류의 지성과 문명을 이끌어왔던 책을 매일매일 ‘짓는’ 출판사들의 본거지입니다. 게다가 성립 초기부터 치밀한 건축 계획과 블록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우후죽순 난개발을 막고, 도시 전체를 유려한 건축 집합체로 구성한 곳이기도 하지요. 여기에는 해외에서 디자이너가 방한하면 “소문의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꽃처럼 일어나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이 지난 2013년부터 명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PaTI는 개교 때부터 꾸준하게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해 왔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파주자유음악잔치’입니다. 영어로 표기하면 ‘Paju Free Music Festival (pfmf)’이고, 우리 말로 읽으면 ‘파주 프리 뮤직 페스티벌’이라 단어 앞 자음을 따서 ‘ㅍㅍㅁㅍ’라 표기하곤 한답니다. ‘파주자유음악잔치’는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출판도시의 특성을 이어받아 흔히 접하기 힘든 실험 음악, 즉흥 음악을 소개하고, 디자인과 영상, 설치미술 등을 함께 다루어 학생과 지역 주민이 편견 없이 새로운 음악을 즐기는 기회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파주자유음악잔치’는 예년과 사뭇 달랐습니다. PaTI 주최의 학교 행사로 1~2달간 집중적으로 준비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스승을 초청하고 관심 있는 배우미가 학기 중부터 4달 동안 기획에 시간을 쏟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매회 수고로운 일을 맡던 이한주 스승, 김윤태 스승 대신 이번에는 에마논(Emanon)이 수업의 지도스승이자 행사 총감독으로 활약했습니다.

에마논은 DJ, VJ, 뮤지션, 디자이너 등 각자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크루를 결성해 자체적인 파티를 열며 요즘 20대 초중반 친구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요. 특히 멤버 중 이규찬(규찬)과 홍찬혁(찬혁)은 PaTI의 마친배우미(졸업생)랍니다. 마찬가지로 PaTI 졸업 후 PaTI에서 기획·행정 직원으로 일했고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서지수(리루) 또한 기획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해 에마논과 배우미 사이의 빈 곳을 촘촘히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들 마친배우미에겐 사회로 나간 후 모교의 중요 행사인 ‘파주자유음악잔치’를 이끄는 역할을 맡으며 배우미와 소통하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제6회를 맞이한 ‘파주자유음악잔치 2019’는 ‘개미 호텔’이란 신선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공식 포스터는 한배곳 3학년 장예진(예진)이 작업했는데요. 복잡한 개미굴에서 영감받은 ‘개’, ‘미’, ‘호’, ‘텔’ 레터링 작업을 이용해 통일감을 살린 4종의 다양한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레터링 안에는 한배곳 1학년 김현우(현우)가 여왕개미, 식물, 폐허, 콘크리트 등 이상집 여러 공간에서 영감받아 작업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했습니다. 참고로 이번 ‘파주자유음악잔치’의 멋진 개미 심벌도 현우가 작업했답니다.

개미집의 형태와 호텔이라는 키워드를 이상집의 구조에 빗대어 최대한 충실하게 꾸민 덕분에 이상집 곳곳은 위트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는 메인 무대인 ‘여왕개미홀’, 4층에는 DJ 부스 ‘은빛전당’, 야외에는 ‘번데기숲’을 배치한 후 ‘맛간(restaurant)’에서는 파주자유음악잔치 맛간부스’, ‘체조식당’, ‘gugumo’, ‘gold hands’ 등 마친배우미들이 음식을 준비해 판매했고, ‘장마당(market)’에서는 ‘파주자유음악잔치 장마당부스’, ‘굴렁쇠’, ‘몸에 그림 그려주는 스튜디오’, ‘에일리언 핑거 프린트 afp’, ‘오물오물 굿즈파티’, ‘PaTI가 찍어드립니다’ 등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시실(gallery)’에는 참여 뮤지션들의 곡을 듣고 각자의 감성으로 해석한 헌정 포스터 15장을 멋지게 걸어놓았고요. ‘파주자유음악잔치’의 대표 포스터부터 안내판, 공간 이름과 연출까지 배우미들이 유기적이고 짜임새 있게 구현한 결과물이 놀랍습니다.

‘파주자유음악잔치’의 핵심은 역시 뮤지션입니다. 올해 라인업은 다른 어느 때보다 젊고, 기획에 참여했던 배우미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았는데요. 에마논과 리루가 배우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덕분이었습니다. 20대 초반 배우미들의 성향이 맞물리며 자칫 ‘힙’한 느낌에 경도될까 염려했던 기우와는 다르게 역대 ‘파주자유음악잔치’가 추구하던 음악적 실험은 존중하면서 좀 더 다채롭고 대중적으로 라인업을 준비해 균형을 잘 맞추며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입니다. 실제 초대 뮤지션의 성향을 보면 국악, 재즈, 힙합, DJ, 일렉트로닉, 어쿠스틱 등 무척 다양하면서도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적절히 갖춘 분들을 모셨습니다. 

DJ, 프로듀서, 라이브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아킴보(Akimbo)’, 하우스와 테크노의 뿌연 경계를 넘나드는 일렉트로닉 뮤지션 ‘클로젯 이(Closet Yi)’, 오디오 비주얼 아티스트 ‘클로드(Claude)’, 김도마와 거누로 이루어진 2인 밴드 ‘도마’, 브레인댄스 레이블의 음악 프로듀서 ‘고담(GODAM)’, 사운드 비주얼 아티스트 ‘아포탁(Apotak)’, 힙합, 트립합 기반의 프로듀서 ‘라이언클래드(Lionclad)’, 가야금 연주자, 작곡가, 싱어송라이터인 ‘주보라’, 디저리두&핸드팬 연주자 ‘조현’, 생황 연주자이자 작곡가 ‘한지수’, 5인조 밴드 ‘공중그늘’, 한국 턴테이블리즘 음악의 선구자이자 힙합 프로듀서 겸 DJ인 ‘DJ Soulscape’,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오지은’, 피아니스트 이한응, 베이시스트 신동하, 드러머 한인집으로 구성된 ‘이한응트리오’, 래퍼 ‘MC 메타(MC Meta)’까지…뮤지션을 글에서 호명하기에도 이리 힘든데, 실제 기획팀과 뮤지션의 노고를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행사가 끝날 즈음, 에마논의 승민이 날개에게 급작스러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파주자유음악잔치’는 PaTI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이죠. 날개는 “ㅍㅍㅁㅍ가 PaTI고, PaTI가 곧 ㅍㅍㅁㅍ 아닐까요?”라고 말씀하셨답니다. PaTI의 시작부터 함께 한 ‘파주자유음악잔치’가 다음 7회에는 PaTI뿐 아니라, 파주출판단지와 주변 지역 사람들이 흔쾌히 몰려드는 진정한 명물로 자리 잡길 기대해봅니다.

‘파주자유음악잔치 2019’를 만든 사람들
이번 ‘파주자유음악잔치’는 여러 면에서 특별했습니다. 특히 기획 과정부터 남달랐지요. PaTI는 2019년 1학기 커리큘럼에 전 학년을 대상으로 ‘파주자유음악잔치’ 기획과 관련된 프로젝트 수업을 개설했습니다. 기존 준비 기간인 1, 2달보다 갑절 정도 넉넉한 4달이 확보되었지요. 또한 음악 파티를 기획하며 요즘 20대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에마논(Emanon)’을 프로젝트 수업 지도스승이자 행사 총감독으로 모셨는데 멤버 중 이규찬(규찬)과 홍찬혁(찬혁)은 PaTI 마친배우미(졸업생)라는 사실! 게다가 작년 ‘파주자유음악잔치’에서 PaTI 행정 직원으로 기획에 참여했던 마친배우미 서지수(리루)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돌아왔지요. 이런 특별한 배경에 매력을 느끼고 마친배우미 세 명에게 ‘파주자유음악잔치’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더불어 이번 프로젝트 수업을 수강하며 준비의 가장 밑단부터 깊숙이 참여한 배우미 중 지금껏 매해 ‘파주자유음악잔치’ 기획에서 빠지지 않은 한배곳 3학년 윤우석(로비)와 PaTI에 입학하자마자 수업의 일환으로 ‘파주자유음악잔치’를 차근차근 준비한 한배곳 1학년 임예찬(예찬)의 목소리까지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INTERVIEW

(왼쪽부터) 마친배우미 리루, 찬혁, 규찬
리루 - 프로젝트 매니저  |  현재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인데요. 작년 ‘파주자유음악잔치’ 기획에 교직원으로 참여한 바 있어 이번엔 프로젝트 매니저로 합류했습니다. 기존 ‘파주자유음악잔치’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아서 올해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치르자는 의견이 나와 에마논을 스승으로 추천했어요. 일단 20대 초반 친구들이 좋아하는 크루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PaTI의 특성을 이해하는 마친배우미 두 명의 존재감이 남달랐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제가 놓치지 말아야 할 주된 역할은 에마논과 배우미가 콘텐츠를 만들 때 혹 빈 구석이 없는지 계속 확인하며 살피는 일이었어요. 수업의 일환일지라도 실무를 경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무척 신경을 썼답니다. 실수하거나 잘하지 못해도 좋으니 계속 시도하길 권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배우미를 북돋았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 스승들이 다그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걸 떠올리며 배우미에게 자율성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각 팀에 회계 담당이 있었는데요. 한 배우미는 회계를 전혀 몰랐어요. 당황스럽고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을 마무리해서 그 노력이 무척 고마웠답니다.

규찬, 찬혁 - 에마논  |  에마논은 ‘noname’을 거꾸로 읽은 단어로, 영상 VJ, 뮤지션, DJ, 디자이너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몇몇 친구들이 모인 크루입니다. 이번 ‘파주자유음악잔치’ 수업을 맡으면서 초반에는 이론을 알려주고 바로 실전 기획에 착수했어요. 기획팀, 연출팀, 디자인팀, 크게 세 팀으로 나누고 각 팀에 에마논 멤버들이 붙어서 팀워크로 진행했습니다. 배우미 의견을 끝까지 듣고 자발적인 참여를 권하느라 시간은 꽤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의지가 99% 반영된 것 같아서 만족합니다. 그림만 그리고 싶던 어떤 배우미는 Adobe 툴을 전혀 몰랐지만 일단 업무를 맡은 후 팀원과 서로 협업하면서 프로젝트를 완성했어요. 실무에 부딪히며 서툴지만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특별한 색 하나를 위해 실크 스크린 작업을 자처하는 게 PaTI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렇게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학풍이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각자 주체적이고 개성이 남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선을 명확히 지키는 모습도 여전했고요. PaTI의 장점은 시스템이 경직되지 않고, 배우미가 정말 원하면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준다는 거예요. 관심 분야가 있으면 사전 조사를 하고 학교에 적극적으로 건의해 원하는 수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한배곳 배우미 로비, 예찬
로비 - 한배곳 3학년  |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는지라 ‘파주자유음악잔치’ 기획에 지금껏 3년 연속 참여했어요. 이번 ‘파주자유음악잔치’가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되었고, 총감독으로 에마논이 오면서 새로운 형식을 통해 한 걸음 도약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습니다. 특히 마친배우미가 수업의 지도스승으로 돌아오니 감회가 남달랐어요. 저도 나중에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스승으로 PaTI에 돌아온다면 무척 뿌듯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학교 행사를 기획할 땐 매번 전날까지 밤을 새웠는데요. 이번에는 모든 기획과 구현이 미리 완료되어 행사 전날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어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뭔가 빠진 게 없는지 계속 불안하더군요. 게다가 다음 날 ‘파주자유음악잔치’ 생각에 마음까지 설레어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냈어요. PaTI에서는 ‘생각하는 손’을 강조하는데요. ‘파주자유음악잔치’에 배우미들이 익혀야 하는 것들이 모두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기획, 섭외, 디자인, 구현, 홍보까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배우미와 실무가 자연스럽게 함께 엮이는 프로젝트 수업이 더욱 충실하게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파주자유음악잔치’는 아카이빙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요. 이번에 겪은 시행착오를 다음 행사 때에도 꼭 참고했으면 해요.

예찬 - 한배곳 1학년  |  ‘파주자유음악잔치’를 겪어보지도 않았고 음악도 잘 모르지만 몸으로 하는 직관적인 작업을 좋아해서 연출팀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음악 축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에마논이 스승으로 온다고 했을 때 굉장히 좋았죠. 사회에서 하는 활동을 들어보니 멋져 보였어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특히 스승으로서 수업을 주도하지 않고, 배우미에게 계속 의견을 물어보던 태도가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이 PaTI에서의 첫 학기인데요. 사실 ‘파주자유음악잔치’ 준비가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어요. 실제로 진행되는 행사 이면에 어떤 고민과 실무가 존재하는지 몸으로 겪으면서 알게 되니까 제가 좀 더 큰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답니다.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를 연습하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행사 이름이 ‘파티자유음악잔치’가 아니라 ‘파주자유음악잔치’니까 지역 분들이 더욱더 많이 찾아오면 좋겠어요.
‘파주자유음악잔치 2019’를 만든 사람들
프로젝트 매니저 | 리루
기둥스승 | 곤
지도스승 | 가수, 경희, 규찬, 승민, 찬혁, 하람 (에마논)
기획팀 | 하람, 로비, 뉸지, 하준, 헹, 화월
다큐멘터리 기록팀 | 승민, 유리
디자인팀 | 경희, 규찬, 예진, 미진, 유리, 현우
연출팀 | 가수, 찬혁, 예찬, 다인, 중옥, 지윤, 진욱, DK
연계 | 김치앤칩스 (언팔로우 페스티벌)
도움 | 동동, 부기, 지니, 하얀
자문 | 한주
2019.7.25.나무날
이번 소식지는 전종현(해리)이 쓰고, 박하얀(하얀)이 멋지었습니다. 
사진은 경희, 예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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