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공무원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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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는 시원찮아도 아침에 때맞춰 등교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신통해서 괜히 엉덩이를 토닥이는 아들바보. 달랑거리며 신나게 뛰거나 편안하게 잠든 아이 모습을 볼 때면 가슴께가 시큰해진다. 잠깐 행복해서 콧방울이 움찔하다가 우리 아이 또래의 그때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깊은 한숨이 따라 나온다.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는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만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대참사였다. 불과 4년여 지났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 개시도 하기 전인데 벌써 잊히고 있는 것 같다. 생명과 안전? 그때 그 약속들은 누가 물어갔는지 추석 연휴에 상도유치원 사고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뉴스 보도로만 봐도 너무 이상했다. 유치원 담장 밑까지 후벼 파도록 놔둔 게 놀랍지 않은가. 유치원 옆에는 초등학교까지 있는데 어쩌자고 저리도 심하게 땅을 팠을까 궁금한 나머지 동네를 둘러보았다. 현장에 가까이 가자 지하 특유의 서늘한 냉기가 야트막한 숲의 향기에 섞여 흐르는 듯했다. 31명의 건축주가 건축면적 936.8㎡(283평)에 총면적 4758.68㎡(1439평)의 6층짜리 공동주택을 짓겠다는 안내판 너머 현장은 놀라웠다. 철거된 유치원은 사실상 절벽 위에 있었던 것이다. 수업 중에 무너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고 할 뻔했다.

올해 2월28일 건축허가를 내주었던 동작구청 관계자는 이 건축물이 지하안전영향평가 대상이 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애타게 질문하면 구청과 교육청은 담담하게 공문으로 답했다. 9월5일 오전 심각한 균열로 열린 긴급대책회의에 동작구 관계자는 선약이 있다며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설계감리자는 “현재 공사 현장은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했고 7일까지 보완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으며 유치원은 수업을 계속했고 9월6일 밤 11시22분경 공사 중 유치원이 기울어졌다.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깊이 성찰해온 박노자 교수는 최근 <전환의 시대>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지금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을 이상화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앞으로 정권을 보수세력에게 넘겨주지만 않으면 요순시절이 지속될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국가 시스템이 엉망이고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과연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지,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린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착한 임금이 등극하기만 하면 정말 만사가 형통할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태세고,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은 묵시록적인 예언을 하고 있으며, 경제뿐 아니라 인간의 의미 자체가 변할 미래에 대비해 학생들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육 하면 주로 학생들만 생각하는데 실상 정부기관 공무원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출직이 백날 외쳐봐야 아무래도 상수는 공무원이다. 동작구청과 상도유치원 사이의 거리는 1.9킬로미터. 걸어서도 몇분 안 걸리는 거리다. 무슨 더 급한 용무가 있길래 유치원이 무너질 것 같다는 호소를 무시할 수 있었나. 공무원이 그리 나오는데 어느 업자가 긴장하겠나. 유치원이 무너졌으면 어쩔 뻔했나!

선발 기준을 보면 인재상이 보인다. 우리나라 7급·9급 공무원 선발 시험은 공통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와 전공과목을 본다. 5급 행정고시는 상황판단과목을 본다. 2018 기출문제 40문항에 폐기물 관련 1개를 제외하고는 환경, 안전, 생명을 묻는 질문은 단 한개도 없다. 재교육은 어떤가.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국민안전정책과정이 있긴 하다.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담당자 교육인데 공직자의 위기관리대응 등 9시간 강의, 재난유형별 역할 토의 및 액션플랜 등 11시간 참여가 전부다.

2016년 7월 전해철 의원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재난사고에 기업과 공무원의 책임을 물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공중이용시설 등의 안전관리위반범죄 처벌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이 의결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세월호’ 핵심 공무원들이 줄줄이 해외파견된 것만은 알고 있다. 경영구루 피터 드러커의 언명대로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그 계획이 일로 전환되지 않는 한 그저 좋은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40도 이상 고온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도 없이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곧 유례없는 추위와 미세먼지의 계절이 온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일본의 지진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추석즈음 유행했던 질문놀이로 마친다. 공무원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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